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문화 전반]

우리가 사는 세상
글 입력 2022.01.03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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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현실에서 살기 힘들수록 꾸는 꿈은 더 달콤하다. 토마스 모어가 꿈꾼 유토피아가 탄생한 계기도 16세기당시 영국의 힘든 삶에서 나왔다.

 

유토피아는 원래 ou(‘없다’는 뜻의 그리스어)+topos('장소‘)+-ia('나라’)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건 같은 발음으로 ‘멋진(eu) 곳(topos)’이라고 해석해 멋진 곳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멋진 곳,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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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가 꿈꾸는 유토피아에는 지주가 없다. 모든 땅에는 경작자만 있기에 농민들은 맘 편히 땅을 경작한다. 모든 국민들은 신분, 성별, 빈부의 차이가 없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부지런히 일하지만 일만 하지 않는다. 적당한 오락과 자기 발전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 남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땅과 돈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토피아 국민은 오전과 오후에 세 시간씩 하루 여섯 시간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롭게 보낸다.


모어가 500년 전에 그린 유토피아는 공산주의 사회의 이념과 유사하다. 적어도 이념으로 보면 공산주의 사회는 인류 사회의 가장 높은 단계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전인적인 생활을 즐긴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소득을 얻는, 좋게 말하면 자유 경쟁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인간적인 사회이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득을 얻는다.

 

구호와 이념은 훌륭했지만 20세기의 공산주의 실험은 경제적 생산력을 높이지 못하고 정치가 관료화함으로써 결국 실패로 끝났다.

 

 

 

디스토피아의 등장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유토피아를 실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현실과 유토피아의 거리감만 더욱 벌려 놓았다. 유토피아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못했다. 그래서 20세기 사상가들은 유토피아의 정반대인 디스토피아를 만들었다.


디스토피아(Dystopia)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디스(Dys)_나쁜’와 ‘토피아(topia)_장소, 배경’의 합성어다. 이 말은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1868년 하원 연설에서 영국 정부의 부당한 아일랜드 지배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디스토피아 사회는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억압받는 사회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성이 파괴되는 사회, 환경오염이나 핵전쟁 등으로 인류가 멸망의 길로 접어든 사회, 기계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를 뜻한다.

 

 


과학 문명과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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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 인간은 과학 문명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첨단의 기술은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디스토피아는 20세기에 들어 영향력 있는 매체로 떠오른 영화의 단골 소재로 이용된다. 미래를 다룬 SF 영화들은 대부분 디스토피아로 인한 암울한 미래를 묘사한다.


대부분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소설과 영화는 첨단 과학으로 인한 인간 존엄성 파괴와 통제된 인간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미래 사회를 그리며 곧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다. 이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하여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디스토피아 작품은 핵전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류가 멸망한 삶, 유전자 복제, 사이보그 및 사이버 세계, 통제되고 암울한 미래사회를 그렸다. 대표작으로 영화 <블레이드 러너>로 잘 알려진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구드룬 파우제방의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등이 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에는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열망이 잠재해 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 문학의 주요 소재가 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선의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 희망했던 유토피아가 언제나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낸 작품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밖에 신체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미래사회를 그린 리사 프라이스 《스타터스》와 존 스칼지 《노인의 전쟁》과 같은 작품들도 있다. 또한 디스토피아 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사이버 펑크’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사이버 펑크’는 첨단기술과 반체제적인 대중문화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경향을 나타낸 작품으로는 영화 <매트릭스> 등의 모티브가 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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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으로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러시아의 자먀찐의 《우리들》을 꼽는다. 이러한 작품들이 공통으로 그리는 세상은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인간성이 서서히 질식해 가는 획일적이고 암울한 사회이다.


이와 같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은 놀랍게도 현재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과거 우려했던 것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디스토피아가 가까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재 우리 사회는 디지털과 첨단 과학의 세상에서 과거와는 비교도 못 할 만큼 편리한 세상에서 이득을 얻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고 자유 속 통제라는 이념 아래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해야 할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는 것, 누구보다 인간적인 마음이 더욱 절실한 세상이다. 쉽지 않지만, 이것은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이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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