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반드시 하나가 정답이 아니다 -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글 입력 2022.04.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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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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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은 여성 1인극(모노드라마)으로 2018년 볼트 오리진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작 작품상 수상, 헤러틱 모노극 어워드에서 우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1인극으로 배우가 홀로 아빠의 장례식부터 북극으로 떠나는 길에 펼쳐지는 다양한 경험담을 표현해 내는 부분이다. 십 대 소녀 ‘로리’가 삶에서 처음 겪는 크고 작은 충격들을 매우 섬세하고 재치 있게 표현해 내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가슴 뛰는 벅찬 순간의 공감과 함께 감동을 선사한다.

 

십 대 소녀 ‘로리’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를 떠나보낸다. ‘로리’는 지리학 교사였지만 북극 탐험가가 꿈이었던 아빠를 대신해 그의 유골함을 가지고 홀로 북극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빠의 일기장과 탐험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길을 나서는 ‘로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죽음과 상실, 그리고 성장이라는 삶의 알 수 없는 변주와 북극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선망은 극 속에서 평행선을 이루며 우리가 명확하게 답을 찾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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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누이트족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사실 로리가 아니라 ‘오로라’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을 통해 벌써부터 그녀의 운명이 북극으로 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로리는 아빠가 죽고 나서 아빠가 생전에 정말 간절히 원했던 북극으로 자신의 아빠를 데리고 가기 위해 혼자 북극으로 길을 향한다.

 

하지만, 어린 로리가 혼자 북극으로 가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고, 엄마의 신용카드를 훔쳐 가출한 형태였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새로운 이들을 만난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가방에 담고 지고 있지만, 그녀의 행동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가기도 하다가 잠시 다른 방향으로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과 극의 제목이 상통한다. 한글과 영어, 독일어 등에서는 눈을 뜻하는 단어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 족은 ‘눈(snow)’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무려 100개의 단어로 표현한다고 한다. 이것은 곧 절대적인 방법이 있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눈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로리의 여정 또한,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끊임없는 레이스를 해야 하는 곳이다. 성공지향적인 이념과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절대적인 답을 찾으며, 그 경로에서 이탈하면 낙오자, 패배자 등으로 낙인찍히거나, 낙인찍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런 로리의 여정은 하나의 경로만이 답이 아님을 시사한다. 마치 대학은 회사를 가기 위한 하나의 코스처럼 여겨지는 현대사회처럼 말이다. 대학을 나와서 갈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은 낙오자라고 쉽게 낙인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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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다양한 방법 또는 길에 대한 메시지는 단순히 ‘눈’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눈의 색깔인 ‘흰색’과 북극이 단순히 하나의 북극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북극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흰색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흰색이 아니다. 어떤 흰색은 약간의 오로라 색을 띠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흰색은 약간의 회색빛을 띠고 있을 수도 있다. 미세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소한 차이점을 무시한 채 하나의 ‘흰색’이라고 쉽게 범주화한다. 하지만, 범주화가 아닌, 개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우리는 북극은 단순히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북극은 5개라고 한다. 로라는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여정 속에서 망각한다. 그래서 북극 상공 위 헬리콥터에서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유골을 뿌릴 때, 아버지의 유골이 북극의 땅이 아닌 하늘로 올라가자 절규하며 말한다. “왜..! 왜 다 왔는데 가지를 못해. 내려가야지.. 내려가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북극이잖아!”

 

한참을 흐느끼던 로리는 갑자기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이자 자신이 망각하고 있던, 북극은 여러 개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에 그녀는 “아빠는 다른 북극을 향해 올라가서 가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마침내 그녀는 북극에 온 목적을 이루었고, 자신을 찾으러 온 엄마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이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오로지 하나가 정답이 아니라 다수가 정답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떠난 여정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여러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며,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극은 이 두 가지를 로리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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