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랫동안 한 가수를 응원한다는 건.

에픽하이 정규 10집 "Epik High Is Here".
글 입력 2022.02.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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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난 후 출석하듯

들락날락거렸던

죽음의 문턱

그마저도 추억

내 상처들과 흉터는

연약함의 증거 아닌

강인함의 증거

 

(중략)

 

숨 쉬는 이유였지 무대 위 모든 순간이

고통과 미소

눈물과 환희로 뒤엉킨 지난날들이

내 눈앞을 스치고

사라져 간 이들과

살아남은 모두를 위해서

잔을 들어 머리 위로.

 

- 에픽하이, Champagne

 

 

[크기변환]에픽하이1.jpg

 

 

열 살 때였나, 친오빠가 '터치가 되는 mp3'를 새로 샀다고 본인이 쓰던 그 시절 작은 아이리버 mp3를 내게 줬었다. 당시 유행하던 음악들이 여럿 담겨 있었지만, 유독 '에픽하이' 노래가 많았다. 흔히 말하는 '에픽하이 전성기' 시절 (팬으로서 그다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2-5집 발매 시절)이었기 때문인지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수록곡들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음악 다운로드 하는 방법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어폰을 끼고 'Fly'를 시작으로 에픽하이 노래들을 닳을 때까지 돌려 들었었다.

 


[크기변환]에픽하이2.jpg

그래서...

 

 

그리고 얼마 안 가, 많이 알려져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에픽하이는 해체설까지 나돌았었다. 인터넷을 지금처럼 많이 할 때가 아니었고,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한 다큐 프로그램이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파악하기도 버거웠다. 아직까지도 '악플'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언급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지만, 당시에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었다. 그냥 무사히 새로운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나에게도 신형 mp3가 생겼다. 당연히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에픽하이 노래를 담는 거였고, 그 무렵 다행히 잘 이겨낸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가 발매한 솔로 앨범 전곡도 다운로드 했다. 그땐 마냥 어둡다고만 생각했던 노래들이었는데, 내가 그 시절 에픽하이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앨범 전체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가장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준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크기변환]에픽하이3_대표.jpg

 

 

에픽하이는 이후 밝은 7집과 함께 완전체로 무사히 컴백을 했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작년엔 10집 앨범 사, 지난주엔 10집 앨범 하를 발매하며, 10집을 완성시켰다. 7집에서 10집까지 오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예상보다 길어지는 공백기에 애가 타던 적도 있었지만, 위기를 함께 이겨냈던 에픽하이를 믿었기에 크게 걱정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정규 10집까지 발매하며 에픽하이는 마이너 한 힙합 음악을 '대중적으로' 만들어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에픽하이' 노래를 크게 두 갈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힙합 그룹' 에픽하이로서 강하면서도 센스 있는 펀치라인으로 사회 비판하는 음악들, '대중 가수' 에픽하이로서 쉽게 흥얼거리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들. 반대처럼 보이는 두 가지 스타일의 음악들이 고루 어우러졌던 앨범이 2-5집이었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이때의 에픽하이를 전성기라고 언급한다.

 

 

[크기변환]에픽하이4.jpg

 

 

하지만 그 호평들은 곧 7-10집까지 오는 동안 역으로 비판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신곡이 나오면 '예전의 에픽하이가 그립다'라는 댓글이 눈에 보였다. 밝은 노래를 내면 그런대로, 흔히 말하는 '에픽하이 감성' 노래를 내면 그런대로 안정적인 루트를 탔다며, 오랜 팬인 내가 들어도 '오 새롭다'라며 신기해하는 노래가 나와도 자꾸만 전성기 시절 에픽하이를 찾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내가 당사자는 아니라서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정규 앨범 사이 공백기가 길어졌던 것은 오랜 기간 가수 활동을 하면서 본인들도 이와 같은 두 갈래 사이에서 온 매너리즘을 극복하느라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중간중간 싱글이나 미니 앨범 내준 것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약 20년이 되어가는 동안 다양한 곡들을 들려줬던 에픽하이의 새 정규 앨범 10집 상과 하는 'Epik High Is Here'이라는 앨범명답게 그동안의 에픽하이 발자취, 힙합과 대중성 사이의 갈등, 에픽하이를 흔들었던 여러 외적인 잡음, 그리고 그것의 극복,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에픽하이 활동 절반을 함께 해온 입장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앨범이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끝마칠 때쯤이 된 지금, 인간 '이현지'로서 성장을 한 것처럼, 에픽하이도 성장을 하며 어른이 되어간 것 같았다. 작년에 리뷰를 하기도 했던 "Lesson 시리즈의 마침표"부터 안 해본 장르를 섞은 트랙들과 에픽하이 이야기를 하던 '힙합' 곡들까지 가득 담았던 10집 상.

 

[Opinion] 그들이 세상에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의 답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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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임"

 

 

10집 하에서도 에픽하이 초창기 느낌이 물씬 나는 'Prequel'로 시작하며, 대중들이 가장 익숙한 에픽하이 음악 (환상의 짝꿍이나 다름없는 가수 '윤하'의 피처링까지), 싱글로 공개했었던 색다른 시도가 묻어 있는 곡들, 그리고 담담하게 담아낸 지금까지의 에픽하이 서사를 담은 마지막 곡 'Champagne'까지. 다 듣고 나니, 오랫동안 한 가수를 응원하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뿌리는 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에픽하이에게 그 어느 때보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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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quel' 가사의 일부, 형광펜을 친 부분은 그동안의 에픽하이 정규 앨범명이다.

 

 

사회인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보니, 어릴 땐 마냥 어른 같았던 에픽하이가 이젠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아마 오래 덕질해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고,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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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이 사람들이 언젠가 무릎이 아파 무대 위에서 많이 뛰지 못하고, 체력이 따라주지 못해 숨이 금방 찰지 몰라도... 계속해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거창하지 않아도, 내겐 이미 거창한 사람들이니까, 부담 갖지 않고 오래오래 음악을 하면 좋겠다. 지금도 내 인생 일부, 여기(here), 에픽하이는 존재하고 있다. Epik high was here, Epik high IS HERE. 그리고, HIGH SKOOL (팬덤명) IS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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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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