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게리 브루커를 추모하며 [음악]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과 함께한 예술 이야기
글 입력 2022.03.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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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게리 브루커(Gary Brooker)'가 지난 2월 19일 토요일 운명했다. '게리 브루커'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에서 보컬과 피아노를 맡아 프론트맨 역할을 톡톡히 한 인물이다. 오늘 다룰 곡이자 1967년 발매된 밴드의 역작 < A Whiter Shade of Pale >을 작곡하기도 했다.


2000년에 태어나 2022년 이제 막 대학 졸업반이 된 나. 솔직히 긴 세월의 간극에 아는 건 전혀 없지만 이 노래를 참 좋아했다. 정말 아는 게 하나 없는데도 좋아하게 된 음악이기에, 오히려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롤링 스톤의 부고 기사가 무척 아팠다. 오늘은 그를 추모하고자 < A Whiter Shade of Pale >에 관해 어김없이 개인적인 이야기- 어떻게 알고 좋아하게 됐는지를 담아보고자 한다.

 

 

 

영화 <뉴욕 스토리 (New York Stories) - 인생 교습 (Life lesson), 1989>


 


 

영화 <뉴욕 스토리>는 1989년 세 감독-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코폴라', '우디 앨런'의 단편 영화를 엮어 만든 작품으로, 그중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인생 교습>에 이 나온다. 바로 첫 장면부터 < A Whiter Shade of Pale >이 흘러나오며 영화를 설명하는데, 필자는 여기서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곤 완전히 매료됐다. (위 영상 참조)


그렇게 푹 빠진 계기인데, 영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 흐르며 마른 붓과 굳어버린 물감 찌꺼기들이 아이리스 인 (Iris In) 된다. 이어 두 주인공- 뉴욕에서 활동하는 유명 중년 남성 화가 '라이오닐', 그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은 뛰어난 미모의 젊은 여성 조수 '폴렛'의 등장 장면에서도 같은 아이리스 인 기법이 사용된다.

 

여기서 잠시, < A Whiter Shade of Pale >의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아이리스 인을 살펴보자. 해당 기법은 작품에서 중요한 지점인데, 도입부에 나오는 '라이오닐'의 마른 붓과 굳어버린 물감 찌꺼기처럼 식어버린 창작욕구 및 열정이 '폴렛'에 의해 다시금 불타오르며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울러 '라이오닐'이 '폴렛'에 품는 감정은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젊은 육체를 향한 육욕 및 젊은 예술가에 대한 질투일 뿐이며 자신의 예술 기폭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는 영화 연출 장치다.


이렇듯 영화 속엔 다양한 전달 방식이 있는데, 작품의 테마곡인 < A Whiter Shade of Pale >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시작하자마자 귀를 사로잡는 오르간 연주에 어떠한 낭만이 느껴진다. 영화 속 주요 시퀀스로 '나이 든 예술가와 젊은 예술가 사이의 동경과 질투'가 있는데, 이러한 시간적 거리를 사운드를 통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60년대에 발매된 곡임에도 불구하고, 50년대 스타일을 내고자 한참 발전한 스테레오 녹음 방식이 아닌 모노 형식으로 녹음됐기 때문이다.

 

또한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으면서, 그냥 술에 취해 지나간 이야기를 떠드는 것 같기도 하고, 절제된 듯 감정을 토해내는 '게리 브루커'의 보컬은 어떤가. 단순히 듣기만 해도 여러 감상이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사랑, 아픔, 열정, 선망, 시기, 탐욕의 키워드를 단번에 쏟아낸다. 정말이지, 매료될 수밖에 없다.

 

