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얀 마텔의 '높은 산' - 포르투갈의 높은 산

글 입력 2021.12.1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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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은 인간의 내면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해 매력적인 필력으로 독자들을 한층 기대시키기 충분했다. 그 후 네 번째 장편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국내에서 출간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사본 -포르투갈의높은산_표1_띠지무.jpg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독한 무력감의 상실 이후 무너지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장대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스케일 안에 종교적인 서사와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의 배치는 적재적소 하게 들어가 얀 마텔의 작업을 따라가는 일에 흥미를 준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공간적인 배경이 이야기의 주를 이뤘다. 포르투갈과 캐나다를 배경으로 이 안에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지만 현실감각은 절대 잃지 않았다. 매우 리얼하지만 몽환적으로 펼쳐지는 감각이 동시에 살아있다.

 

총 3부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침팬지, 포르투갈이라는 모티프를 따라 각 부마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성을 이루고 있다. 자칫 집중력을 놓치면 복합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서사지만 이는 소설의 미스터리적 요소로 배치되는 구성으로 적절했다.

   

 

 

1.


 

여기 1년째 뒤를 향해 걷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토마스이며 얼마 전 부인과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한 번에 겪은 가혹한 운명을 가졌다. 감정에 극한의 상황을 맞이한 토마스는 기독교를 뒤집어놓을 만한 십자고상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십자고상을 만든 인물은 율리시스 신부로,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상투메 섬에 부임한 사제다. 그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는 지상에는 위계가 있다는 공식이 있었다. 이런 무자비한 공식에 맞서 율리시스 신부는 한없이 고독한 싸움과 이겨 십자고상을 조각하는 집념에 불타오른다.

 

이런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를 읽은 학예사 토마스는 신부의 열정과 고통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고 신이 자신에게 고통을 내린 복수를 치르기 위해 직접 확인하는 길에 오르게 된다. 토마스는 자동차의 개념조차 없던 시기, 즉 마차와 수레를 끌고 다니던 당시에 르노 자동차를 몰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2.


 

에우제비우는 부검 병리학자이다. 1938년 포르투갈에서 에우제비우는 2명의 여인을 맞이한다. 처음은 그의 부인 마리아다.

 

그녀는 남편에게 복음서와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유사성을 적절히 배치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마리아는 이성과 신앙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 안에서 혼동이 찾아올 때는 '이야기'라는 해결책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며 남편을 설득한다.

 

 

“이성은 현실적이고, 보상이 빠르고 그 작용은 명확해요, 하지만 슬프게도 이성은 맹목적이지요. 이성은 우리를 어디로도 이끌지 못해요, 역경을 앞두고는 특히 그렇죠.”

 

 

그 후 동명이인인 또 다른 마리아가 에우제비우를 찾아온다. 가방 안에 남편의 시신을 넣고 그에게 부검을 해달라며 간청한다. 보편적으로 부검이란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조사하고 사인을 알아내는 행위다. 그러나 아내 마리아는 남편이 왜 죽었는지 알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한다.

 

 

 

3.


 

피터는 캐나다의 상원의원이다. 피터 또한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아내와 사별해 충격이 크다. 그의 인생에 큰 일부를 차지한 인물이 사라지게 되자 캐나다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피터 부모의 고향인 포르투갈로 찾아간다. 혼자가 아닌 동물 유인원과 동반한다.

 

유인원의 이름은 오도이다. 피터가 출장하면서 유인원 연구소에서 만난 수컷 침팬지인데, 침팬지 오도는 피터를 마치 열린 문으로 너그러이 바라봐 주었고, 그에 피터는 오도를 비싼 값으로 데리고 오게 된다.

 

피터는 인간으로서 과거와 미래 그리고 상실과 미련을 맴도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기억을 기억하지 말 때도 있어야 한들, 그에게 그런 삶의 고수 같은 유연함은 없었다. 그러나 복잡한 자신과 달리 오도는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했다. 예를 들어오도가 다른 개들과 싸움이 일어났는데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 서린 공기만 주어질 뿐 서로의 털을 뽑아주며 과거에 대한 시간 개념을 버리는 행위를 목격한다.

 

즉 감정에 살짝이라도 부산물이 껴있지 않으며 그저 현재의 본능에 충실한 오도에게 의지를 하게 된다. 또한 계속 변화하는 숫자의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고, 집안 정리도 오도만의 독특한 정리 법을 따르게 되며 자연스럽게 시간이라는 자체를 느슨하게 음미하며 무언가를 갈망하는 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게 된 오도와 피터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

 

1,2,3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해발 고도가 어떻게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포르투갈 북동부 지역에 높은 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의 마지막 작품 3부에서 피터가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았을 때, 그 산은 듬성듬성 바위만이 존재하는 사바나 지대였다. 즉, 소설에서 나온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존재하지 않는 산이다. 실제적 장소가 아닌 어떤 미지의 장소이며 판타지적 허구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오도와 피터가 오른 허구의 포르투갈 산에서 이베리아 코뿔소(인류의 발전으로 멸종되었다고 알려짐)가 등장한다. 인간에게 분명 이베리아 코뿔소가 사라졌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보지 않은 미지의 생물에 대한 판단 자체가 흐려진 것이다.

 

없다고 생각한 것이 눈에 보이는 것, 또 있다고 생각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인간은 정의 내리기 어려운 세계 안에서 죽음에 맞닥뜨려지기 전까지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 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균형을 맞추도록 끝없이 사유하고 믿음을 가지는 행위 자체가 삶이고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며 얀 마텔은 의미한다.

 

살다가 무너지고 연약해지는 순간은 균형을 맞추지 못할 때 발생하기 쉬우며, 우리는 믿음과 불신 그 사이 어딘가에 우두커니 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 이 소설에서 얀 마텔이 전하고자 했던 긴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각자 어떤 ‘몫’을 구원받기 위해 오늘도 그 다음날에도 높은 산을 등반해야 한다.

 

 

 

조우정-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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