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기술에게 도전을 건다. 기술은 예술에게 영감을 준다.

글 입력 2022.0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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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 어쩌면 굉장히 다른 두 단어처럼 느껴지면서도 요즘 문화예술 트렌드를 생각해보면 함께 어울리기도 하는 미묘한 조합이다.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은 예술로, 기술은 기술로 엄격히 구분되었다. 예술은 아티스트들로만 이루어진 창의적이고 주관이 개입하는 영역으로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관들과 연결되었다. 반면에 기술은 과학자들과 공학자들로만 이루어진 이성이 감성의 충동과 주관을 억제하는 영역으로 산업 발전에 연결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형태로 대비되었던 이 두 단어들은 실은 원래부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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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네(techne)란 ‘규칙에 따른 인간의 합리적 제작활동’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이다. 단어를 봤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술(technique)은 이 단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인간정신의 외적인 것을 생산하기 위한 실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술(art)은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한 단어로 ‘숙련된 솜씨’를 의미한다. 그리고 아르스(ars)는 놀랍게도 기술과 같이 테크네에서 나온 단어이다.

 

테크네(techne)는 예술과 예술을 사용하는 기술을 통합한 개념으로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들, 생산 및 제작을 위한 기술들과 지식들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이다. 즉, 예술과 기술은 서로 다른 종류와 유형의 활동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정신적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꽤 최근까지도 대립적인 구분을 이어오던 예술과 기술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미디어아트’, ‘키네틱 아트’, ‘아트테크놀로지’ 등의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만나며 발명가와 예술가의 경계선을 흐리고 있다. 

 

이 덕분에 기존과는 다른 유형의 상상력과 미학이 허락되는 세상이 현재 펼쳐지고 있다. 한 가지의 감각,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요소가 강했던 문화예술이 다른 오감각들도 함께 섞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리의 문화예술은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지각(perception)으로 즐기는 것이 되었다.

 


 

 

네일 하비슨은 색맹 예술가이자 2004년도에 영국 정부가 인정한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 인간이다. 태어날 때부터 색깔을 보지 못해 흑백의 세상에서 살았던 하비슨은 아이보그(eyeborg)라는 장치를 머리에 설치해 그를 통해 색깔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장치는 빛의 파장을 소리의 주파수로 바꾸고 이를 통해 색깔들은 각자 고유한 소리를 가지게 된다. 하비슨은 그 소리들을 들어서 다양한 색깔을 인식할 수 있다. 이 장치를 사용하며 일상 속에서 색깔을 귀로 들음으로써 지각했던 하비슨은 현재 ‘소리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하비슨은 소리 화가로써 우리는 눈으로 보는, 본인은 귀로 보는 색들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그리는 그림들 중 하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담긴 여러 색깔들을 듣고 그린 ‘소리 초상화’이다. 하비슨은 아이보그를 통해 그릴 모델의 얼굴을 본 후 모델의 얼굴에서 들렸던 소리들의 색들만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모델의 얼굴과 같은 소리를 내지만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게 된다.

 

그의 또 다른 그림은 음악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음들과 성조들의 색들로 그린 그림이다. 음악을 들을 때 들리는 수많은 음들, 사람이 말할 때의 높낮이에서 들리는 음들이 우리에게는 그냥 단순히 음으로 들릴 뿐이다. 하지만 하비슨에게는 그가 보는 것들 모두가 소리로 인식되기 때문에 반대로 특정 음을 들었을 땐 음뿐만 아니라 그 음으로 지각되는 색깔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을 듣거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 담겨 있던 음들을 색깔로 변환하여 그 색깔들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보그를 통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넘어 적외선부터 자외선까지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예술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입체 그림 전시회로도 유명한 미술관이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팻말은 “만지지 마시오”인데 프라도 미술관의 입체 그림 전시회에서는 그 대신 “마음껏 만지시오” 팻말을 내걸어 비주얼아트를 즐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각장애인들도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전시회의 관람객들은 3D 프린팅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표현된 2D의 거장의 회화 작품들을 직접 손으로 마음껏 만지며 감상함으로써 기존의 시각으로만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을 뒤집었다.

 

실은 프라도 미술관 이외에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 여러 곳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문화예술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단순히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지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에 그려져 있는 사물들의 질감도 표현되어 느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분리되었던 예술과 기술이 다시 합해지면서 우리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더욱 예술과 기술 사이를 돈독히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 정신과 모험으로 가득 찬 질문들은 ‘눈으로 본다’ 또는 ‘귀로 듣는다’ 등 특정한 감각으로 특정한 문화예술만 즐기는 것이 정답이었던 문화예술의 고정관념을 ‘귀로, 손으로 본다’ 또는‘눈으로 듣는다’ 등 그냥 지각하기만 하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으로 재탄생 시켜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확장되기 시작하며 그 둘을 나누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오늘, 나는 이 현상이 예술과 과학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과정인 동시에 그 둘이 원래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 반갑다. 이제는 융합뿐만 아니라 융합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만큼, ‘예술’과 ‘기술’이 아니라 ‘테크네’가 세상에 다시 등장할 미래가 다가 오는 것 같아 기대된다.

 

 

[신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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