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남이섬의 아침 (2)

녹음(綠陰)을 기다리며
글 입력 2022.03.27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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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의 아침(1)에서 이어집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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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넘어 아침이 다가오고 첫 배가 도착하면 고요하던 섬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첫 배의 손님은 몇몇 관광객들과 남이섬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성실히 일하고 계신 직원분들이다. 배에서 내리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여행지에서 여행자의 아침을 맞는 나와 출근을 하는 직원분들의 장소가 똑같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론 남이섬으로 출근을 하면 매일 아침마다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건 아닐까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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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일터로 향하는 직원분들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기분 좋은 아침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서둘러 유니폼을 갈아입고, 힘을 합쳐 입간판을 세우고, 유리 문을 닦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넘쳐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렇게 마음 따뜻해지는 일인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살면서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손길로 준비됐던 수많은 아침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다.

 

  

 

오후가 되면 사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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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눈을 억지로 치우지 않는 모습을 본 것이 꽤 오랜만이다.

 

섬에서는 누구도 쌓인 눈을 불편해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그저 쌓인 눈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간다. 특히 이곳에서 오랜 시간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동물 친구들이 눈 위로 살며시 남겨 놓은 흔적들을 찾아낼 때면, 마치 소풍날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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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눈은 아침이 다가올수록 꽃처럼 피어났다. 눈이 내리면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는 도시와 달리 이곳에서는 오로지 행복만이 떠올랐다. 눈은 세상 어디든 공평하게 내리는데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 우스웠다.

 

눈 내린 남이섬에서는 빙판길 걱정도 제설작업 걱정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쌓인 눈이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줄 뿐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친구를 만드는 과정은 만드는 이도 그것을 지켜보는 이도 모두가 행복하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새로 만난 친구를 수줍게 사귀었다. 햇볕이 따뜻한 오후가 되면 친구는 이 자리를 떠날 테니 지금은 오래오래 곁에 있고 싶었다.

 

 

  

햇살이 부서지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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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침대 위로 남긴 선명한 흔적을 보았다. 햇살이 부서지는 자리에 바로 아침이 있었다. 어둠이 걷힌 그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너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간헐적 불면에 시달리며 매일 아침을 고생하는 나와 다르게 너는 아침잠이 많지 않았다. 별거 아니라는 듯 쉽게 아침잠을 물리치는 널 볼 때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멋져 보였다.

 

그래, 아마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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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제법 쌀쌀했던 겨울 어느 날, 우리는 바쁜 시간을 쪼개 남이섬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오랜만에 여행에 신이 나서 아침 산책을 제안하는 나를 보며 너는 못 미더운 눈길을 보냈다. 사실 나는 그런 네가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결국 이른 아침 먼저 일어난 것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 나를 깨운 것도 내가 아닌 너였기에 내 서운함은 더 큰 미안함이 되고 말았다.

 

잠에 취해 울먹이는 나를 어르고 달래가며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깨우던 너를 기억한다. 혼자서는 너무 어렵고 힘들던 아침이 기꺼이 나를 이해해 주는 네가 있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랑 노래가 너와 함께 아침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지 알게 됐다.

 

  

 

녹음(綠陰)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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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상쾌하고 활기찬 아침을 꿈꾼다. 그런데 겨울은 나의 그런 오랜 소원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꾼이다.

 

특히 이불 밖의 차가운 공기와 유독 어두운색을 띠는 겨울의 아침은 나를 몹시 힘들게 한다. 그래서 항상 여름이 오기를, 녹음이 우거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름은 나의 계절이고 내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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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짐을 챙겨 다시 선착장으로 향하며 녹음이 우거지면 다시 오자던 우리의 약속을 되새겼다. 그때가 되면 꼭 먼저 아침을 깨워서 너에게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계절에 너와 함께할 우리의 시간을 소중히 꿈꿨다.

 

하지만 그 후로 우리는 몇 번의 여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했고, 나는 이제서야 뒤늦게 홀로 눈 내린 남이섬을 걷는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쌓인 눈, 여전히 자유로운 동물 친구들과 코끝 시린 아침 공기. 다시 찾은 이곳은 계절이 몇 번이나 관통해 지나가도 이토록 변함이 없다.

 

그저 내 곁에 네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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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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