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빙환'? 그거 먹는거야? [문화 전반]

웹소설 성공 공식 '회빙환'. 그 이면을 바라보자
글 입력 2022.02.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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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웹소설 성공 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귀물', '빙의물', '환생물'. 사람들은 그것을 줄여서 '회빙환'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회빙환 코드를 이용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회빙환 코드를 차용하고 있다. 이런 3류 막장 코드는 문학작품의 가치를 떨어트린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도 분명 있다. 그러나 실제로 카카오 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문피아 등의 플랫폼 상위권을 차지하는 작품들을 보면 사람들의 회빙환 코드에 대한 수요는 막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잠깐. 왜 이 회빙환 코드가 웹소설(웹툰)의 성공 공식이 되었을까.

 

 

1. 회귀물

회귀물에선 주인공이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큰 경우가 많으며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거나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 회귀가 일어난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복수를 꿈꾸기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도, 후회스러운 과거를 고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Ex) 결혼도, 연애도, 취직도 하지 못한 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10년 전 과거로 돌아왔다.

 

2. 빙의물

빙의물에선 주인공의 정신이 타인의 몸에 깃들게 된다. 주로 사용되는 방식은 현실의 주인공이 좋아하는 소설 속 캐릭터가 되어 소설을 살아가거나, 현실의 선망하는 혹은 영향력 있는 인물의 몸에 빙의되는 것이다. 빙의 시간이 제한적이거나 횟수에 제약이 있는 경우도 있다.

Ex) 평범한 고등학생인 내가 소설 속 황녀가 되었다.

 

3. 환생물

환생물에선 우선 주인공이 죽음을 경험한다.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주인공의 시점이 바뀌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보통은 세계관 자체가 변화된다. 현실이라면 무협으로, 무협이라면 판타지로, 판타지라면 현실로 변화하는 식이다. 죽음을 경험한 주인공은 원래의 세계관에서 매우 강력한 능력을 지닌 설정이 다수이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환생한 몸으로 살아가는 플롯이다.

Ex) 9서클 대마법사가 남궁세가의 둘째 아들로 환생했다.

 

 

어찌 보면 다소 황당한 스토리 설정과 허무맹랑한 스토리 전개가 예상될 수 있다. 나도 처음 회빙환 코드를 접했을 때에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맞춰서 주인공이 성장하고, 시련을 겪고, 단련하고, 갈등이 해소되는 정직한 플롯의 소설들을 볼 때의 나는 그랬었다. '적당한 고구마가 있어야 사이다가 있을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니지만. (웃음)

 

다시, 그렇다면 왜 회빙환인가? 왜 회빙환 코드가 이렇게 많이 소비될까? 이 코드가 사람들에게 주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인가? 내가 아직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이면을 살펴보자.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걸 그때 샀어야 했는데'. '이걸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많은 이들이 과거를 후회한다. 지금의 경험과 정보를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며. 정보가 없어 불확실한 선택을 했고 실패를 경험했다. 그제서야 어떤 행동을 취했었어야 하는지 알았다. 그러나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의미 없는 망상을 해본다.

 

회빙환 코드는 사람들의 이런 가려운 부분을 성능 좋은 효자손처럼 살살 긁어준다. 후회와 좌절, 분노 등의 감정에 휩싸인 주인공은 회귀를 경험하며 과거로 돌아간다. 바꾸고 싶었던 과거를 직접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쥔다. 게다가 미래에서 왔기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정보들을 수두룩하게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교통사고로 잃었던 아내를 구해내고 주가가 오를 주식 종목들을 사들인다. 판타지 세계관이라면 비밀 던전에 들어가 전설의 성검이나 대마법사의 마법서를 획득한다. 또 무협 세계관이라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비동에서 공청석유나 만년설삼과 같은 희대의 영약을 독식한다. 갈등이 일어나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이를 사전에 차단한다.

 

이 코드 속에서 주인공은 실패를 겪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이 무력이든 권력이든 재력이든 순식간에 불려나간다. 뭐든 성공하는 주인공을 보며 사람들은 현실에서 잠시간 빠져나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현실은 이미 고구마투성인데, 사이다나 내놔


 

조별 과제 조장을 맡았는데, 무임승차를 하려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자료조사를 맡겼더니 블로그 글을 복사해왔다.

