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형 데스 게임이란 (1) [드라마/예능]

<오징어 게임>(황동혁, 2021)의 문화적 맥락
글 입력 2021.12.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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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흥행 전까지 데스 게임은 국내에서 굉장히 생소한 장르였다. 난생 처음 보는 드라마의 세계적인 유행에 우리는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한국형 데스 게임의 등장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징어 게임>의 전무후무한 성과를 칭찬하기 바쁠 뿐, 이와 같은 드라마가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규명하는 데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을 한 천재 감독에 의해 한국 문화계에 벼락처럼 떨어진 신물(神物)처럼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데스 게임 장르가 국내에서 크게 유행한 적이 없었던 탓에 그 기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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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데스 게임 만화와 드라마가 워낙 유명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데스 게임 장르의 발원지는 서구권, 특히 미국이다. 서구의 순수문학에서 데스 게임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거나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고뇌를 묘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특수한 상황적 요소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리처드 코넬의 1924년 작 단편소설 <가장 위험한 게임>이 있는데, 동물 사냥을 하러 여행을 다니던 주인공이 인간 사냥을 취미로 하는 이의 섬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목숨을 건 게임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전까지 ‘목숨을 건 게임’을 다룬 창작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재를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게임>을 데스 게임 장르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다만 <가장 위험한 게임>은 사냥꾼을 피해 살아남는 것이 게임의 전부인데다 세부적인 규칙도 없었던 탓에 데스 게임물의 장르적 문법을 정립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데스 게임물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대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굉장히 강하게 담겨 있다. 이는 서구에서 시작된 초기 데스 게임물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이 작품의 경우 재규어 사냥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 자신이 사냥감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과열된 동물 사냥 문화를 꼬집고자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트 보니것의 1951년 작 단편소설 <왕의 모든 말들>은 데스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설정, 즉 그 자체로는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거기서 패배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 방식을 본격화한 작품이다. 현지 군벌의 포로가 된 미군에게 현지 군벌의 수장이 목숨을 건 체스 게임(말 하나가 죽을 때마다 미군 측 인물이 하나씩 죽게 된다)을 제안하자 미군 측 지휘관이 그와 게임을 하는 내용으로, 앞서 언급한 <가장 위험한 게임>이 어떤 의미에서는 구체적인 규칙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고뇌와 비극적인 드라마를 강조하는데, 주인공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는 장면에서 비극성은 절정에 달한다.

 

데스 게임의 여러 가지 장르적 규칙을 정립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롱 워크>(1979)다. 게임에 참가한 이들은 한 명의 우승자만 남는 시점까지 쉬지 않고 걸어야 하고, 낙오되는 이들은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며, 우승자에게는 어마어마한 상금과 명예가 주어지는 등 오늘날 데스 게임물이 흔히 따르는 설정을 다수 제시한 작품이다. 다만 설정에서 비롯되는 자극적인 면에 치중하기보다는 상기한 작품처럼 참가자들 사이의 드라마, 즉 서로 유대감을 쌓는 장면이나 탈락 위기에 놓인 동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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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한 작품들을 통해 정립된 데스 게임의 요소들은 일본 하위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90년대 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일본의 데스 게임물은 인물 간의 드라마나 사회 비판적인 요소보다는 데스 게임이라는 설정 자체에서 나오는 장르적 쾌감에 집중했다. 초기 일본의 데스 게임물에서 특기할 만한 작품은 타카미 코슌의 소설 <배틀로얄>(1999)과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로, 전자가 서구권의 데스 게임물이 정립한 설정을 잘 따르고 있다면 후자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설정과 서사 전개 방식을 선보였는데, 두 작품의 성공은 이후 등장한 일본의 데스 게임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배틀로얄>은 군국주의 정부의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외딴 섬에 갇혀 마지막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데스 게임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전체적인 설정이 앞서 언급한 <롱 워크>와 상당히 비슷한데, 타카미 코슌 작가 스스로가 스티븐 킹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롱 워크>와는 다르게 참가자들이 서로 죽고 죽임으로써 생기는 장르적 쾌감에 집중하는 편인데, 2001년 후카사쿠 킨지에 의해 영화화된 <배틀로얄>은 일본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파급 효과를 일으키며 장르적 쾌감에 집중하는 일본의 데스 게임물을 전 세계에 알렸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서구 데스 게임의 영향 아래에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설정과 내용 전개 방식을 확립한 작품으로, 후배의 보증을 선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게 되고, 이를 청산하고자 커다란 배에서 개최되는 목숨을 건 도박에 참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핏빛 쾌감에 집중한 기존의 데스 게임과 달리 불리한 게임에서 비상한 두뇌를 지닌 주인공이 기발한 전략을 사용하여 극적으로 승리하는 것에서 오는 쾌감에 집중한다. 기존의 데스 게임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으로, 상기한 <배틀로얄>과 함께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일본 데스 게임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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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후반에 웹툰 시장에서 가끔 등장한 한국의 데스 게임물은 장르적 색채가 강한 일본 데스 게임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 데스 게임물의 시작으로는 흔히 네이버에서 연재된 프로젝트성 웹툰 <눈의 등대>(김규삼, 2007)가 많이 언급되는데,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영향을 받은 듯한 게임의 규칙은 굉장히 흥미로웠으나 진행 과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한 탓에 유의미한 시도로 남지는 못했다. 이외에도 두뇌 게임을 소재로 한 만화를 다수 제작한 웹툰 작가 마사토끼도 <킬 더 킹>(2007)을 통해 <도박묵시록 카이지>나 <라이어 게임>에 버금가는 수준의 치밀한 게임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시기 한국 영화계에서도 데스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등장했다는 점인데, 학교에 갇힌 학생들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 명씩 죽는 게임을 하게 되는 공포 영화 <고사>(윤홍승, 2007)나 거액을 걸고 벌어지는 서바이벌 쇼에 출연한 참가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는 <10억>(조민호, 2009)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 모두 흥행이나 작품성의 측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특이한 공통점은 주최자가 게임을 만든 동기가 ‘억울한 일을 당한 후 그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게임의 우승자가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데스 게임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물의 배경 설정이나 사연에 그렇게 큰 공을 들이지 않았던 일본의 데스 게임물과 달리 개인의 비극적인 드라마에 초점을 두는 시도가 있었던 셈이다.

 

'장르적 쾌감(잔혹한 공포/추리물)'과 '비극적인 드라마(데스 게임 주최자의 슬픈 사연)'를 결합한 두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서구의 초기 데스 게임물과 일본 데스 게임물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다. 데스 게임이라는 마이너한 장르 안에서도 한국 대중문화의 다성적이고 혼종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는 셈이다. '한국형 데스 게임'의 출발점은 어쩌면 여기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오징어 게임>의 독창성은 서구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달한 데스 게임의 장르적 문법을 재매개하는 과정에서 얻어졌다는 것이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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