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재즈 일기장 [음악]

Edith Piaf, Ella Fitzgerald, Chet Baker
글 입력 2022.03.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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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랬던 엄마의 손을 잡고 먼 곳으로 갈 때면 탔던 차에서 나는 의식처럼 차에 저장된 두 번째 CD의 첫 곡을 틀었다. Edith Piaf의 Non, Je ne regrette rien. 따뜻하게 히터가 틀어진 차에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났고,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옆자리에 앉은 엄마에게 연상되는 분위기나 이미지를 차근차근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Non, Je ne regrette rien의 작아졌다 커지는 관악기와 상승되는 음의 현악기는 화려함이 가득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불안함이 묻어있는 느낌이었고, 에디트 피아프의 목소리 또한 당당했지만 어딘가 슬프게 느껴졌다. 상반되는 감정들이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만들어지는 감정이 너무나도 벅차 붉어진 눈을 숨기려 차 밖의 풍경을 눈에 담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스레 나의 인생에 들어왔던 눈부신 화려함 속에 묻어 나오는 슬픔, 덤덤하게 부르는 고독함, 포근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따스함, 어릴 적 사주셨던 크레파스 색들처럼 알록달록하고 밝은 음들이 추는 춤 … 여러 컬러와 질감, 온도를 담은 재즈들을 나만의 해석과 느낌을 더해 써보려고 한다.

   

 

 

Ella Fitzgerald – Mi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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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이 되던 해, 나는 밤이 되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곤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던 어른들의 사랑과 각기 다른 사람들의 결핍들을 보면서 공감이 되면서도 나와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는 이질감이 매력적인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 재열은 잠들어 있는 풀잎을 깨우기 위해 엘라 피츠제럴드의 미스티를 틀었고, 그때 처음으로 나는 엘라 피츠제럴드를 알게 되었다. 노래의 무드와 재즈로 잠을 깨우는 상황이 너무나도 좋아서, 나는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주말의 늦은 오전에 깨면 이 노래를 틀고 열어둔 커튼 새로 드는 햇빛과 여유를 즐겼다.

 

이 노래를 들으면 따스한 온도의 조금 무거운 느낌의 호텔 이불이 떠오른다. 내가 본 드라마의 영향이 크겠지만, 조금은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는 걸 좋아해서 자고 일어났을 때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나의 온도가 묻어있는 호텔 이불이 떠올랐다. 하얀 그리고 조금은 무거운 호텔 이불은 엘라 피츠제럴드의 부드럽고 깔끔하게 오가는 음들과 묵직한 보컬의 무게감을 닮았다.

   

 

Never knowing my right foot from my left

내 오른발과 왼발을 구분할 수도

My hat from my glove

내 모자와 장갑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I’m too misty, and too much in love

난 눈앞이 아른거리고, 사랑에 흠뻑 빠져있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가 있다. 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걷고,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의 사랑, 그 사랑을 지금 이 노래도 하고 있다.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되어 간질거리는 감정들 마저 슬픈 연인들 혹은 그러한 감정이 조금은 무뎌진 연인들이라면 오늘 밤, 이 노래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엘라 피츠제럴드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안한 마음을 따스히 녹이고, 가사들을 따라 부르다보면 연애 초창기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Chet Baker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 우울하고 울적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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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이었기에 볼 수 없었던 영화 <본 투 비 블루>를 스물이 지나고 우연히 집에서 보게 되었던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집 안도 조금은 어두웠고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찬란했던 그의 삶부터 방황하며 변해가는 그리고 끝내 변할 수 없었던 그를 보면서 엔딩과는 함께 울음이 나왔다.

   

사랑하던 연인이 떠나갈 걸 알면서도 결국엔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그의 선택과 함께 연인을 바라보며 부르는 세레나데 그리고 절절한 에딘 호크의 연기에 나는 영화가 끝난 후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를 반복 재생 해놓고 무기력하게 누워버렸다.

