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네덜란드 아저씨들, 재즈 뮤지션 ‘바우터 하멜’과 그의 밴드 [음악]

한국 친화적 네덜란드 뮤지션, 내한 경력 10년 차!
글 입력 2022.02.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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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얼굴을 보는 네덜란드 친구들이 있다. 감히 팬의 위치인 내가 저명한 뮤지션인 그들에게 친구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싶지만, 아마 이 팬심엔 분명 우정이 섞여있는 것 같다.

 

서재페(서울재즈페스티벌) 공무원이라 불리는, 2009년 첫 내한 이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문화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은 바로 네덜란드의 재즈 뮤지션 ‘하멜 밴드’다.

 

사실 '바우터 하멜'이란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공식적인 표기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하멜의 음악과 공연은 하멜 개인에게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여섯 명의 밴드 멤버들이 모여 비로소 그 정체성을 완성한다.

 

하멜 팬들의 '하멜 팬심'엔 보컬 하멜뿐 아니라 밴드 전체를 향한 마음이 담겨있다. 놀라운 건 어디서도 그들을 따로 홍보하지 않았다는 것. 그저 하멜의 라이브 공연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밴드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어느새 눈이 갈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반하게 됐으니까!



 

 

한국에선 잘 찾을 수 없는 정보, 그래서 내가 한 번 적어 보려 한다. 하멜 밴드 여섯 명의 짧은 프로필! (이름 옆에 작은 @ 표기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법한, 하멜의 대표곡 ‘Breezy’를 함께 첨부한다. 멜로디를 들으면 아~ 이 노래~ 싶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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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터 하멜 Wouter Hamel (@wouterhamel)


 

밴드를 관장하는 보컬이자 모든 곡을 직접 쓰는 싱어송라이터. 감미롭고 경쾌한 재즈팝을 주로 하며, 한국과 일본에 팬이 아주 많다. 또 비건이자 오픈리게이.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초반엔 다소 침체기가 있었으나,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참가한 네덜란드 재즈 보컬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게 된다. 2007년 데뷔앨범을 발매했을 땐 이미 서른에 접어들었을 즈음이지만 그 후론 승승장구!

 

장난스럽고 귀엽다. 벌써 마흔을 넘었지만 늘 소년미가 넘친다. 홍대를 특히 좋아한다(서울 곳곳을 다 누비고 다닌다는 소리). 슬랜더 체형에 춤추는 걸 즐긴다. 라이브의 에너지가 어마무시한 뮤지션. 즉흥적이고 장난스런 애드리브가 일품이다. 요 몇 년 간은 수염을 많이 길렀지만 내한 때는 제작사 요청에 따라 꼭 면도를 하곤 한다(호텔에서 라이브방송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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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로리 론드 Rory Ronde (@roryronde)


 

소울 재즈 기타리스트. 뮤지션이었던 아버지 헨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헨리는 하멜의 곡 ‘Sir Henry’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악기 연주 외에도 곡을 만들거나 프로듀싱 한다.

 

화려한 셔츠, 원색의 옷을 즐겨 입는다. 다소 과묵한 편이지만 기타를 칠 땐 늘 싱글벙글 웃고 있다. 작년엔 팀 내에서 세 번째로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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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커셔니스트, 헤이스 안더스 판 스트랄렌 Gijs Anders van Straalen (@gijsanders)


 

멋모르고 라이브 다녀온 사람이 가장 많이 반하는 멤버 중 하나인 헤이스. 두터운 손바닥으로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미소 짓는 모습은 그가 밴드 뒤편에 위치해 있음에도 늘 눈에 띄게 만든다. 북슬거리는 머리칼과 수염을 가진 채 항상 웃고 있다.

 

로테르담에서 라틴 퍼커션과 재즈, 브라질 음악, 팝을 공부했다. 일상을 관찰하며 각 사물이 가진 고유의 독특한 소리에 집중하는 사람. 요가를 좋아하며, 요가 음악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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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티에리 카스텔 Thierry Castel


 

코어팬층이 두터운 티에리. 두 대의 거대한 키보드에 한 쪽 씩 손을 올리고선 동시에 두드린다. 연주할 땐 키보드에 머리를 처박다시피 하며 리듬을 탄다. 그때마다 그의 곱슬머리가 흔들리는데, 그 옆모습이 정말 멋지다.

 

밴드 중 유일하게 SNS를 하지 않는 멤버. 그래서 늘 사진에 태그하고 싶어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순한 성격. 늘 싱긋 웃고 있다. 팀 내 최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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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머, 야스퍼 반 훨튼 Jasper van Hulten(@jaspervanhulten)


 

로테르담에서 재즈, 팝, 라틴 음악 등을 다양하게 공부했다. 락 밴드의 드러머가 거칠고 격한 타격을 보여준다면 야니스의 드럼은 아주 부드럽고 섬세하다. 그의 리듬은 하멜 음악 속 자근자근 부드럽게 깔려있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내한을 줄였었다(17~18년 즈음). 사실 보컬 목소리도 정말 좋다. 드럼 연주처럼 미성의 섬세한 목소리. 언젠가 칭찬해주니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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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시스트, 스벤 하펠 Sven Happel (@svenhappel)


 

베이스기타와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를 둘 다 연주한다. 재즈 베이시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키가 아주 큰 거인이다. 콘트라베이스도 그 옆에선 딱 적당한 사이즈다. 베이스를 골반 높이 정도로 매고 모델처럼 포즈를 고정시킨 상태로 연주한다. 흥이 많아 덩실덩실하는 하멜 밴드 사이에서 가장 정적으로 연주를 하는 멤버가 아닐지.

