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 이상 그를 괴짜라 볼 수 없다. - 살바도르 달리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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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 방문했을 때,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봤었다. '초현실주의' 하면 떠오르는 거장들이다 보니,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한편에 살바도르 달리도 자리한 듯했다. 그때 나는 만약에 살바도르 달리 전시회를 한다면 꼭 방문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약 1년 반이 흘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진행되는 살바도르 달리 회고전,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에 방문했다. 그동안 나에게 살바도르 달리는 '괴짜' 이미지가 강했었다.
'이성에서 벗어난 것'을 추구하는 초현실주의 그림들뿐만 아니라,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독특한 수염에서 풍겨오는 알 수 없는 분위기 탓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시회 입구에 그려진 달리의 모습을 보고서 함께 간 친구와 '역시 쉽지않아..'를 연신 외쳤고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입장했다.
가끔 이런 특정 화가의 '미술 역사'를 담아낸 전시회를 가면 항상 느끼는 점이 있다. 유명한 몇 작품으로 그 사람의 화풍과 예술 일대기를 분류하고 판단하기엔, 생각보다 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초현실주의는 19세기 예술 사조로 비교적 멀지 않은 역사인지라, 작가들이 다양한 미디어 영역에서 활동했던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 역시,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몇 작품만으로 단순히 그를 '괴짜' 화가로 칭하기엔, 삽화와 영화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했었다.
그가 가장 왕성하게 그렸던 초현실주의 작품들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에게 달리는 더 이상 '쉽지 않은 괴짜'가 아니었다. 그의 다재다능함을 담을 세상의 그릇이 너무 좁았을 뿐, 세상이 그를 '괴짜'라고 불렀던 그의 행동, 말, 생각들은 모두 '이유 있는 자신감'에서 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는 달리의 이유 있는 자신감을 총 10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관람객들에게 확인시켜준다.
달리의 자화상이 비치되어 있는 천재의 탄생 섹션에서 시작하여, 달리를 대표한 '초현실주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갈라'의 존재를 보여주는 두 번째 섹션, 그리고 전쟁 중 미국으로 망명한 동안 확장된 달리의 예술을 확인할 수 있는 세 번째 섹션이 이어진다.
이후, 네 번째 섹션에서는 '돈키호테'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소설책의 삽화 작업물들이, 다섯 번째 섹션에서는 미국에서 다시 고향 포트이가트로 돌아가 또 한 번 새로운 변화를 보인 달리의 그림들이 나열되어 있다.
심리학과 과학, 그리고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달리가 착시 현상을 탐구하며 그린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여섯 번째 섹션과 과거 유명한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일곱 번째 섹션에서는 그림을 여러 방향에서 보고 과거 작품들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24시간 중 22시간을 꿈만 꾸고 싶었다는 달리의 꿈속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 아트 작품이 여덟 번째 섹션에 준비되어 있다. 초현실주의의 대표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인' 대형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는 아홉 번째 섹션에서도 역시나 누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이기 때문에 관람객들만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섹션에서는 영원히 살아 모든 기억 속에 남고 싶었던 달리의 작품들이 정말로 우리 인생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바로 나 자체다"라고 자신하던 살바도르 달리는 현실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며 그려냈다.
이성과 현실에서 벗어난 '초현실'은 곧 나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곧 장르라고 생각했던 달리는, 회화 이외에도 삽화와 영화, 패션, 가구 등 다양한 예술 업종 사람들과 협업했을 때도 성공을 자신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돈키호테 석판화는 세기의 석판화 작품이 될 것이다."
실제로, 달리가 다양한 영역에서 펼쳤던 예술 작품들을 보면, 달리만의 독특한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재료와 방식을 고안해 내 또 다른 '달리의 장르'를 개척했다. 고전주의 거장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할 때도, '천재들은 죽지 않는다'며 과거 작가들을 향한 존경과 더불어 자신의 천재성에 한 번 더 확신했다.
난해하고 기이한 달리의 그림과 그의 위풍당당함을 보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칭했지만, 이러한 그의 모습이 '이유 있는 자신감'인 이유는 단순히 그의 그림이 멋지고, 여러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무의식, 잠재의식과 꿈을 탐구하며, 더 나아가 착시 기법과 시각적 환상을 실험하며, 결국 눈에 보이는 것들, 고정적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던 것에 의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결국, 살바도르 달리는 현실과 환상 그 사이에서, 자신이 보는 것을 비틀어 눈에 보이는 것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단순히 작품으로 남기는 것에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갔기에, 자신의 능력에 확신하고 당당했던 것이다.
달리의 강렬한 작품들을 보고서 달리의 꿈속으로 떠나는 멀티미디어 영상을 보는 동안 묘하게 몽롱함이 느껴지더니, 내가 지금까지 봐 온 것이 어쩌면 다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겠다던 달리를 만나고 온 것만 같았던 짧은 시간 동안, 괴짜라고 보고 판단했던 살바도르 달리의 모습이 다시 보니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외침으로 보였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오는 3월 20일까지 괴짜가 아닌, 이유 있는 자신감에서 오는 '당당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흔적을, 힘 있는 목소리들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이현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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