[Opinion] 숨결 [미술]

김규·우병윤, 서로의 호흡을 작업에 새기다
글 입력 2022.04.1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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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이 그득한 봄이 한창이다. 겨울의 침묵을 이겨내고 만발한 꽃들과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무언가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매년 1월 1일, 올해의 할 일을 적곤 한다. 정해둔 목표에 몰두하는 것이 1년의 보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듯한 봄에 갤러리를 가는 것도 매해 하는 일중 하나다. 대형 미술관이 아닌, 갤러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미시적인 관점을 넘어서 작가 고유의 노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하나의 작품 그리고 나 자신과의 내밀한 호흡을 주고받는 순간도 귀하다. 2년 전에 방문했던 라흰 갤러리의 <한:숨> 전시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숨결> 전시를 봄에 방문했다.

 

모든 미술이 그렇듯, 한국 미술의 보편적인 특성을 특정 작가와 시기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란,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된 실체를 갖지 못하고 한국미의 특성은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숨결>은 한국 미술을 타자화하여 바라보려는 기획 의도로부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한국미를 둘러싼 경계를 해체할 수 있는 사유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미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관객이 적극적으로 해석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스미는 숨 맞닿은 결, 김규 작가와 우병윤 작가는 서로의 호흡을 작업에 새겼다. 관객은 두 작품을 통해 서로 오가는 숨과 이를 받아 배어 나오는 결을 느끼며, 한국적인 예술정신을 검토할 수 있다. 실제로 정적인 순간에 개별적인 예술의 교차점을 찾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하나는 나무, 하나는 회화. 재료와 형태가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의 호흡은 난해하지만 그들의 숨결에 살아있는 한국성은 명료했다.

 

 

 

김규


 

소유와 이윤을 추구하는 현상, 예술의 상품화가 만연한 사회에 의문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보면 새롭다. 작가 김규는 작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떠한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반대로 문명의 시작을 이루는 원동력으로서 ‘나무’의 의미를 다시 측량한 것이다.

 

나무를 주재료로 작업하는 그의 예술성은 매우 독특하고 심오하다. 섬세한 감각으로 미의 세계를 염원하는 작가 김규에게 자본주의의 질서는 유달리 씁쓸한 소외의 경험을 안겼을 터이다. 특히 최초의 문명사에 해당하는 시기를 ‘돌과 나무’의 시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정한 예술의 가치는 태곳적부터 인류와 함께해왔던 나무로 이루어진 유토피아 즉, ‘신목기시대’에서 발현된다고 보았다.

 

‘신목기시대’에서의 그는 자유를 예찬하고 있다. 이 정신은 목재가 지닌 원초적인 특성에서 배어 나온다. 작품을 보면,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물의 형태를 추구하는데, 오랜 세월과 함께 생긴 곡선과 흠, 깊은 빛깔과 그윽한 부식의 설움이 통나무에 천연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무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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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작가 김규의 작품들은 매끈함이 주는 여백의 미와는 거리가 멀다. 나무의 균열과 상처들로 무늬를 이룬 결까지 선연하게 남아있다. 바로 이러한 목재의 갈라진 틈 사이로 작가가 추구하는 ‘신목기시대’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만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간의 틈을 채우는 과정에서 작가의 예술성을 접한다.

 

내가 작품을 보면서 감탄했던 것은, 목재의 갈라진 틈을 계속 관찰하다 보니 결국 ‘불완전’과 ‘완전’이 다르지 않고, 곧 균열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균열이야말로 오히려 순리에 맞는 아름다움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음을, 누구나 깨지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위안을 얻고 지친 삶에 쉼표를 더할 수 있었다.

 

 

 

우병윤


 

작가 우병윤의 작업은 전통 누각의 미학을 닮았다. 다시 말해 누각의 나무와 기둥을 분간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안개에 싸인 공백인 듯 조형 요소들이 서로 경계를 오가며 난해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많이 닮아있고, 자연에 귀속되려는 작가의 의지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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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 시리즈는 표면이 거칠고 투박하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세계와 물질의 특성이 겹쳐지는 구간을 ‘표면’이라 했다.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닌 작품의 표면을 통해 예술성을 전달한다는 것이 생소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주재료인 ‘석고’를 물감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 작가 우병윤은 이를 두고 질감과 양감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했던 실험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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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는 물감과 달리 캔버스에 바르는 즉시 면에 안착하지 않고 층층이 덧발라지기 때문에 매우 드문 회화 재료라 할 수 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중첩의 균형을 잡기 위해 석고를 두껍게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거듭했다. 적합한 텍스처가 구현되었을 때, 비로소 다채로운 색을 섞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뒤이어 곧장 석고를 얇게 긁어내었다. 바르고, 굳히고, 긁어내는 노동의 끝에 이르면 마침내 하나의 덩어리 속 빛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작업 과정을 통해 석고와 물감이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별성을 지니고, 상이한 둘이 하나로 뭉쳐져 형태를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릇 공간이란 차등이나 구획을 두지 않고 온 천지를 가득 채우는 것

 

 

자유분방하게 서로 얼키설키 얽매여 있는 표면을 보고 있자면, 인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물질들이 하나의 총체가 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아마도 인간의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에서 소외와 단절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마땅히 자유를 누리고 자연과 함께 해야 한다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고로 작가 우병윤의 작품은 우주 만물을 상호 연관된 ‘관계의 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김규는 틈새의 여백에 우주를 담아 존재의 의미를 부각시켰다면, 작가 우병윤이 이를 틀로 삼아 <중첩>에 이르러 점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숨결>의 두 작가가 우리 고유의 정신을 녹여내어 제시하는 관점은 개별성·경쟁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더욱 튼튼한 자기 바탕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또한 미술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지렛대가 되고 있다.

 

 

참고 :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조은영, 《스미는 숨 , 맞닿은 결》 전시 서문 (열람 일자 : 2022.03.29.)

 

 

컬쳐리스트 황희정.jpg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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