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선택받는 글

글 입력 2022.04.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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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는 선택받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만들어낸 글이 다수의 선택을 받고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러니까 그건 나조차도 낯선 욕구였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처음으로 내 글을 외부에 공개할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던 나니까.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어떤 글을 어떻게 써서 보는 이에게 어떠한 감상을 남기겠다는 거창한 포부 따위도 없었다. 그냥, 글을 썼다. 이런 이야기를 써볼까, 저런 이야기를 해볼까, 지금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천진하게 글감을 고민하면서.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글쓰기'라는 활동에 더 진심이 되어버린 걸까. 선택받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것도, 글을 쓰다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서 다소 확실한 게 있다면, '글'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본디 글이 가벼웠던 적이 있었겠냐마는, 요즘따라 더 무겁다.


그 무게감 때문에 나는 조금 달라졌다. 진지해졌고, 조심스러워졌다.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정답이 없는 곳에서 정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내가 만들어가는 내 글인데도 확신이 없어 이리저리 휘둘리고 한참을 헤맸다. 글쓰기를 어렵게 여기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글재주나 필력 같은 건 천부적인 소질처럼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했던, 오래 묵은 나의 우둔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으니. 에디터 초기에 쓴 나의 미숙한 글을 보면서, 글쓰기도 연습이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고 비로소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니. 말하자면, 글에 진심을 더했더니 성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작은 성장을 하고 나니, 아주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글을 쓰고 나서 자꾸만 결과를 바라게 된 것이다. 뭐 얼마나 훌륭한 글이라고, 그럴 깜냥도 안 되면서, 내 글이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기를 원했다. 정말이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타인의 시선이 포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면서. 그냥 글 자체가 좋아서 쓰기 시작했으면서. 모든 게 어불성설이었다.

 

어쩌면 선택받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은 다수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라고, 묻히는 글이 되면 안 된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이상한 강박을 만들어냈다. 회사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처럼 평가받으려고 쓴 글이 아님에도,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발버둥 쳤다.

 

판단을 무르고, 강박에서 벗어나고, 발버둥을 멈출 수 있었던 계기는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여느 때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앨범 소개글을 보던 평범한 날이었다. 아니, 평범한 날일 줄 알았던 인상적인 날이었다.

 

 

"이 세상 단 한 명이 들어도, 그가 미친듯이 소장하고 싶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에픽하이 4집 앨범 [Remapping The Human Soul] 발매 당시, 타블로가 남긴 말이다. 참 근사하고 멋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헛되고 무용하게 느껴질 만큼. 순식간에 생각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음악이나 책, 영화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보통 희열을 느낀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재미있는 책을 왜 모르지? 이 좋은 글이 왜 인기가 없지? 의아해하고 아쉬워하면서도, 숨겨진 가치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뿌듯해하곤 한다. 괜히 '나만 알고 싶은'이라는 수식어가 생긴 것이 아닐 테다.

 

다수에게 선택받는 글만이 좋은 글인 걸까. 이제는 확실히 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내 글이 누군가에게 전해져서 그 사람의 마음에 닿았으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설령 그 누군가가 단 한 명일지라도, 그 한 명이 내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으니까. 그걸로 내 글은 빛을 발한거나 다름이 없다.


내가 가졌던 고민과 비슷한 것으로 조금이라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히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글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당신의 글이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이미 '선택받은 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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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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