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틀된 신발로 무리하는 애들 -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 [음악]

앨범 "신발장" 속 드러난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의 음악 세계
글 입력 2022.01.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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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올즈.png

 

 

 

1.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



한국에도 개러지 록을 고집하는 밴드가 있다. 바로,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다.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는 심도언, 주해승, 손민욱, 류호진으로 구성된 밴드다. 도언은 팀 내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으며, 해승은 팀의 리더이자 메인 기타다. 민욱은 드럼을 치며, 호진은 베이스이자 미소 천사이다.


이들은 리더 해승이 대학을 졸업하고, 밴드를 만들기 위해 ‘뮬’에 관련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뭉쳤고,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라는 밴드 이름은 리더 해승이 심슨의 한 에피소드에서 나온 "난 이 이틀이나 된 스니커즈를 더 신을 수 없어!"라는 대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덧말) 컴퓨터 음악 씬에 큐오넷이 있다면 밴드 음악 씬에는 뮬이 있다. 뮬은 한국에서 가장 큰 악기 중고거래 사이트다. 뮬에는 악기 장터 이외에도 사용기, 뮬인/게시판, 구인/구직과 같은 메뉴가 활성화되어있다.


이들은 첫 번째 EP 앨범인 "사기꾼"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발매한 EP 앨범 "여기서 빛난다"까지 "개러지 록"이라는 하나의 기조만을 고집하며, 인디 씬에서 자신들만의 색채를 공고히 하고 있다.

 

 


2.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이하 투올즈)의 음악 세계


 

앨범 "신발장"에서 볼 수 있는 투올즈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다. 도언의 세련된 음색과 단단한 밴드 사운드, 그리고 키치한 가사가 그것이다.


 

1) 세련된 음색


도언의 음색이 돋보이는 곡으로는 ‘한강’과 ‘산산조각’이 있다.


‘한강’은 투올즈의 세계관을 다룰 때,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 "신발장"의 인트로이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우물 속에 비친 자신에게서, 한 사나이의 형상을 보았듯, 투올즈는 한강에 비친 자신에게서, 괴물을 본다.


다만, 이 괴물은 여타 많은 콘텐츠 속에서 다룬 것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것은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커다란 한강에서 노래하며 수영을 하고, 혼자 큰 소리로 웃을 뿐이다. 이것이 괴물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산조각에서 이들은 허무함에 대해 노래한다. 이상을 좇아 멀리 와버렸으나, 얻은 것은 파편뿐이었다.

 

 

 

 

이때, 해승을 필두로 한 카랑카랑한 밴드 사운드는 잠시 존재감을 감추어, 도언이 만들어 내는 쓸쓸한 심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꽤 긴 시간을 할애하는 기타 솔로는 이 곡을 완성한다. 다른 곡들과는 조금 다른 경향성이지만 밴드 구성원 모두가 빛날 수 있었다. 좋은 전략이었다.



2) 단단한 밴드 사운드


이들은 밴드 대회인 에머겐자의 국내 대표 선발전에서 결승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 만큼 퀄리티 높은 사운드를 제공한다.


이때, 메인 기타인 해승의 단단하고 야무진 기타 소리가 눈에 띈다. 특히, ‘종이가방’과 ‘주인공’에서는 베이스와 드럼이 단단하게 배경을 만들어 주면 도언과 해승이 그 속에서 각축을 벌이며 곡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종이 가방’은 비 오는 날 홀로 골목길을 쏘다니며 느낀 공허함을 바닥이 찢어져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종이 가방에 빗댄 곡이다. 도언이 먼저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며 함부로 위로하는 무책임한 세상을 질책하면, 해승도 그에 지지 않고 따라서 내지른다.

 

 

 

 

‘종이 가방’이 도언의 부름에 해승이 답하는 일종의 메기고 받는 형식이라면, ‘주인공’에서는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간다. 곡의 주제인 동화처럼 뻔한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는 다짐과 잘 어울리는 구성이다.



3) 키치한 가사


투올즈의 가사들은 한국의 근현대 문학과 미묘하게 맞닿아 있다. 특히 ‘사기꾼’과 ‘권태’는 각각 ‘결혼’과 ‘권태’를 닮았다.


이강백의 결혼은 1974년 처음으로 발표된 희곡이다. 그것은 한 사기꾼이 관객들에게 모자나 구두, 넥타이와 같은 여러 가지 물건을 빌리며 시작한다. 이는 모두 맞선에 나온 상대방을 꾀기 위함이다.

 

 

 

 

이러한 모습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조금 다르지만 ‘사기꾼’에서 번듯해 보이기 위해 아버지의 옷을 훔쳐 임은 투올즈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권태’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평안남도 성천에서 생활하며 쓴 수필이다. 평생을 서울에서 지낸 이상에게 시골 생활은 권태롭기만 하다.

 

그러나, 이상은 이 권태로움이 못 견디도록 지긋지긋하면서도 단조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권태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투올즈의 가사 속 ‘너의 권태는 위태롭고, 나의 권태는 자유롭다’라는 이와 비슷한 마음이리라.

 

 


 

 

3. 다른 것을 인정하는 청춘의 성장


 

앞서 살펴본 것들은 다시 커다란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는 ‘그래 빨간달이 떴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와 타이틀 곡 ‘재규어’가 있다.


‘그래 빨간달이 떴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투올즈의 첫 EP 앨범인 “사기꾼”에도 수록된 곡이다. 따라서, 전 앨범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이번 앨범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

 

 

 

 

‘빨간달’은 사람들이 모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불길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이 뜨면, 사람들 틈에서 본성을 숨기고 살아가던 괴물들이 각성하기 때문이다.


투올즈는 이러한 ‘빨간달’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만약, 투올즈가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테고, 괴물이라면, 각성하여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붉은 달을 보고 마음 한구석의 타오름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떠한 사건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사람도 괴물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투올즈는 무엇일까. 바로 ‘재규어’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으로 이분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투올즈는 괴물이 아니다. 사람들과 한세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다른 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을 타자화하는 사람들에게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일러준다. “나도 너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라고.

 

 

 

4. 달라도 괜찮은 길을 간다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여정은 진보와 퇴행의 반복이다. 누구 보다 자신 있게 남들과 다름을 표방하다가도(권태), 본 모습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함을 두려워하기도 한다(착장), 사사로운 감정은 넣어두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먹다가도(주인공),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며, 돌아갈지 고민하기도 한다(산산조각).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나아간다. 앨범의 아웃트로, ‘춤을 추게, 여전하게’는 이와 관련이 있다. 곡 속에서 투올즈는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면서, 커다란 한강에서 웃어대던 이상한 꼴로 여전하게 춤을 춘다.

 

 

 

 

이러한 ‘춤을 추게, 여전하게’는 짧은 스킷으로 시작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투올즈의 멤버들은 날씨가 춥다고 투정을 부리고, 대사 몇 마디가 이어진다.


“야 그런데 샐리 뭐한대? 같이 마시자 그래.”


샐리는 투올즈와 함께 개러지 록을 하던 밴드다. 투올즈와 여러 접점이 있었던 만큼 교류가 잦았지만, 샐리는 아쉽게도 해체한다. 따라서, “달라도 괜찮은 길을 간다”는 말은 투올즈가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샐리에게 보내는 헌정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에서 개러지 록 정신을 좇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하는 투올즈가  단단하고 굳건하게 자리 잡아 한국 밴드 씬을 다채롭게 빛내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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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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