 

다만 그의 콘트라베이스는 운반 문제 때문에 몇 년 째 한국에 오고 있지 않다. 왜 콘트라베이스를 안 들고 오냐고 물어봤더니 겨울에 추워서 땔감 해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멜 다음으로 한국에 가장 관심이 많은 멤버. 내한을 올 때마다 개인일정을 비워 며칠 더 국내여행을 즐기고 간다. 언젠가는 무려 ‘여름의 대구’를 겪고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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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밴드와는 유독 사적인 일화가 많다(나를 포함해 많은 하멜팬들이 그렇다). 무언의 상하 관계가 존재하는 아티스트와 팬의 사이를 (완벽히) 떠나, 그저 소탈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 팬을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친근하고, 유쾌하고, 다정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2019년 새 정규앨범 발매 기념으로 작은 라이브 행사를 했었는데, 열 댓 명 정도의 소수만 참석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나는 하멜 노래를 삼천 번 정도 재생한 기록을 어필하며 운 좋게 당첨됐다). 주최 장소였던 미화당 레코드는 본디 공연을 하지 않는 곳이라 아주 좁았고, 밴드는 악기를 최대한 간소화한 채 꾸겨지다시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천장이 너무 낮아서 이 네덜란드 거인들(특히 스벤)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연주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전례에 없던 초소규모 공연은 짧았지만 아담했다. 끝나고는 자유롭게 멤버들에게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평소 콘서트가 끝나고도 시간이 있었지만 이땐 훨씬 더 여유로웠다). 그때 난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멤버 별로 작은 편지를 써갔었다. 아무 선물 없이 이것만 덜렁 줘도 될까 싶어 망설였는데, 다행히도 모두 기쁘게 받아주었다. 특히 리액션 장인인 헤이스는 편지를 받자마자 가슴에 폭 안으며 이것만으로도 너무 소중하고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그 정성스런 표정을 모두가 봤어야 하는 건데!

 

놀라운 건 며칠 후 저녁, 베이시스트 스벤에게 인스타그램 디엠이 왔다. 공연 사진을 올리고 태그했던 나를 용케 찾은 것 같았다. 메시지는 바쁜 일정 속 이제야 편지를 읽어봤다며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내용. 난 너무 놀라 날아갈 듯 방방 뛰었고(말 그대로 점핑 만세!), “혹시 내가 ‘Handsome Sven’이라고 적어서 답장 준 거야?” “하하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지!” 하는 농담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나의 첫 하멜 내한 콘서트는 내가 갓 스무 살이 됐던 겨울이었다. 처음 가보는 외국인 뮤지션의 공연이었다. 음원보다 수백 배는 더 매력적인 그들의 라이브 실력에 빠진 후로 그들의 콘서트는 나의 연중행사가 되었다. 나의 이십대는 매년 하멜 밴드와 함께 쌓여지고 있다.

 

그렇게 내 삶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 음악가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 해는 문득 참 생경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그닥 외교적 접점도 없는 저 먼 유럽 네덜란드의,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커다란 거인 아저씨들이, 이렇게 오랜 친구처럼 익숙해지리라고 언젠가 상상이나 했을까. 20살 가까이 차이나는 타이니코리안유교걸을 이렇게나 격 없이 대해주는 프렌들리더치아저씨들이라니!

 

하멜 밴드와 이렇게 연을 맺게 된 건 결과적으로 그들의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화창한 햇살이 비칠 때마다 ‘아, 지금 하멜을 들어야 할 타이밍이야!’하고 본능적으로 느끼곤 했었다. ‘햇살음악’이라 부르곤 했었다.

 

좋은 음악을 하기에,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는 구석이 있다. 따뜻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분명 그 음악처럼 따뜻할 거라 믿는다. 실제로 그들은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이다. 디엠을 받았다는 나의 일화도 성덕(성공한 덕후)임을 인증하기 보단 그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작은 것도 소중히 대하는 사람들인지 말하고 싶었다.


 


 

 

하멜 밴드가 한국을 좋아한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공연이 끝나고 아쉬운 굿바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해외 뮤지션들처럼 이번에 가면 언제나 다시 올까, 지금 이게 평생 마지막 내한인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에 통곡할 필요가 없다. 내년에도 다시 와줄 거란 믿음, 네덜란드 밴드와 한국 팬 사이엔 무언의 끈끈함이 있다. 그저 곧 또 볼 테니, 아쉽지만 반갑게 보내줄 수 있다.

 

아니, 있었다... 그렇게 2019년에 평소처럼 당연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3년 내내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됐다. 하멜 밴드를 못 보고 지나가는 한해가 있다니! 일 년 중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놓치게 됐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지만, 매년 가장 ‘강렬하게’ 행복한 순간을 뽑자면 역시 하멜의 콘서트였다. 그들의 공연에 갈 때마다 난 온몸을 들썩이며 리듬을 타고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활짝 웃는다.

 

*

 

팬데믹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밴드는 이전에도 그랬듯 간간히 코리아를 그리워하는 게시글을 올리고, 여기도 몇 년 전 콘서트의 추억을 되짚는 한국인들이 한가득이다. 부디 최대한 빨리, 세상에서 제일 흥겹다는 하멜 밴드의 내한 콘서트가 재개되길 바랄 뿐.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 글을 마친다. 나의 이십대를 함께 차곡차곡 쌓아주고 있는, 딱히 행복하진 않았던 시간에 가장 강렬히 행복한 시간을 남겨줬던 우리 네덜란드 아저씨들.

 

날 행복하게 해주어서 고마워요들!


p.s. See ya soon!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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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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