   

즐겨가던 조금은 오래된 바에서 종이도 없어 휴지에 쳇 베이커의 노래 몇 개를 써 신청곡을 낸 적이 있다. 사장님께서도 영화를 보시곤 쳇 베이커에 대해 아셨다고 나의 나이대는 잘 모르는데 신청곡 리스트를 보고 놀랐다는 말을 하셨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문을 나서기 직전 즈음에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위스키 잔을 비워냈다. 이름을 잘 기억 못 하신다던 사장님께서는 역시나 그 다음에 가자 처음에는 나를 기억 못 했지만, 대화를 나누다가 ‘그 쳇 베이커’로 나를 기억하셨다.

 

쳇 베이커와 나, 나는 쳇 베이커가 되었었다.

   

이 노래는 차갑게 빗물에 젖어버린 양말 같다고 생각했다. 간간하게 들리는 지직이는 노이즈 소리와 내가 이 노래를 처음으로 접했던, 그 영화를 보던 날의 영향으로 비가 떠오랐다. 그리고 빠르고 밝은 느낌이 아닌 느리고 잔잔한 느낌의 bg가 비 오는 날의 잿빛 하늘과도 닮았고, 젖어버린 양말을 신어서 차갑고 시린 몸과 마음 그리고 사랑의 모순에 관한 불편함과 같은 감정들까지 노래에 다 담겨있었다.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지금껏 사랑에 빠져본 적 없죠

Now all at once it’s you

그런데 갑자기 당신에게 빠져들어요

It’s you forever more

영원히 당신에게

So please forgive this helpless haze I’m in

그러니 용서해주세요 무력하게 껴안은 이 몽롱함을

 

 

언젠가부터 사랑은 행복하기보다는 불안하고 슬프기만 해서 나는 흔한 사랑 노래들마저 허상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다. 그때 우연히 <쳇 베이커의 사랑 노래>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듣게 되었는데, 가장 불안했던 그 감정에 우울함과 울적함이 가득 베여있는 그의 목소리와 트럼펫 연주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다, 차갑고 조금은 축축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위안을.

 

 

 

Fly Me To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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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Me To The Moon의 원곡자, 프랭크 시나트라

 


 

 

내가 6-7살이 되기 전까지는 예전의 지금보다는 조금 작은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에서의 몇 없는 기억들 중 하나가 이 노래이다. 거실에 있던 컴퓨터에서는 항상 세곡이 틀어져있었는데, Fly Me To The Moon과 Norah Jones의 Don’t Know Why, New York City였다.

   

그중 Fly Me To The Moon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사랑으로 많이 리메이크 되면서, 그때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누구의 노래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어서 기억해야 하고 신기하게도 계속 기억이 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신나지도 않고 기교가 올드 재즈 느낌도 아닌 여성 보컬의 리메이크 곡, 미묘하게 다른 그 노래의 감성 때문에 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곤 한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보다는 많이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포근한 집에서 나는 주로 거실에 있었고, 거실에 놓여져 있던 컴퓨터에서 나오는 Fly Me To The Moon 그리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In other words, hold my hand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이 부분이 가사가 크게 바뀌지 않고 자주 반복되는 부분이라 어릴적 엄마랑 자주 이 부분을 같이 부르곤 했다.

  

이 노래는 내가 아주 어릴 적 들었던 노래였기에 2000년대 초반의 조금은 촌스러운 옷들과 그 시절만의 순수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구긴 휴지에 물감을 푼 물을 붓에 묻혀 꽃을 만들어주던 언니, 굳이 뒷부분으로 먹던 요구르트, 언니와 함께 꾸며주던 엄마의 머리칼, 푸들이 포인트로 들어간 나의 티셔츠. 여유로우면서도 사랑과 순수함이 잔뜩 남아있는 포근했던 나의 옛날 집.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재즈곡부터 영화의 한 장면까지 재즈 네 곡과 나의 추억을 일기처럼 써내려보았는데, 각 곡에 써둔 분위기를 즐겨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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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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