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 도망가자

글 입력 2022.02.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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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강요로 압박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먼저 필자와 지인들의 경험을 나눠보겠다.


장녀니까 동생들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어머니, 장남은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성공해 동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아버지, 옆 팀 직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립스틱을 바르라는 상사, 남자니까 남자(?)답게 썸녀에게 고백하라는 친구들 등.


대부분 사회가 차곡히 쌓아놓은 뒤틀린 고정관념으로부터 나온 무책임한 강요다. 이 강요에 ‘왜 해야하는데?’라고 물으면 ‘지금껏 그랬으니까,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등의 두루뭉술한 대답이 따른다. 부정한 사회 탓으로 돌리기엔 눈으로 보이는 특정 대상이 없어 반박할 수 없는 무력감이 따른다.


하지만 최근엔 개인의 강요도 많아졌다. 본인이 겪은 일련의 경험을 타인의 삶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경우다. 똑같이 ‘왜 해야하는데?’라고 물으면 ‘내가 그랬으니까, 너도 그럴거야’라는 무책임한 발언이 따른다.


도서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의 화자 훌리아는 본인을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라고 깎아내린다. 물론 반어법이다. 그는 사회와 가족의 시선에서만 ‘나쁜 딸과 여성’일뿐 본인의 욕구와 감정상태를 잘 아는 ‘완벽한’ 인간이다.


상황을 비판하는 반어법을 내세운 책에는 훌리아가 몸담은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완전한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어떻게 몸부림치는지 솔직한 화법으로 담겨있다.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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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미국의 시카고, 주인공은 멕시코 이민자의 자녀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민자 자녀’라는 특수한 집단의 특성때문에 ‘그들의’ 일로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인물과 배경은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살아가는 ‘K-장녀’와 ‘여성’으로 치환된다. 따라서 화자 훌리아의 감정에 몰입하고 그의 ‘할 말 못할 말 가려 하지 않는’ 성격에 통쾌함을 느끼니 어느새 훌리아는 필자에게 멋있는, 본받고 싶은 ‘언니’가 되어 있다.


책은 훌리아의 언니 올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올가는 전형적인 ‘장녀’다. 멕시코 이민자 아마(엄마)의 말이라면 전적으로 따른다. ‘멕시코 여자는 집을 지켜야 한다’. 올가는 ‘평범’ 그 자체였다.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곧장 돌아오고 아마가 인정하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아파(아빠)가 퇴근하면 족욕기에 담긴 아파의 발을 주무르며 가족을 항상 곁에 두었다. 아마에게 올가는 ‘완벽한’ 멕시코 여성이었다.


훌리아는 언니와 비교해 ‘변종’이었다.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책방에서 책 냄새를 맡고 있자면 이 시나몬 냄새가 어디서 왔는지, 책이 책방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꽃무늬 원피스를 좋아하지 않고 남자들의 성적인 시선을 추악하다 여기고 도서관도 못 가게 하는 아마의 과잉보호를 이해하지 못한다.

 

올가와 훌리아 자매의 차이점은 강요에 순응하는가, 하지 않는가이다. 사회에, 아마의 말에 순응하는 올가는 ‘착한’ 자라 여겨지고 훌리아의 모든 행동은 반항으로 치부된다. 잡음을 내지 않는 올가야 말로 ‘참된’ 여성이 된 셈이다.


훌리아와 올가, 한국에서도 참으로 익숙하다. 다행히도 변화하고 있지만 말이다.

 

 

 

폭력적이다



언니 올가의 죽음 후, 아마의 온 신경은 훌리아에게로 향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딸을 본인의 입맛대로 구워삶기 위한 아마의 피나는 노력에 훌리아는 하루하루 죽어간다.


훌리아의 아마는 작가를 꿈꾸는 훌리아의 작품집을 찢어버리고, 죽은 딸과 비교하고, 훌리아의 의사는 무시한 채 올가에게 킨세네라(성인식)을 열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훌리아의 킨세네라로 위안 삼는다.


훌리아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악재는 부모의 불완전함 때문이 아닐까. 국경을 넘을 때 겪은 악몽을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아픔을 자녀에게 투영해서 억압하는 아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방관하는 아파. 특히나 본인의 불안을 관리하지 못한 아마가 이 책의 가장 큰 빌런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훌리아는 아마에게 아픈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알고 아마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보호받아야 하는 작고 여린 훌리아에게 폭력이 된다. ‘내가 겪은 일이 똑같이 내 아이들에게 일어날거야’라는 희박한 확률로 아이들을 가두는 행동만큼 가혹한 행위다. 동그랗게 자라는 과일을 미관을 위해 사각 틀에 넣어 키우는 농부같은 아마에 의해 훌리아의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탈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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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훌리아는 머무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남자, 완벽한 언니라는 두 대상에 대한 편견 그리고 마지막은 물리적인 세계의 경계를 깬다.


먼저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남자 기피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훌리아는 백인-부자-엘리트 남자인 코너를 만난다. 자신의 몸만 탐하는 남자들로 인해 ‘남자=악’이라는 공식이 세워져 있었지만 코너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고 그를 보며 심장이 떨리면서부터 그 공식은 깨졌다.


올가의 노트북, 호텔키 등을 찾으면서는 완벽한 언니에 대한 인식을 부쉈다. ‘어떻게 똑같은 아마 밑에 이렇게 다른 언니와 내가 있지?’라는 죄책감과 의문점이 훌리아에게 항상 있었다. 하지만 훌리아는 언니의 충격적인 일탈로 본인만 이 압박을 싫어했던 건 아니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그리고 결국 훌리아는 세계를 깬다. 아마의 바람대로 시카고에서, 가족 곁에서 대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을 깨고 뉴욕으로 간다. 훌리아는 그렇게 성장해갔다.


추가로 훌리아는 마마 하신타와 티아 페르미나와 대화하면서는 아마에 대한 인식을 깼다. 아마가 왜 그토록 자녀들에게 집착을 하는지, 왜 엄마가 본인에게 완벽하고 ‘조신한’ 멕시코 여성이 되는 것을 강요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불완전한 훌리아가 굳이 이해했어야 했을까’라는 입장이다.

 

 

 

넓히자



세계관을 넓혀야 한다.


훌리아는 ‘멕시코 여성’, ‘시카고’, ‘하나 남은 딸’ 등 본인을 규정하는 단어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미지의 존재로, 하지만 무궁무진한 존재로 남기며 인생 스토리를 확장시켰다. 훌리아가 뉴욕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데이트를 할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직업을 가질지 궁금해진다.


필자도,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책을 통해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무언가에 맞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으면 한다. 이 책을 다 읽은 필자의 다음 스텝은 뭘까?


훌리아와 함께 삶의 돌파구를 찾아가는 책이다.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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