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흔들리면서 나아가기 - '다정한 얼룩' 독서모임

글 입력 2022.03.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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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궁금하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억을 불러와야 할까. 자기 자신의 경험이 글의 직접적인 재료가 되는 에세이 장르를 읽을 때면 특히 더 기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사소한 기억일지라도 에세이 안에서는 빛이 나곤 한다. 그 기억에 매료되어 우리는 에세이를 읽고, 에세이를 쓴 사람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진다. 에세이는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우리 각자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그 기억들이 모인다면 또 얼마나 큰 무언가가 될까. 기억의 합은 숫자 계산처럼 1과 1을 더해 2가 나오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연금술이다. 따로 따로 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불러온다.


‘한량’의 에세이 『다정한 얼룩』을 읽으면서도 궁금했다. 이 책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을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난 2월 26일 『다정한 얼룩』을 읽은 사람들을 실제로 만난다. 우리는 2시간 동안 떠들며 혼자서는 생각해낼 수 없었던 것을 얻어갔다.

 

 

 

이렇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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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얼룩』은 글쓴이의 인생에 스쳐갔던 ‘남성들’에 대한 회고록이다. 어떤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고, 어떤 남성은 난처한 상황에 구세주가 돼주기도 하며, 미성숙한 감수성을 키워주거나, 치기 어린 고민을 들어주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옷깃만 스친 아주 짧은 순간에 오래토록 기억될 트라우마를 심어주기도 한다. (...)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후반부를 장식하는 임신/출산/육아 파트이다. 그녀가 만난 가장 마지막 남성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던 남성의 삶을 그녀가 직접 이해하려 노력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내 아들은 자라서 어떤 남성이 될까? 그 물음엔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을 거라 믿는다.(태임)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서로 영원히 이해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성異性은 그 단어가 지닐 수 있는 깊이 보다 훨씬 먼 거리감을 내 안에 드리웠다. 그러나 채 떼어낼 수 없는 반대편을 서로 응시하며, 마침내 서로를 더듬고 그 사이 몰이해라는 투명한 벽을 깨달아 알고 이제 스스로를 돌아다보며, 끝이 없을 정반합의 삼각형을 그려가는 것.  (...) 아직도 나는 나를 다 모르겠다. 더군다나 반대편의 시선에 비치는 나는 아예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시야에 어리는 나를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지금 멀고도 가까운 여러분들을 그려보며, 조심스러운 탐색과 그 끝 자그마한 이해 한 줌을 가져보길 소망한다.(서상덕)

 

‘다정한 얼룩’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읽기로 결심했던 책이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나와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뜻밖에 내 모습을 발견하고 새삼스러워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사실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걸 에세이를 읽으며 깨닫곤 한다. 유쾌하고 예측 불가능한 저자의 성격이 나와는 달라서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읽어나가면서 점차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기억들이 떠올랐다.(김소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의 부제가 ‘어떤 남자들에 대하여’였던 만큼, 독서모임의 화두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젠더갈등이였다. 모임에 참가한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와 다른 성별의 삶을 나누고, 이해해보고 싶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실제로 책에는 저자가 겪었던 성차별, 아들을 낳고 들었던 복잡한 심경,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으레 어두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모임에서 나왔던 질문의 일부를 공유해본다.

 


Q 책 소개엔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남성과 더불어 살아온 역사를 더듬으며” 쓴 에세이라고 나와 있다. 다소 공격적인 글을 예상하진 않았는지, 다들 어떤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남성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고 두렵기도 했다. 다 읽고 나니 어떤 관점을 뚜렷하게 제시하기보다는 저자의 경험 자체가 중심이 되는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 독자로서 마음은 편했지만 알고 싶었던 것을 다 알지는 못한 느낌이라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임신과 출산 경험을 굉장히 자세하게 풀어주셔서 깨달은 바가 많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생각이다. 이성애자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저자가 경험한 내적, 외적 갈등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왔다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책 속에서 그녀의 마지막 남자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게 될 아들에 대해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써주셨는데, 공감이 되었다.

 

-저자가 겪은 일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학교에서 들었던 성차별적 발언이나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느꼈던 공포 같은 것들은 나 역시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의 비중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읽는 동안 너무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Q 평소 이성(異姓)에 대한 관점은 어떠하고, 관련하여 인상 깊은 기억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느끼는 걸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느낄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공감도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이해하려고, 그려보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읽게 되었다.


-공감한다. 하지만 어떻게 의견 차이를 좁혀갈 수 있을지는 고민이 된다. 가족과의 대화에서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슬플 때가 있다. 얼마 전에 남동생과 군대와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그런 걸 느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잘 지내고 싶은데, 이런 어긋남의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에서 저자가 성추행 경험을 말하며 이 세계가 "어디서도 허가받지 못할 만큼 허술한 설계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 그 표현이 딱이다 싶었다. 나 역시 각계각층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날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사실은 허상이고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느낌. 그런데 이런 느낌조차 공유되지 못한다는 게 답답하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젠더갈등을 보며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여러 가지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해악이 큰 것 같다.

 

 

 

얼룩도 다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발적인 성격의 에세이를 기대했거나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편하게 읽기 좋은 에세이였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저자가 여행을 가서 겪었던 일이나 남편과 연애했던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고 생생했다. 상덕님은 요즘 무기력하게 집-회사를 오가고 있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저자의 여행기를 보면서 덩달아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팬데믹으로 여행이 먼 나라 얘기가 된 지 오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가까운 곳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어졌다고 말이다.

 

『다정한 얼룩』 속 일화들이 이렇게 빛나는 까닭은 저자가 지금 거기에 있는 것처럼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유쾌하고 따뜻한 덕분일 것이다. 좋아하는 밴드 콘서트 무대에 난입한 군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에게 무턱대고 말을 걸어 연애를 시작한 사람, 종이지도를 들고 한 번도 안 가본 곳으로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서는 사람. 에세이는 당연하게도 쓴 사람을 닮았다.


우리는 저자가 여행을 대하듯이 일상을 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여행은 어느 정도는 피곤하고 때론 여행중에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일로 수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저자는 흔들리는 것을 오히려 즐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얼룩마저도 다정하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의 유쾌하고 따뜻한 책”이라는 태임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

 

에세이를 읽으며 확장되고 복원되었던 기억들은 또 다른 독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풍성해졌다. 모임에 참여한 모두가 그러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얼룩을 갖고 있다. 이미 생겨버린 얼룩은 지울 수 없고 없던 일로 여길 수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지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도 저자처럼 흔들리면서도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번 독서모임은 그걸 배운 시간이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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