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것 [사람]

올해를 걸어갈 수 있도록 함께 해준 내 인연들에게
글 입력 2021.12.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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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변환][크기변환]Research Reveals How Many Hours It Actually Takes to Make a Friend.jpg

 

 

연말과 연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날짜를 만든 이는 알까? 바뀌는 계절이 있고, 한 달이 있고, 일주일이 있고, 또 하루가 있다는 것이 지나간 것은 묻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낼 수 있는 굉장한 힘이 되어준다. 무엇이든 시작과 끝이 생기면 의미가 짙어진다.


연초에는 나와의 약속을 다짐한다. ‘꾸준한 운동’, ‘일찍 일어나기’, '매일 글 읽기'와 같이 나의 발전을 위해 하는 일들이 대부분 새해 목표가 된다.


반면에 연말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생각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봐야만 되겠다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일은 잠시 미루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이 잦아진다.

 

*


이번 한 해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생긴 새로운 인연이 많았다. 전시회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줄을 서다가 만난 이도 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인연들과 약속을 잡고, 대화하면 산뜻한 에너지를 가득 채워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필 그 시간에 시간이 나서 어떤 장소에 갔다거나, 어떤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사람과 만나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인연이었다. 누군가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중 그 사람들과 나를 꼭 맺어두어 서로를 끌어당긴 것 같았다. 분명 우연히 만났지만, 그 장소에서 몇 날 몇 시에 소중한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 모두 계획된 것처럼 그들은 모두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연한 만남이 오랜 시간을 함께할 인연으로 다가오다 보니, 세상의 수많은 인연은 정말 붉은 실로 매여있을 것만 같아졌다. 스쳐 간 인연과 오래된 인연, 새로운 인연들을 생각해본다. 실로 묶여있을 수많은 인연을. 인연이 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고 서로의 인생에 끼어든다는 생각이 들면 참 낭만적이다.

  

그에 반해 오래된 관계는 쉽게 그 낭만을 잊었다.


몇 주전 오래되고 소중한 인연에게 갑자기 서운한 감정이 들어서 운 적이 있다. 정확하게 뭐가 속상했던 건지 알 수 없는데 나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물이 났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가 나에게 그랬다.

 

'난 요즘 너랑 있을 때 아무 생각도 안들 정도로 너무 편했어. 근데 네가 노력해준 덕에 편했던 건데, 그걸 잊고 있었네.'

 

그 얘기를 듣고 더 서러운 눈물이 났지만 그건 서운함이 녹아내리는 눈물이었다. 그때, 새삼스레 상기했다. 어떤 관계든지 언제나 서로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래된 관계는 새로운 인연보다 더 자주, 그 노력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절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다. 인내와 배려에서 나오는 노력이 얼마나 잊히기 쉬운지 모른다. 심지어 내가 한 노력과 그 필수성조차 잊는다. 오래된 인연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나 자신과의 관계,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친구, 연인, 부부, 형제 등 세상에서 연결되는 모든 관계엔 노력이 필수적이다. 걸음 속도가 다른 상대를 위해 맞춰 걷는 것부터 말하기 어려운 것을 털어놓는 것,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것까지 모두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오래된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온전한 편안함을 느꼈던 것은 우리가 같이 보낸 긴 세월 덕이 아니라 상대의 나를 향한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무조건적인 안식처로 삼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가 그 관계에 들인 노력을 알아주고 충분히 보답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는 함께 오래 할수록 오히려 보답이 더더욱 커진다고 느낀다. 사실 그들이 우리의 노력을 정말 알고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믿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가끔 눈에 보이거나 티 나지 않는 노력일지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이에 보답하듯 고마움을 한껏 표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말은 표현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

 

책에서, 영화에서, 대화를 통해 배운 인생 선배들의 수많은 조언 중 빠지지 않는 조언이 있다면,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조언이다. '인생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필요 없고 너만 성공하면 장땡이다' 식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이들은 모두, 내가 성공하고 많은 부를 쌓는 것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자꾸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들이는 노력에 가성비를 생각하게 되고, 얄팍한 수를 써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상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른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도 미루고 미루다 한번에 몰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틈틈이 자주 해야 한다.

 

필자도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를 핑계 삼아 잠시 내가 그동안 소중한 인연들을 위해 들인 노력과 상대가 들였을 노력을 생각해보고 이를 만끽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 모든 노력에 중요한 전제가 있다면, 물론 상대와의 관계를 위한 노력 이전에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잘 빚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 자신을 다른 사람, 어떤 상황보다 먼저 아껴야만, 그다음 단계로 다른 이들과의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나 혼자 해낸 일은 없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는 혹자의 말처럼, 나는 내 인연들과 함께 가고 있으니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난 이가 있다면 한껏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그 마음을 표현해보자. 같이 있을 때 온전히 편안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권현정.jpg

 

 

[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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