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션산업과 다국적 기업 [패션]

결코 끝나지 않는 노동 착취와 불평등에 관하여
글 입력 2021.12.31 14: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바잉 단계 Buying


 

131.jpg


 

패션 머천다이징 과정에서 ‘신상품 개발’과 ‘상품 구성 계획’을 정립하고 나면 상품 기획, 즉 ‘바잉Buying’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에는 국내 브랜드나 도매상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국내 소싱’과 해외에서 소싱이 이루어지는 ‘해외 소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일전 참여했던 패션 머천다이징 수업은 팀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각 팀마다 자체적으로 브랜드를 형성하여 시장분석과 상품기획, 물량 기획, 생산, 홍보, 유통방식까지 전 과정으로 다루는 긴 프로젝트였다.

 

해당 팀 프로젝트 과정 중 ‘바잉 단계’에 진입하던 당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볼까 한다.

 

우리 팀은 디자이너의 상품을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요가복 브랜드였고 국내에 있는 다른 점포와 차별화를 원했다. 국내 소싱은 리드타임 단축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 경쟁력이 약하고 상품 다양성에 제한이 있었다. 해외 소싱은 국내 소싱에 비해 리드타임이 길고 수요의 즉각적 반영이나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을 갖고 있지만 반대로 상품 다양성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막강한 장점을 갖고 있기도 했다.

 

우리는 더 큰 이익을 취하기 위해 원가를 낮춰 배수를 키울 필요가 있었고 원단과 부자재 같은 부분에서는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었기에 저렴한 인건비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점을 이유로 우리 팀은 해외 소싱을 선택했다.

 

해외 소싱으로 결정하고 난 후 남은 것은 어떤 국가에서 해외 소싱을 할 것인 가였다. 특별히 떠오르는 나라도 별로 없을뿐더러 구색만 맞추고 넘어가면 되는 단계라고 생각하며 내가 말했다.

 

- 중국이 제일 가깝고 인건비도 저렴하니까 여기로 할까?

  

친구들이 말했다.

 

- 요즘 중국 인건비가 올라서 잘 안 한대. 베트남이나 중남미 쪽으로 많이들 하더라.

- 멕시코 아니면 베트남? 둘다 가격 비슷하면 더 가까운 곳으로 할까?

 

분명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소싱을 하기로 정했을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던 머리가 팀원들과 웃으며 소싱을 맡길 국가를 정하는 동안 조금씩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더 저렴한 곳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행태가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믿고 넘기면서도 이 합리적 가격에 의구심이 드는 건 뭐랄까, 일종의 양심의 가책이었다.

 

과연 이러한 과정이 맞는 것인가. 상대적으로 덜 저렴한 국가는 배제되고 기업이 말하는 합리적 가격으로 노동이 가능한 국가만이 선택 받는 이런 상황이 의류 업계에서는 당연하고 옳은 것인가. 이것을 합당한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업들의 ‘합리성’에 대한 대가로 다국적 의류 소싱 국가들은 무엇을 치러왔는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헨리포드와 포디즘

  

20211231111834_ercbmxxx.jpg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1900년대 초반 수작업으로 제작되던 자동차는 그 당시 사치품 중 하나였으나, 1903년 헨리 포드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후 1908년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자동차 생산에 적용하면서 점차 대량 생산품으로 전환되게 된다.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이용해 작업 과정을 세분화하고 파편화한 포디즘 Fordism은 생산 시간을 단축하여 생산성을 상승시켰고, 실질임금을 상승시켜 임금 노동자의 소비와 수요를 증대했으며 이는 다시 생산 투자의 증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시 생산성을 상승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20211231123047_wrkwrdre.png

 

 

포스트 포디즘

 

하지만 이런 포디즘적 축적체제는 1970년대 세계 경제 침체와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나타나고 확산되면서 생산의 세계화라는 포스트포디즘이 등장하게 된다.

 

규모가 늘어날수록 생산성도 늘어나던 포디즘(소품종 다량생산) 과는 달리 포스트포디즘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며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전환한다. 또한 당시 IMF와 월드 뱅크가 세계화를 밝히고 국경을 낮추면서 자본과 노동력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미국 회사의 공장이 한국에 세워지는 등 상품과 직업의 국제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다만 이 국제 분화의 중요한 특징은 생산비를 줄이기 위하여 생산 공정 중 전문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업무, 즉 의류 산업의 재봉, 봉제와 같은 ‘노동 집약적 산업’을 노조가 없고 저렴한 노동력이 풍부한 빈곤 국가로 이전하였다는 점이다.

