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버랩 절망, 절망1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도서/문학]

<<칵테일, 러브, 좀비>> 中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글 입력 2022.04.11 17: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을 대상으로 한 소개글에 가깝습니다.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더 풍부한 내용을 담은 2탄을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디부터 문제였던 것일까. 영희와 세호는 각자의 위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간다. 그들은 각자 결과를 바꿀 수 있을 최선의 시점을 고민하며 그들에게 주어진 3번의 기회를 신중하게 소비한다. 그러나 그들이 고민하지 않고 섣부르게 판단하든, 아니면 충분히 깊은 생각을 한 끝에 고민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든 결과는 끝끝내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결말은 악마의 승리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지. 깔깔깔.(p.157)”

 

131.jpg

 

1. 첫 번째 기회



세호와 영희는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직후, 시간을 돌릴 기회를 3번씩 얻게 된다. 세호는 아버지에게 찔려 죽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영희는 남자친구가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 3번의 기회를 사용한다. 세호가 첫 번째로 선택한 시간은 어머니가 죽기 바로 전날이다. 영희가 첫 번째로 선택한 시간 역시 남자친구가 죽기 바로 전이다.

 

이처럼 이들이 첫 번째로 선택한 시간은 모두 비극이 발생하기 얼마 전이다. 누구나 비극이 일어나면 그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든 간에 그 모든 우연이 만들어지기 직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자신이 찰나의 순간을 바꾸어놓을 수만 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세호와 영희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들은 비극을 막지 못했다. 세호의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이 부재한 시간대에 아버지에게 찔려 죽었고, 영희의 남자친구도 영희가 차마 곁에 있어 주지 못한 도서관에서 스토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첫 번째 시도는 허무하게 끝이 난다. 작가는 ‘만약 내가 그때 그 시간 그 순간에’라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철저히 보여준다. 사소한 변화는 예정되어 있던 거대한 비극을 막지 못한다. 근본적인 무언가를 바꾸지 못했던 세호와 영희는 겨우 비극을 미루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었다.

 

 

[꾸미기][크기변환]42012098651_057213dc17_b.jpg

 

 

 

2. 두 번째 기회 


 

사실 필자가 가장 주목한 기회는 세호와 영희의 두 번째 기회이다. 세호는 두 번째 기회를 통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기 전, 자신이 먼저 아버지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는 마침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어머니를 지켜낸 것이다. 그런데 과연 비극은 모두 사라진 것일까. 그런 희망을 안겨주기에 이 소설은 너무나 잔인하다.


 

어머니의 텅 빈 눈이 그곳에 있었다. 텅 빈 괴물이었다. 내가 그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다.

내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이런게 아니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의 눈과 나의 눈을 보고서야, 누구를 막고 누구를 먼저 죽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34

 

 

세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살렸지만, 자신을 괴물처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어머니를 살리고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 세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어머니가 살아있음’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라, ‘화목한 가족’, 아니면 적어도 ‘어머니의 행복’ 이었다.

 

그는 단순히 아버지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어머니의 행복을 되찾아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또 하나의 절망을 발견했다. 작가는 비극의 결말을 바꾼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희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결과를 바꾼다고 해서 그동안 조금씩 갈라졌던 깊은 틈이 한 번에 치유되지 않는다. 억지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어쩌면 흘러가는 대로 둘 때보다 더욱 절망적이다. 좌절, 그 좌절을 극복할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만 같다. 그들의 비극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마라톤과 같다.

 

영희는 자신과 남자친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남자친구를 죽일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첫 만남 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영희가 남자친구를 마주치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있는 동안, 남자친구는 묻지마 살인을 당한다. 나중에 소설을 읽다 보면 이전에 남자친구를 죽인 스토커가 누군지 등장하지만, 사실 이 두 번째 살인은 누가 했는지 정확히 확정할 수 없다. 그 스토커는 이 시점에서 남자친구를 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정말 그 특정한 범인이 아닌 익명의 사람에게 묻지마 살인을 당한 거라면, 이 역시 또 하나의 절망이다. 이번에는 노력이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호의 노력이 더욱 절망적인 결과를 만들었다면, 영희의 노력은 그 절망적인 역할조차도 하지 못할 만큼 무력했다. 영희는 자신의 즐거움, 행복, 사랑을 포기하면서까지 남자친구를 살리려 했는데, 그 소중한 한 번의 기회는 정작 남자친구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비극을 막으려 꽤 근본적인 시점까지 되돌아가서 운명을 거부했음에도,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뜻일까.

 

필자는 이 살인은 악마가 저지른 것이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짜 맞춘 모든 비극이 완성되려면 어쨌든 영희의 남자친구는 이 시점에서 죽어야 했기에. 여기에서 악마는 다른 말로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은 지금 이 두 번째 기회에서 남자친구가 죽어야 한다고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영희는 어떤 노력을 해도 그를 되살릴 수 없었다. 그 노력이 설령 시간을 되돌리는 노력이라 해도. 이 얼마나 절망적인 운명의 장난인가.

 

 

[꾸미기][크기변환]8094737104_41f7eaa90d_c.jpg

 

 

  

3. 세 번째 기회


 

영호와 영희가 세 번째로 시간을 돌리는 시점에서 이 소설의 모든 비밀이 드러나게 되고, 독자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운명이란 얼마나 절묘하고도 잔인한 것인지 둘의 세 번째 시간 여행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둘은 각자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그 결과 각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시점으로 돌아가 최선의 선택을 한다.

 

둘 중 한 명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열망을 이룬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또다시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복잡하고 힘겨운 싸움을 했는데, 또다시 정해진 운명 속으로 들어와버린 영호와 영희의 이야기는 절망 그리고 또 절망, 그러니까 오버랩되는 절망 후의 또 다른 절망이다. 그 모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절망적인 절실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드러난다. 어떻게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끔 되어있는 것이었다. 어떠한 희망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닫힌 이야기이다.

 

 

[꾸미기][크기변환]244006845_5086ad24af_z.jpg

 

 

이야기 자체도 신선하고 긴장감(suspense)이 넘쳐나기에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인물들의 감정이 물기를 쫙 뺀 생선처럼 말라비틀어진 듯하게 묘사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소설을 전개하고 비극으로 이야기를 끝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이 소설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통해 당신 마음속에 생긴 작은 티끌 하나,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까.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 사실 질문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결국, 결말은 악마의 승리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지. 깔깔깔.(p.157)” 이야기와 구성 자체도 몹시 흥미진진하지만, 그 이야기를 손에 땀을 쥐며 읽은 독자들에게 남는 찝찝한 여운은 더욱 강렬하다.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이들에게 운명은 뭘까. 운명은 정말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어차피 이렇게 끝낼 거면서, 이렇게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소설의 주제와 의미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려면 스포를 할 수밖에 없기에, 글을 2편으로 나누었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들은 2탄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2탄에서는 소설의 의미와 상징 등에 대해 보다 깊이 파고들어 보는 서평을 준비했다. 그러니 이미 소설을 읽은 독자가 있다면, 2탄이 나오기까지 며칠만 기다려주길 바란다. 이 소설은 읽기 전에 스포를 당하면 독자로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예비 독자들은 부디 이 소설을 직접 읽기 전까지는 다음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이 당신을 소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조금이라도 이끌었기를 바란다.

 

 

*2탄에서 더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참고도서 : 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 안전가옥, 2020.

 

 

[꾸미기][크기변환]24889447025_2b9299c290_b.jpg

 

 

[정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0971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