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포르투갈의 높은 산 -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요?

글 입력 2021.12.14 15: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세계관.


작가가 건설한 세계. 독자가 스토리에 강하게 몰입하게끔 만드는 소설의 기반이자 독자의 고여있던 호기심을 건드려 책을 완독하게 만드는 덫. 영화, 소설 이외에도 세계관은 소비자와 독자를 유인하는 매력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해적 스토리를 이어가는 아이돌 그룹 ATEEZ에이티즈,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캐릭터로 ‘병맛’ 세계관을 이어가는 빙그레 등. KPOP, 브랜드 마케팅 등에서도 잘 짜인 세계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웰메이드 세계관’을 구축한 또 다른 작품을 만났으니. 필자가 영상미와 스토리에 압도당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 도서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의 작품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은 해당 작품으로 세계관의 정수를 보여줬다.


각기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옴니버스 형식인 줄로만 알았다.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오로지 ‘집’이라는 소재만 공유하는 각기 다른 이야기. 하지만 2부가 시작되고 한 번의 충격, 그리고 3부의 끝에서 또다시 충격. 시간적 배경이 다른 세 스토리는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인물 간의 관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상징적 공간,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상실감이라는 등장인물의 감정 상태 등으로 세 이야기는 하나로 엮여 있다. 완독 후엔 3 in 1의 완벽한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다.


‘읽는 중에 이미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

 

당연한 찬사인 것을,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집’이 있으신가요?


 

[크기변환]mountains-gde28d10a5_1920.jpg

 

 

공간적 의미의 ‘집’. 인간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고 육체와 정신의 쉼을 행하는 물리적 공간. ‘집’은 존재 자체로도 평안하다. 세상의 풍파에 치이고 깎여도 결국 집에 들어서면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불완전한 ‘나’를 감싸는 ‘집’.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집’은 작품의 중심 소재다. 자연스레필자는 책을 읽기 전엔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집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는 작가의 함의를 단번에, 단면적인 것만 보고 파악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른 것이 되었다.


집은 어떤 의미일까.


각 파트의 등장인물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는다. 세상이 무너진다. 그리곤 그들은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 어디론가 떠난다. 누군가는 조각상을 찾으러, 누군가는 남편의 비밀을 밝히러, 누군가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물과 함께 자신이 오랫동안 살던 공간을 떠난다. 익숙한 공간을 떠난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순간’과 삶을 찾는다.


결국 그들이 찾는 것은 ‘집’이었다. 그 ‘집’이 누군가에게는 조각상이, 누군가에게는 남편의 육체가, 누군가에게는 공간적인 집이 된다. 결국 ‘집’은 인물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 자신의 신념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실이라는 어두운 감정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만의 집을 찾고 상실의 방에서 벗어난다.

 

 

 

상실의 끝엔, 나


 

[크기변환]azores-gdb4886821_1920.jpg

 

 

상실의 끝엔 자신이 있다.


등장인물은 상실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혼자 남겨져 어디로 부유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 하지만 가장 큰 존재의 부재가 곧 그들에겐 본인의 존재 확인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혼자 남겨진 자신을 발견하고 온전히 자신의 욕망을 따른다. 이 세상에 자신만이 존재하는 듯,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가 전부인 듯 행동한다. 뒤로 걷고, 영혼이 빠져나간 남편의 몸에 들어가고, 인간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침팬지와 먹고 자고 살아간다.


이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산다는 것 무슨 의미일까. 그들은 상실감을 가득 안은 자신을 살피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때 묻지 않은 감정을 따른다. 그리고는, 각자 나름의 통찰을 얻는다. 삶의 이유라 믿었던 존재가 한순간의 재로 사라졌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였을 때, 그들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행동했고 주변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채 본인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국은 다시 살아갈 추진력을 얻었다.


결국 감정의 혼란을 이겨내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내면의 심지를 굳게 세워 살아간다.

 

 

 

인간 관망하기


 

[크기변환]porto-g1a225ee3a_1920.jpg

 

 

작가는 마치 본인은 인간이 아닌 양 인간의 감정을 세세하게 파헤친다. 유체이탈한 듯 인간을 바라본다. 우리 인간을 작가의 언어를 통해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묘미이자 매력이다.

 

 

우는 습관은 얼마나 기이한가. 동물이 울던가? 분명히 동물도 슬픔을 느끼리라 – 하지만 슬픔을 눈물로 표현할까? 그는 의심스럽다. 고양이나 개, 야생동물이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울음은 인간만의 습성인 듯하다. 그는 울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컷, 심지어 몸부림치며 울지만, 그 마지막에는 뭐가 남는가? 황량한 피로감. 눈물 콧물에 젖은 손수건. 울었다는 걸 누구에게나 알리는 빨간 눈. 그리고 울음에는 품위가 없다. 울음은 예의범절을 초월한 개인의 언어이고, 표현 방식도 제각각이다. 얼굴 찌푸림, 눈물의 양, 흐느낌의 음색, 목소리의 높이, 소란의 크기, 안색에 미치는 영향, 손의 움직임, 취하는 포즈가 다 다르다. 사람은 오직 울 때 울음 - 울음의 개인적 특성 - 을 발견한다. 이것은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낯선 발견이다.

 

- 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 p. 65

 

 

작가 또는 등장인물은 우는 행위 자체를 의심한다.


울음은 슬픈 감정을 느낄 때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슬픈 감정을 시각화한 것이 울음이다. 따라서 울음의 목적은 없다. 하지만 울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꽤나 이성적인 표현이 필자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렇다. 눈물 뒤에는 퉁퉁 부은 눈과 지끈한 머리 그리고 멍한 느낌만이 남는데, 그렇다면 굳이 울 필요가 있을까. 등장인물의 주장에 동요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가는 인간을 공감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그리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그린다. 결국, 인간은 참 어려운 존재다.

 

 

 

펜을 들다



표현 하나하나를 담아 두고 싶은 책. 펜을 들고 그의 문장을 끄적이고 싶은 책.

 

작가가 펼쳐 놓은 세계관을 한데 엮어 그림으로 펼치고 싶은 책.


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다.


 

[크기변환]포르투갈의높은산_표1_띠지유.jpg



[신재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