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루한 일상을 사랑하는 법 - 패터슨 [영화]

글 입력 2022.03.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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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써 세 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주제의 글을 써야할까 고민하며 나의 지난 일주일을 한 번 되짚어 보았다.

 

발등에 떨어진 불 치우듯이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일주일이었다. 마땅히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워드의 텅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팍팍한 일상 속에서 앞으로 내가 에디터로써 많은 사람들과 향유할 수 있는 글을 써나갈 수 있을까 걱정도 밀려온다.

 

걱정은 뒤로하고, 나의 아트인사이트에서의 세 번째 기고는 여유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 빈틈을 만들고 싶어서 챙겨 보았던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이라는 영화 소개로 채워보고자 한다. 무의미와 권태로 절여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잔잔하지만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준 이 영화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울림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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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감독: 짐 자무쉬

주연: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내용은 아주 단조롭다. 미국 뉴저지 주의 ‘패터슨’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일주일을 담은 영화이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아내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들고 출근을 한다. 매일 똑같은 노선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돌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아내와 저녁 식사를 먹고 반려견 산책을 시킬 겸 나갔다가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는 비밀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시를 쓴다. 이러한 기본 틀을 가진 하루들이 모여 패터슨의 일주일을 이루고 있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일지라도 완전히 똑같은 일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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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무표정으로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는 패터슨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울적해진다. 나는 팍팍한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하고 싶어서,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는 편인데, <패터슨>은 나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아니라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주일’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ctrl c + ctrl v 해놓은 것 같은 패터슨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 조금씩 다른 일이 일어난다. 매일 같은 노선을 운행하고 같은 풍경을 보지만,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고 그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다르다. 어떤 날은 펍에 가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시비가 걸리기도 하며, 또 다른 날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좋은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구상에 딱 하나, 고유한 나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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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 로라의 삶을 들여다보자. 그녀의 삶은 사실 패터슨의 삶보다 더 단조롭다. 고정된 직장에 다니지 않는 그녀는 주로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로라는 그 누구보다 생기 있는 삶을 살아간다. 스타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기타 연습을 하고, 주말 마을 행사에서 컵케이크를 팔 생각에 며칠 내내 들떠 있으며, 매일 집의 인테리어를 조금씩 취향대로 바꾸는 등 그녀의 삶은 매일이 기대와 열정으로 반짝거린다.

 

같은 집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패터슨과 로라의 삶이 다른 것처럼, 우리는 같은 장소와 상황에 놓이더라도 각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이렇듯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삶을 관찰하고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기에 개인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그 어떤 사람의 것과도 같을 수 없는 고유한 이야기인 것이다.

 

 

 

꾸준히 무언가에 대해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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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은 항상 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시를 쓴다. 동형반복의 일상 속에서도 묵묵하게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은 하나의 아름다운 시로 다시 태어난다. 언뜻 보면 패터슨이 무기력하고 방관자적인 태도로 삶에 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삶의 한 페이지를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꾸준히 무언가에 대해 쓰는 일은 우리 삶에 주어지는 것들을 꼭꼭 씹어 맛볼 수 있게 한다.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오늘 만난 사람과의 대화를 곱씹어 보게 하고, 오롯이 혼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그것들을 나의 언어로 써 내려간다. 나의 일상이 화려하고 재미있지 않아도 좋다. 나의 일상은 충분히 훌륭한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나는 무언가에 대해 꾸준히 기록하는 일이 우리가 삶을 더 촘촘하게 살아가고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삶이라는 텅 빈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것


 

영화의 후반부에서 패터슨이 늘 곁에 지니고 다니며 시를 적는 노트를 그의 반려견이 갈기갈기 물어뜯어놓는 일이 발생한다. 그가 적어온 시들이 모두 허공에서 흩어지고 만 것이다. 절망한 패터슨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남자에게 새 노트를 선물 받는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Sometimes empty page presents most posibilities.

 

영화 <패터슨> 中

 

 

새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펼칠 때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요즘은 블로그, 인스타그램, 핸드폰 메모장 등 여러 곳에 글을 쓰게 되어서, 수기로 쓰는 다이어리는 매일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 일기장을 2년은 기본 3년 가까이 쓰기도 하는데, 이 일기장에 나의 3년이 담길 것이라고 생각하면 첫 페이지의 펼쳤을 때 기분이 묘하다.

 

나는 어떤 이야기로 이 일기장을 다 채우게 될까. 첫 페이지에 오늘의 날짜를 적고 있는 지금과,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닫고 있을 미래의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앞으로의 삶이 수많은 가능성이 담긴 빈 페이지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막막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한다. 나의 일상, 위에 수많은 우연들이 더해져 완성될 나의 이야기를 기대해 보며,

 

하루하루를 그저 바쁘게 흘려보내던 나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 영화, <패터슨>을 추천한다.


 

[정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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