덧붙여 가사도 살펴보자. 해당 곡이 유명해진 데에는 무슨 말인지 해석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한 가사가 한 몫 했다. 가사를 쓴 '키스 레이드(Keith Reid)'는 가사에 관해 "처음엔 제목만 정해져 있었고, 직접적으로는 시끌벅적한 파티와 소란 속에서 소녀가 소년을 떠나는 분위기의 이야기를 만들려 했다"면서 "난해한 가사를 쓰려 한 건 아니며, 그림 퍼즐처럼 하나씩 맞추면 전체 그림을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시인이었던 그의 가사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본론으로 돌아와 영화와 곡을 연결해 본다면 '라이오닐'과 '폴렛'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순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극 중 '라이오닐'은 폴렛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성욕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한다. '폴렛'이 자신을 떠난다면 지붕 위로 올라가 총 맞은 개처럼 울부짖을 것이라고, 한마디로 죽을 만큼 사랑하노라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러한 대사와 함께 쏟아내는 '라이오닐'의 절절한 눈빛에 '폴렛'은 깜빡 속을 뻔했으나, '라이오닐'이 수차례 더 '폴렛'에게 그릇된 욕구를 내보이고, '폴렛'은 싸늘하게 외면한다. 이 같은 부적절한 구애와 합당한 거부가 반복될 때마다 '라이오닐'은 그가 받은 좌절감과 모멸감을 작품에 풀어낸다. 그리고 폴렛이 떠나자, 도입부에선 죽 죽 대충 그어진 스케치뿐이던 캔버스 위로 대형 회화가 완성된다.

 

이렇듯 영화에서 '라이오닐'의 사랑은 그의 예술-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 상실감, 막막함 등 연정의 고통을 느끼고 토해내야만 하는 자신의 업을 진행하고 완성하는 매개이다. 동시에 단순한 성적 갈망이면서 진실하고 간절하게 구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번 이 두 가지 사이에 라이오닐은 서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가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파하면서 '인생 교습'이 담긴 작품을 그려내는 '라이오닐'. 이러한 모순과 그 결말이 적확하게 표현된 곡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애니메이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The End of Evangelion), 1997>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속 O.S.T. < Komm, susser Tod :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 얼핏 들으면 평화로운 곡 분위기와 청아한 보컬에 아름답게 들리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심오하고 어두우며 암울하다. 실제로 극 중 서드 임팩트- 세계를 원초로 되돌리는 멸망의 순간에 흐른다. (위 영상 참조) 그런데 이게 < A Whiter Shade of Pale >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 Komm, susser Tod :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가 삽입된 장면에 원래는 '비틀스'의 < Hey Jude >를 넣으려 했다. 그러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제작비를 줄이고 줄여 어렵사리 만든 애니메이션인 만큼, 인기를 끈 이후에 나온 극장판임에도 < Hey Jude >의 너무 높은 저작권료를 지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비슷한 느낌의 곡을 만들기로 한다. 바로 여기서 < A Whiter Shade of Pale >의 멜로디가 차용된다.

 

< Hey Jude >가 모티프를 따온 '바흐'의 음악처럼 < A Whiter Shade of Pale > 역시 '바흐'로부터 가져왔기 때문인데, 웅장하고 쓸쓸하면서 어쩐지 명랑한 곡 분위기가 서드 임팩트의 피폐한 분위기에 반(反)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에 더해 애당초 < Komm, susser Tod :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의 제목부터 '바흐'의 성가곡을 따라 붙인 데다, 서드 임팩트를 일으킨 극의 주인공 캐릭터 디자인에 적극 활용된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이 가장 좋아했던 곡 중 하나가 < A Whiter Shade of Pale >이었기에 더욱 묘하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마무리되는 극장판 후반부, 그것도 가장 극적인 장면에 흐르는 곡이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과 관련 있다니.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너무 다른 두 장르가 머릿속에서 겹쳐져 알싸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곤 더욱 사랑하게 됐다.

 

 

 

닫는 말



좋은 음악, 좋은 영화, 좋은 애니메이션. 모든 문화 예술은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단순하게는 레퍼런스로서 영감을 주거나 서로를 연상시키는 매개가 되기도 하고, 때론 어떠한 감상을 직접 심어주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면으로 '소통'한다. 그러한 점에서, 무지하던 것을 일깨워주고, 사랑하는 것을 보다 더 사랑하게 해주며, 여러 예술 속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 '게리 브루커'에게 큰 감사를 느낀다. 필자는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어떠한 태생적 연고도, 이상의 지식도 없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먼 땅의 스물세 살까지 감명받을 만큼 진정으로 그의 예술이 살아 숨 쉬며 세상과 소통했다는 증거 아닐까.


한마디로 무엇이 좋은 예술인지 알려준 예술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프로콜 하럼'의 공식 성명처럼 'brightly-shining'이었던 '게리 브루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평온 속에 잠들기를 서원합니다. Rest in peace.

 

 

 

 

[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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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CBS
    • 기사 감사합니다. 음악으로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 가셨다니..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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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정우
    • 돌아가신지도 몰랐네요...부디 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하게 노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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