 

* <신 국제 분업> : 업무 조정, 기술과 디자인 개발 등의 업무는 선진국에서 담당하고 단순 조립 업무는 빈곤한 저임금 국가로 이동하는 것.

 

 

 

국제분업의 결과는 무엇인가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20211231123148_uuulccqc.png

 

 

방글라데시는 남부아시아에 위치한 빈곤한 국가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독립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정부는 일자리를 생산하기 위해 다카와 치타공 등 방글라데시 내 공장을 세울 경우 세금을 면세해 주는 혜택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유니클로, 자라와 같은 선진국의 다국적 의류기업이 자신들의 하청공장을 세우게 되는데 그들의 노동조건은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임금이 오를 시에 다른 국가로 공장을 옮기겠다고 위협했고, 임금 삭감과 체불은 비일비재했으며, 판매가가 원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에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였다.

 

 

세계 최악의 건물 붕괴


b107eec4c6baef3df74ef525a07d669f.png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에서 9층 빌딩인 라나 플라자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건물 1~2층에는 사무실, 상점, 은행이 들어서 있었고 나머지 층에는 H&M과 같은 선진국 패션 기업들의 하청을 받아 일하는 의류공장이 있었다. 해당 사고로 인해 최악의 근로조건 속에서 일하던 봉제 공장 노동자 113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2,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라나 플라자 건물 붕괴 이후 임금은 5만여 원에서 7만 원으로 인상되었고 임금 인상으로 인해 월마트 공장은 다른 국가로 이전하였다. 임금 협상과 인상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야기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면 정부의 발포로 이어져 이마저도 쉽지 않다.

 

*

 

2018년 12월, 정부는 최저임금을 약 11만원 정도로 올렸지만 노동자들은 물가를 반영한다면 약 21만 원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당 인상안을 기업들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하면서 시위가 벌어졌고 일부 의류 업체는 시위를 벌인 노동자 수천 명을 해고하였다.

 

저임금 노동을 기반으로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은 전체 수출의 83%를 차지하는 경제 핵심 산업이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4천 500여 개 의류 제조업 공장은 지난해 300억 달러(약 33조 9천억 원) 규모를 수출하였다.

 

엄청난 규모의 이익을 얻어 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의류기업들은 가난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으며, 빈곤 국가들은 그러한 그들의 만행을 거부할 능력이 없어 임금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210078_117175_5736.png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라나 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 이후로 패션산업이 숨기고 있던 의류 공장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드러났고 이에 수많은 소비자들은 꾸준히 노동 착취를 외치며 그들의 만행에 반발하고 있다.

 

패스트 패션에 대한 거부감과 여러 사회 운동에 불이 붙었고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의류 생산 공장에 대한 안전기준을 조정하거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안전협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노동 착취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벗어 나고 싶으면서도 노동 조건과 임금 인상을 원치 않는 기업들은 또다시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국가를 찾아 공장을 세우면 되는 상황이다.

 

최근.png

  

 

위 사진은 21년 미국 섬유 의류 전문 매체인 저스트 스타일과 글로벌 데이터인 어패럴 인텔리전스 센터가 공동으로 27개 소싱국들을 평가한 결과이다. 이들은 FOD 수행 능력, 수주 가격, 관세 혜택, 규정 준수, 지속 가능성, 생산 품질, 금융 안정성 등 15개 항목에 따라 의류 소싱국들을 채점하고 순위를 매겼다.

  

의류 생산 산업이 국내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방글라데시와 인도는 중남미 국가들의 경쟁력 상승에 따라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멕시코는 최근 리드 타임, 관세, 투자 등이 자유로워지면서 기업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추세이다.

 

*

 

적절한 임금과 노동 조건, 빠른 리드 타임과 관세, 투자의 자유로움은 분명 패션 기업 입장으로 본다면 득이 되는 조건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기업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점을 보아, 기업 맞춤형 산업국이 되지 않는 이상 의류 산업에 종사하는 소싱 국가들이 차지할 경쟁력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노동 착취와 인권문제가 야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류 생산 소비 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소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옷을 사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업들은 그 손해를 채우기 위해 더 큰 부담을 소싱 국가들에 가중할 것이다.

 

식민 지배 그 이전부터 시작된 불평등은 어느새 신 국제 분업을 지나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임금이 높아지면 일자리 줄어들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임금을 낮추면 더욱더 가난해지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지배와 종속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마땅한 해결책 없이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암담하다.


 

 

KakaoTalk_20211108_205235392.jpg


 

[강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