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금씩, 아주 천천히 [사람]
-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만나자며 만남을 미루다 보니 벌써 햇수로 3년을 못 본 친구들을 최근에 만났다. 저번 만남과 이번 만남 사이에 3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함께 있으니 함께 학교 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으면서도,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 각자의 자리에서 이제 막 발을 구르며 날갯짓을 시작하는 본격적인 사회 초년생이 된 건지. 다들 그대로인데 정말 시간만 흐른 것 같다.
함께 밥을 먹고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반가움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엔 가까이하지 않던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옷 입는 스타일이 바뀐 서로를 보며 놀라워했다.
또 직업이나 결혼,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그 당시에 힘들어하던 문제들로부터 잘 빠져나와 이제는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것들이 바뀌었구나. 3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을 체감했다.
친구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말할 때 굉장히 의아해했다. 내가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맞아 난 3년 전에 나는 지금껏 해오던 것을 그만두고 불확실함을 더 많이 감수해야 하는 길을 택하는 게 두려워서 나의 진짜 꿈은 마음 한 켠에 묻어 놓고 아무에게도 꺼내어 보이지 않았었지.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 별거 없다. 변화는 하루아침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목표를 되새기며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은 것, 그뿐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나에게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를 둘러싼 상황은 사실 크게 변한 게 없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그리는 미래로 향하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지루하고 절망스러운 순간들을 기꺼이 마주하고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체력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매일 주어진 일들과 씨름하며 살아가느라 나는 스스로의 변화와 성장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나를 지켜본 사람들을 말을 통해 그 변화를 비로소 체감할 때가 있다. 마치 이번 친구와의 대화에서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낸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계속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길이 조금씩 기울 것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정민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