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배경을 전경으로 살펴보는 책 '예술의 정원' [도서]

글 입력 2022.03.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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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라 하면 비밀의 화원이나, 유럽의 화려한 궁를 에워싼 정원, 텃밭과 구별하기 힘든 전원주택의 정원 정도가 떠오른다. 정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원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많지 않다고 하겠다. 빈의 벨베데레 궁도 다녀오고, 쇤부른 궁도 다녀왔는데 더웠고 화려하고 컸다는 인상밖에 남지 않았으니 변명할 여지가 없다.

 

'만약 이 책을 그때에 봤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예술의 정원>의 내용은 풍부하고 자세하다. 간결하게 회화 자료와 함께 핵심이 정리되어 있다. 빠르게 볼 수 있으며 급하면 필요한 부분만 사전처럼 찾아 읽어도 좋다.


이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개념이 회화 속에 반영된 방식을 살피는 Part 1~Part 5와 정원 자체에 대해 설명하는 Part 6~7, 정원이 예술 속에서 다뤄지는 방식을 다루는 Part 8~9로 나눌 수 있다. 앞 부분에서 정원이 사람들의 의식과 연결된 모습을 이해하고 나면 정원의 구성요소가 어떤 의도로 배치되었는지 생각하며 Part 6~7을 읽을 수 있다.

 

이어 몇몇 문학 작품을 예시로 정원이 가진 상징과 의미를 알 수 있다. 영감의 원천이 되거나 이상이 펼쳐진 장소로 묘사되는 예시들은 정원이 실제 삶 속에 존재하면서 상상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내용이 다양한 그림 자료와 화면 분석과 함께 제시된다. 꼭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지만 차례대로 읽을 경우 방금 설명한 흐름으로 내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표지 평면] 예술의 정원.jpg

 

 

전반부를 읽을 때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정원 양식에 반영된다는 점을 떠올리며 읽는 것이 좋다. 저자는 정원에 사용되는 재료나 구조물, 식물의 형태는 물론 정원과 가장 가까이 있는 건물의 구조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가령 바깥 세상과 구분된 공간이었던 정원은 바깥 세상의 혼란함과 대비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기던 이집트의 정원은 격리된 질서의 공간이었다. 이와 달리 자연이라는 신들의 세계를 축소하여 표현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정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고대 로마의 정원은 그리스와 유사하게 자연과 신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노력하며 신에게 보호받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둥을 배치하기도 한다. 당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자연관과 종교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슬람의 정원과 중세 수도원의 정원은 외부와 분리된 이상을 표현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그들이 정원을 채운 상징이 코란의 파라다이스인지 에덴과 그리스도의 이미지인지의 차이가 있다. 정원을 질서정연하게 가꿨다는 점에서 고대와 중세인들이 외부 자연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공포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원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시대가 바뀌는 만큼 정원에 투영되는 자연관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는 정원의 요소들이 조금 더 인간의 힘 아래에 놓인 모습이 나타난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정원이나 바티칸의 벨베데레 정원은 그 공간만으로도 공간의 주인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렬된 나무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중정 등은 정원을 따라 건물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정원의 주인이 설계한 대로 공간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인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를 느끼고 주인의 힘을 곳곳의 요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인간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대상이었던 셈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풍경식 정원이 등장한다. 인공미가 아니라 자유로움을 선택한 정원 조성 방식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주변 자연과 연속성을 강조한 정원의 모습이다. 물론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아니고, 당대 영국인들이 생각했던 멋진 자연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영국인들은 더 나아가 '숭고의 정원'이라고 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 아찔함을 주된 분위기로 삼는다.

 

거친 자연을 꾸며낸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연을 향한 두려움마저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었다는 점이 자연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반증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다 정원은 공원의 형태로 등장한다. 우리도 도심 속에서 공원을 종종 만난다. 일부 유력자의 소유물이었던 정원이 도시의 낙원이자 쉼터가 되어 대중과 함께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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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환상의 세계'로 비유하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바타를 꾸민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아바타에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좋은 것을 해주려 한다. 멋진 의상, 좋은 아이템, 상상해봤던 외모와 스타일을 아바타에 적용한다. 꿈꿨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또다른 나, 이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아바타가 아니라 외부 공간을 꾸미면 그것이 정원이 된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모네가 부지를 사들여 창포와 수련을 심어 매일같이 정원을 가꿨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듯 정원을 다듬고 정원을 관찰하여 그림으로 남겼다.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영감을 표현하는 3차원의 캔버스였다고 할 수 있다. 정원은 꿈과 현실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즉 두 개의 세계가 겹쳐 있는 곳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꼬마 요정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연금술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으로 보자면 밤에 놀이공원을 찾아가 온갖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겪는 상상을 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어쩌면 정원을 통해 '시대의 취향과 미학'을 읽어내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정원이 회화의 중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원의 모습을 여과 없이 화폭에 담아냈을 것 같다. 예술가들에게 당대의 정원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저 굳이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의 정원을 배경으로 한 과거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읽어내고, 상징을 통해 그들의 무의식을 탐구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컬쳐리스트.jpg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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