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렴 어때! 그래도 우린 살아있잖아.

글 입력 2022.02.2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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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소설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여러 번 들어봤을 만한 도서들이자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소설들이다. 세 도서는 주제 면에서도, 느껴지는 분위기도 매우 다르다. 그러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부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작가만의 세계를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이 특별히 강조되는 소설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특정한 소재 혹은 특별한 주인공, 그것도 아니면 눈에 띄는 어구나 문장이 제목으로 붙여져 있는 책들이 인기를 얻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사람들이 공간을 주제로, 제목으로 내세우는 소설들을 찾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상상하고, 주인공이 겪고 있는 공간은 어느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특정한 상황과 시간이 되면 독자들도 방문할 수 있을 것처럼, 만져질 듯 말 듯한 공간들이다. 편의점, 백화점,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현실 사회에서 가지는 개방성도 모두에게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은 효과를 배가한다.

 

이러한 확장성은 두 번째 인기 요인으로 이어진다. 바로 다채로움이다. 먼저, ‘불편한 편의점’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경우, 주인공의 시점에서 그의 서사를 충분히 이야기하면서도 소설 속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각 장의 소재로 활용하며 한 소설 속에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처럼 주인공의 이야기와 그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중첩되며 진행되는 방식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다른 소설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모두 한 사람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은 분명한 차별점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jpg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여타의 ‘공간’을 주제로 한 소설과 다른 이유는 이 소설의 주제가 되는 공간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모두에게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특이성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과 주제가 되는 공간의 특성이 더해져 비슷해 보이는 소설들 속에서도 조금 더 깊이 있게 주인공 개인의 성찰을 전달하면서도 마음 깊이 독자들 모두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이렇듯 유행하는 형식으로 이목을 끌면서도 확실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관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Midnight Somewhere

   

책장을 편 순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 노라 시드는 주구장창 불행을 겪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고, 고양이의 죽음, 해고 등등….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그녀의 ‘이기적인’ 선택들로 모두 망쳤기 때문에 기댈 곳이 없다. 사람만 없는가? 능력도 없다. 학생 때는 수영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오빠와 함께했던 밴드는 음반 회사와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모두 다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에 노라는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절망 속 깊이 놓인 노라는 자신이 놓친 과거의 기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실패했다고 결론짓는다. 그 이유는 다 자신이 자초한 것이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자신이 망친 거라고 단정한다. 그리고는 노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잃은 채, 죽음을 택한다.

 

예상했겠지만, 노라의 죽음은 이 책의 결론이 아닌 이야기의 서막이다. 노라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수영선수로 주목받던 시절에 유일하게 자신에게 안정을 주었던 ‘도서관’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그 도서관의 사서이자 노라의 친구였던 엘름 부인이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도서관과 엘름 부인은 노라가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한다. 즉, 누군가 삶과 죽음의 사이의 공간 사이에 가게 되면, 자신에게 의미 있었던 장소에서 자신의 기억 속 특별하게 남아 있는 인물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만나는 미지의 공간, 도서관은 독자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제공한다. 노라의 입장에서 죽음 직전에 처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책 속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만나는 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설정은 ‘죽음’이라는 개념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삶이 가진 특수성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노라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독자들은 그들 스스로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이 가졌던 경우의 수들 속에서 유영하게 된다.

 

 

Me somewhere

   

노라는 도서관에서 ‘후회의 책’을 본다. 노라가 후회하고 실패했던 일들이 수없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그 책의 무게는 상당했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노라를 짓눌렀다. 그러고 나서 노라는 엘름 부인에게, 도서관의 수많은 초록색 책 가운데 하나를 뽑아 그 속에 담긴 다른 삶을 살아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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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책의 주요 개념, ‘평행우주’가 나온다. 책 속의 삶은 또 다른 노라의 현재이다. 노라가 후회하는 일들을 이룬,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삶을 사는 노라다. 그중에 어떤 이는 유명 가수로, 또 다른 이는 유명 수영 선수로 살아가고 있으며 성격도, 몸도 우리의 주인공 노라와는 다르다. 그러나 아주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진 노라의 삶도 우리의 노라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주인공 노라와 다른 선택을 한 그들의 삶에는 다른 변수와 예상치 못한 불행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노라의 삶은 없는 걸까……. 노라는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도서관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실망이 다는 아니었다. 그녀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을 바꾼다고 해서 행복만이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노라는 그 무겁던 후회의 책에 있는 한 줄, 한 줄을 지워간다.

 

 

Whatever!

 

성인이 된 이후, 내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지는 않은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지 매일매일 고민했다. 우습지만, 올림픽을 볼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나 할 걸……,’ 하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고, 나를 거쳐 간 수많은 꿈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원망했던 날들도 많았다.

 

현재에 대한 회의가 너무 커지던 어느 날, 휴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포기했던 모든 선택지를 하나하나 되돌리기 시작했다. 운동도 배워보고, 미술 강좌를 등록하는 등 지금 나와는 꽤 거리가 있는, 그러나 예전에는 마음 깊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던 어느 날, 운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가장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좋아했을 뿐,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있던 건 아니었다. 난 이제까지 내가 갈 자신이 있는,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또, 함께 하는 여러 동호인을 보며 늦은 건 없으며 행복은 자신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40, 50의 나이에도 도전하고, 자신의 도전에서 의미를 찾으며 만족했다.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보다는 자신들이 앞으로 성취할 것들에 대한 기대가 가득 찬 눈빛으로 모든 순간을 즐기는 모습은 정말이지 빛났다.

 

우리 삶의 가능성은 아주 큰 바다와 같다. 우리는 뭐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각자의 삶은 그 넓은 바다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물줄기에 다를 바 없다.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때론 충동적으로, 때론 고민하며 한 가지 길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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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른다. 큰 강으로 흘러갈지, 아주 작은 시냇물이 되어 어느 순간 끊기진 않을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미지수이다. 그렇기에 과거는 항상 아쉽고, 미래는 항상 불안하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삶 속에서 자책만 늘어가다 보면 가장 중요한 현재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최적의 결과를 내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런 회의가 든다면, 논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불만족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후회만 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책은 여러 가지 삶들을 경험하는 노라를 통해 과거의 실패와 미래의 아득함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후회로 얼룩진,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마주칠 법한 순간에 대해 해법을 제공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한 선택은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상상하는 다른 선택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며 이제까지의 삶에서 해왔던 수많은 선택이 만들어냈을 그 무한한 가지의 삶들을 모두 아쉬워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렇기에 아쉬워하기보다는 내 눈앞에 있는 삶을 직시하고, 나의 현재를 만끽하라고. 이전에 해왔던 선택들이 그러했듯 앞으로 살아갈 삶도 무궁무진한 가능성 속에 놓여있다고. 중요한 건, 지금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은 이제까지 그래왔듯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표식이라고.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잘못된 인생이란 없다. 내 인생을 잘 끌어왔다면, 그것만으로 수고했다. 그러므로 후회할 필요는 없다. 아무렴 어떤가! 다만, 미련이 남는다면 당장이라도 도전하면 된다. 앞으로 살아갈 삶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의 나이며, 미래를 낙담할지 기대할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란 걸 꼭 기억하자. 각자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고유하기에 그것들의 집합체인 우리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하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삶은 아름답다.

   

내 삶을 더욱 사랑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추천한다. 모든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모든 전율을 고귀하게 여기고,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을 스스로 응원하게 될 때까지 이 책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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