취객이 들어와 진상을 부린다. 경찰을 부르겠다니 자기가 누군지 아냐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누구신가요. 도대체.

지원자님이 부족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란다. 그럼 왜 취업이 되지 않는 거야? 뭐 내 능력이 너무 넘쳐서 그런가?

직장 상사가 일을 떠맡긴다. 자기 일이면서. 그러나 참고 넘어간다. 이게 사회생활이겠지.

 

현실은 고구마투성이다.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 목이 막혀 사이다를 찾는데, 사이다 같은 일이 벌어지질 않는다. 역시 이 점에서 회빙환 코드는 사람들을 달랜다. 그도 그럴 것이 9서클 대마법사가 백작 가문의 아들로 환생하고, 소설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로 빙의하고, 세계 복싱 챔피언이 20년 전 왕따 시절로 회귀하는데 고구마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모든 갈등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주인공을 보며 사람들은 피식한다. 원인 모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회빙환 코드는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문학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도 성공하지만,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좋아해 주는 작품도 성공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회빙환 코드가 아닐까.

 

 

 

사실은 말이지


 

작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회빙환 코드가 아닌 정통을 따르는 웹소설을 창작하게 되면 주인공의 서사와 갈등구조, 변수의 존재,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 당위성의 부여가 조금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공은 아크란 대륙 변방국가 '프레지아'의 일왕자이다. 그는 동생의 계략으로 인해 암살당하기 직전 천운이 따라 성 밖으로 도망 나올 수 있었다. 동생은 왕위 계승자 1순위가 되었고 그는 복수를 칼을 갈기로 결심한다. 강하고 믿을만한 동료를 구하고, 동생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력과 무력, 재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동생이 실은 흑마법사에게 세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흑막을 찾아내 분쇄하려 한다.

 

 

왜 동생이 주인공을 암살하려 했는지, 흑막은 누구인지, 그럴 개연성이 있는 사건이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지 독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글은 자연히 길어진다. 문제는 우리는 이미 '숏폼' 문화에 적응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길어지는 글은 짧게 그리고 빠르게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의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방해 요소가 된다. 이는 작품의 질과 문학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회빙환 코드를 집어넣은 웹소설을 창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천마신교의 부교주 '황익'은 30년에 걸친 정마대전을 신교의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너무 강력한 무력을 지녔기에 불안감을 느낀 교주는 그를 축출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정신을 잃은 황익은 정마대전이 일어나기 전 정파 남궁세가의 무사로 깨어난다. 자신을 배신한 천마에게 복수하려는 황익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십분 활용해 나아간다. 기다려라, 천마여!

 

 

회빙환 코드의 중요한 특징은 주인공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코드를 사용하면서 작가는 독자와 암묵적 합의를 하게 된다. '얘는 회귀(빙의 or 환생)한 애야. 앞으로 벌어지는 일을 다 알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다 알아. 모든 기연을 독식 할거고, 대적할 자는 손에 꼽을 거야. 알겠지?' 이런 암묵적 합의를 통해 당위성, 개연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주인공에게 모든 것은 '이미 일어났던 일'이니까. 이를 통해 작가는 글의 길이를 줄이기에 용이하다.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를 상대적으로 짧게, 자주 쓸 수 있다.

 

웹소설을 각 잡고 앉아서 하루 종일 혹은 몇 시간이고 읽는 사람은 드물다.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나 휴게시간 혹은 출퇴근 시간대에 보는 것이 다반사이다. 무료하고 지루한 그 시간대에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부담 없이' 그리고 '재미있게' 볼 작품을 선호한다. 스낵컬처 성향이 짙은 웹소설 시장에서 그리고 부담 없고 재미있는 작품을 소비하고 싶은 독자의 니즈에서 작가들은 회빙환 코드의 성공 가능성을 찾아내고,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주류로 소비되는 문화적 방향은 곧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 고구마 따윈 없는 사이다 사건만이 있었으면 하는 욕망들이 회빙환 코드에 상업성을 부여한다. 욕망은 부족함을 느껴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면, 난관 없이 쭉쭉 성장해가는 '먼치킨' 주인공들을 선호하는 흐름은 반대로 현실이 그만큼 퍽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애석해진다.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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