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남이섬의 아침 (1)

아침을 찾아 떠난 여행
글 입력 2022.03.12 09:5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꾸미기]20210128_165835.jpg

 

 

아침은 늘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 또 언제나 잘 해내고 싶은 일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운 존재기도 하다. 아침잠 속에서 나를 구하는 일은 마치 전쟁과도 같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뜨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을 때면 종종 서럽고 가끔은 슬프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던 순간이 있다. 바로 남이섬에서 맞았던 아침이다. '섬'이라는 장소가 주는 고립과 단절이 특별하게 느껴졌고, 기존과 다르게 자연 속에서 만끽하는 아침은 고요하고 충만했다. 그렇게 아무도 몰래 숨겨두고 싶을 만큼 짧지만 강렬했던 아침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점점 더 선명해졌다.

 

특히 일상으로 돌아와 그저 습관처럼 반복되는 아침을 맞이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섬에 두고 온 아침이 더욱 그리워지곤 했다. 그리고 늘 궁금했다. 여전히 그곳의 아침은 특별하고, 고요하고, 충만한지. 결국 나는 그때 그 기억을 가만히 떠올리다 그리움과 궁금함을 핑계 삼아 남이섬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이었다.

 

 

 

남이섬



[꾸미기][꾸미기][꾸미기]IMG_8510.JPG [꾸미기][꾸미기][꾸미기]IMG_8512.JPG

 

 

남이섬은 청평 호수 위에 가랑잎 모양으로 떠 있는 작은 섬이다. 남이섬과 내륙을 이어주는 전용 배를 타고 5분 정도 이동하면 기다리던 섬을 만날 수 있다. 단 5분의 시간이지만 배를 타야 섬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곧 배가 없으면 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다.

 

오전 7시 30분 첫 배를 시작으로 오후 9시 40분 마지막 운항이 끝나면 더는 섬에 들어가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없게 된다. 섬에 10시간 이상 발이 묶여 고립된다는 게 자칫 두려울 수 있지만, 그 특별한 경험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길 방법이 있다. 바로 남이섬 내 전용 숙박 시설을 이용해 보는 것이다.

 

잠시의 고립을 약속한 채 보내는 남이섬에서의 하룻밤은 늘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이 섬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가져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밤과 아침 사이


  

[꾸미기]20210129_080620.jpg

 

 

밤이라고 하기엔 아침에 가깝고 아침이라고 하기엔 아직 밤의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시간. 그 애매한 시간의 틈을 걸어보고 싶어 새벽 산책을 나섰다. 남이섬에 머무르면서 가장 오롯이 섬을 누려볼 수 있는 순간은 단연코 이른 아침, 첫 배가 들어오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섬을 가만히 산책하다 보면 마치 작은 소행성에 홀로 불시착한 기분이 든다. 또 섬의 새벽은 도시의 새벽보다 조금 더 어둡고 서늘해서 아침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물리치고 검푸른 새벽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샌가 아침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어둠을 품고 있던 나무들이 점점 어둠을 토해내고, 섬 둘레를 빙 두른 강물이 햇빛을 통과시켜 물비늘을 만들면 드디어 밤과 아침 사이의 애매한 시간도 끝이 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아침은 황홀하지만 외로웠다.

 

두려움의 끝이 외로움이라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처음과 시작


  

[꾸미기][꾸미기][꾸미기]IMG_8581.JPG [꾸미기][꾸미기][꾸미기]IMG_8544.JPG

 

 

뽀드득.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어릴 적 내가 눈 내린 아침을 기다렸던 이유는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을 누구보다 먼저 밟아보고 싶어서였다.

 

설탕을 뿌려 놓은 것처럼 하얗고 반짝이는 눈 위에 가장 처음 내 발자국을 새길 때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오곤 했다. 아마 발자국을 남기는 곳마다 내가 그 땅의 주인이 된 듯한 묘한 기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눈 위의 첫 발자국은 마치 아침과 닮았다. 둘 다 ‘처음’과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어릴 땐 그토록 설레기만 했던 ‘처음’과 ‘시작’이 이제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단어가 됐다. 무엇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게 무섭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첫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이 겁난다. 그렇게 자꾸 겁쟁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남이섬에 내린 눈 위로 발자국을 남겼다. 내 발자국을 시작으로 누구든 안심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컬처리스트_서은해.jpg

 

 

[서은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