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는 게 제일 좋아 [사람]

글 입력 2022.02.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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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가 1938년 처음 발표한 이론으로 보통 ‘유희하는 인간’으로 번역한다. 인간은 본질을 유희(놀이, 재미)라는 관점으로 파악하는 인간관이다. 그의 책 [호모루덴스]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는 그 자체로서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모루덴스’가 설득력을 얻고 20년 후 로제 카이와(Roger Cailois 1913~1978)는 1968년에 발표한 [놀이와 인간]에서 호이징하가 놀이의 기본으로 분류한 ‘경쟁’과 ‘모의’에 ‘운’과 ‘현기증’ 두 가지를 추가했다. ‘운’의 대표적인 놀이는 도박, ‘현기증’은 회전.낙하운동과 공중서커스를 예로 들었다. 모두 ‘재미있는 놀이’의 출발점이다.

 

한국인은 전형적인 호모루덴스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조흥윤 교수는 [한국문화론]에서 한국 민중문화의 두 가지 특징으로 놀이와 신들림을 들었다. 그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훨씬 다양하고 독특한 놀이문화를 가꿔왔는데 한국민중의 놀이는 일 속의 놀이, 여가 속의 놀이, 신앙 속의 놀이라는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또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한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저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 김정운 소장은 “한국은 다른 건 다 가르치면서 노는 법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의 진짜 문제는 경제나 정치문제가 아니라 삶의 재미가 없는 집단 심리학적 질병, 즉 ‘놀면 불안해지는 병’이라고 주장한다. 놀이문화라고는 폭탄주, 노래방 빼면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인 내면의 심리구조 밑바닥에서는 행복과 재미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깔려 있다고 한다. 그러한 한국의 천박한 여가문화는 결국 개인은 물론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학문적 이론에서 출발해 이를 논증하기 위해 한국의 놀이문화, 또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을 예로 들었지만 결론은 한 가지다. 사람은 재미있어야 움직이고 재미를 따라 행동한다는 거다. 100퍼센트 동의한다.

 

나는 철저한 재미주의자다.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우선이다. 뭐든 재밌으면 하고 재미 없으면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재미없는 일을 할 바에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해마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 굳이 적어두지 않아도 늘 계획의 밑바탕에는 ‘재미있는 것’이 깔려 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데 재미가 나를 찾아오는 건 아니다. 재미도 노력해야 찾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나는 주도적으로 재미를 찾아 나서는 나름 성실한 재미주의자인데, 재미를 쫓는 과정은 삶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이 과정을 즐기는 것도 또한 ‘놀이’가 되어 재미를 준다.

 

그런데 내가 재미를 느끼는 요소는 다분히 주관적이라 누군가에게 ‘이거 정말 재밌지 않아?’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영화감독 장항준이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하는 걸 본적 있다. “TV를 볼 때 분노하는 지점과 웃는 지점이 서로 같아야 한다. 웃는 포인트가 같다는 건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분노하는 지점이 통한다는 것은 세계관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주 운이 좋다. 같은 지점에서 이미 킥킥거리고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 나의 재미주의자 생활은 실로 풍성하다. 끼리끼리 노는 것도 과학이라고 했던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재미는 박장대소보다는 입꼬리 한쪽이 슬쩍 올라가거나 피식하고 콧방귀가 나오는 잔재미인데, 어제는 EBS 다큐프라임 ‘황금비율의 비밀’을 보면서 이런 잔재미를 즐겼다. 얼굴 비율이 대칭일수록 잘생기고 예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짝눈 연예인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렇다면 비율이 대칭적이기만 한다면 못생기지 않은 얼굴인 건가? 성형외과 의사인 스티븐 마쿠어트 박사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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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얼굴은 대칭적으로 만들어도 여전히 못생겼다. 대칭적으로 못생긴 거다.”

 

그냥 못생긴 것도 아니고 대칭적으로 못생겼다니. 못생긴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또는 체계적으로 못생겼다는 얘기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악의 없는 공격은 웃길 때가 있다. 물론 미에 대한 기준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느끼는 황금비율과 조화가 있다는 얘기니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나도 짝눈이다)

 

또 얼마 전에는 망원동 얼터사이드에서 열리는 [PICREN]이라는 전시를 보고 왔다. 동 시대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받아들였던 공통된 과거의 이미지(인터넷 밈, 만화 영화 등)를 현재로 소환해 만든 작품들이 주인공이었다. 전시장 좌측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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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한 속도로 돌아가는 터라 상단에 있는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그때 같이 간 동생이 “이미지 소스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버거를 연상시키는 작품에 ‘소스’는 딱 필요한 재료다. 작품 이름도 ‘버거킼’이었다. 안태원, 한지훈 두 작가의 위트에 다시 한번 ‘킼’하고 웃은 순간이었다.


재미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취미다. 나만 아는 재미라 은밀한 매력까지 있다. 이를테면 '컨버스'를 신은 날에 '큰 버스'(2층 버스)를 타게 되면 뿌듯함을 느낀다거나 돈이 떨어져 갈 때면 벙’거지’ 모자를 쓰는 식이다. 태양이 그려진 투명한 컵에 아침에는 색깔 있는 차를, 밤에는 새까만 커피를 따라 마시면서 나만의 위트를 즐기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대단함과는 거리가 멀고 아주 사소하지만, 이 사소함으로 인해 내내 즐겁고 신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가성비가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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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휴학을 끝내고 이번 학기에 복학한다. 대학생활이 딱 1년 남은 거다. 자유롭게 ‘자유’를 누리다 학교생활에 얽매일 생각에 잠시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거나 유쾌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름대로 또 나만의 ‘재미’를 찾을 테니까. 그만큼 스스로에게 거는 농담도 늘려 볼 생각이다. 재미를 찾아 더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나만의 재미로 소화할 것이다. 빵 터지는 웃음보다는 잔재미가 찾기 쉬우며, 그렇게 찾은 여러 개의 재미는 결국 행복으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디테일을 즐기고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결국 크고 작은 농담들을 충분히 찾아내고 즐길 만큼 마음이 넉넉한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트로 일상을 즐겁게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불어 내가 하는 일을 재밌어 함으로써 즐거움으로 가득 차는 것. 이것이 나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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