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어린 글로부터 [사람]

글 입력 2022.02.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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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성인이 되고서부터 나와 줄곧 함께한 노트북에는 나의 많은 것이 담겨있다. 용량이 크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저장된 파일을 정리하는 편인데, 그 시기를 거치고 거쳐도 나의 노트북 바탕화면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폴더가 하나 있다. 대학교 재학 시절, 피 땀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나름의 노력을 쏟아 부었던 과제를 모아놓은 저장소이다.

 

며칠 전, 갑자기 그 폴더 속 자료를 살펴보았다. 아마도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의 티타임이 가져온 충동이었을 것이다. 과거에 썼던 글을 보면 어떻냐는 대표님의 질문에 못 봐주겠다고 웃으며 대답했던 그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수 교양이던 글쓰기 수업에서 분명히 에세이를 썼던 것 같은데, 생각하며 파일을 찾아내 펼쳐보았다. 짧은 글인데도 읽는 내내 서로 다른 감정이 피어올랐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보고 놀라기도 했고, '그때의 나는 이랬구나' 새삼 지난날들이 그리워지면서 그때의 내가 보고 싶어지기도 했으며, '그래도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과거의 내가 조금 기특하기도 했다.

 

끌까지 읽고 나니 티타임에서의 대답을 조심스레 정정하고 싶어졌다. 부족한 글이지만, 부족한 나름대로 문장 사이사이에서 소소한 매력이 엿보였다. 그때였기에, 그때의 나였기에 쓸 수 있었던 글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소중하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아마 일상에서의 깨달음이 당시 에세이의 주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쑥스럽고 민망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썼던 나의 어린 글을 공개해본다.

 

 

 

자연에서 되돌아보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기운을 빼앗고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추위는 몰라도 더위는 잘 견딘다고 자신했던 내가 너무 자만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더위였다. 그는 왕성했던 내 식욕을 앗아갔고, 숨 쉬는 것마저 답답하게 만드는 이상한 마술을 선보였으며 자연 속 천연 찜질방을 강제로 선물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과 태만,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더위를 핑계로 뒹굴뒹굴하던 여느 때와도 같은 날, "어머나, 얘 좀 봐. 이 더위에 이렇게 예쁘게 꽃을 피워냈네. 이 조그만 것도 이렇게 애쓴다." 엄마의 말이 들려왔다. 꽃이라고, 이 날씨에? 나도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베란다로 가서 빼꼼 고개를 내민 나는 반개한 꽃봉오리와 그 꽃망울이 피어올라 영롱하게 보랏빛으로 만개한 꽃을 마주했다. 그들은 마치 내게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는데, 나는 답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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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몸에 뜨끈하게 열이 오를 정도로, 나는 부끄러웠다. 창피했다. 뙤약볕 아래서도 생기 있는 모습을 잃지 않고 오히려 위풍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축 늘어진 나와는 너무나도 달라서. 엄마의 말처럼 이 보라색 아이는 꽃을 '피워냈다'. 핀 것이 아니라, 피워냈다. 식물도 나름의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쁘게 활짝 피었다.


날씨뿐이었을까. 여태껏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정당화할 핑계에 무엇이든지 집어넣기 바쁘지 않았나. 더워서, 추워서, 피곤해서, 아파서, 다음에···. 그렇게 해서 놓친 기회와 지나간 시간은 얼마일까. 허공에 대고 던진 물음의 답은 특별한 곳이 아닌 우리 집 베란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열매를 맺기 위해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가 피지도 못하고 시들고 말라버린다면, 그것은 외부 환경의 영향 탓 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결과가 쌓이고 쌓여, 그에 따라 꽃이 만개할 수도, 반개할 수도, 아예 피워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피워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나도 무엇이든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저 보라색 꽃처럼.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는 자연에서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시간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오곡이 성숙하는 가을의 끝자락인 지금까지, 보라색 꽃과 엄마의 말이 마치 여러 번 본 영화 속 명장면처럼 뇌리에서 콱 박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벌써 저기 저 보라색 아이가 겨울이 깊어갈 때 피워낼 꽃이 기다려진다.

 

*

 

'여태껏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정당화할 핑계에 무엇이든 집어넣기 바쁘지 않았나' 불과 어제도 명절과 영감을 구실로 삼아 글 한 자를 적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만들어내려면 영감이 있어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자기합리화했다.

 

폭염 속에 피워낸 보라 꽃이 영화 속 명장면처럼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나는 어디로 갔는지, '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작업한다'는 명언을 보고 감탄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과거보다 성숙한 나를 바랐는데, 글을 읽는 순간 여전함을 느꼈다. 여전히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내는 내 모습에 씁쓸한 한편, 이젠 정말 달라져야겠다는 의욕이 강하게 부풀어 오른다.

 

글 속에는 내가 매일 자고 일어나는 우리 집,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베란다에서 불현듯 자기 성찰을 한 어린 내가 있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쓴 글을 통해 다시금 성찰하는 지금의 내가 있다. 과거의 나로 인해 현재의 내가 자극을 받는 일이란, 생경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효과적인 동기 부여가 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된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피워내고 싶다. 피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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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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