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공연]

연극이 말하는 인생
글 입력 2021.12.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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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속으로


  

루이지 피란델로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 9월 아르케 극단 무대 위에 올랐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특별할 것 없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공연 준비 중인 대학로 소극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무대 뒤쪽에는 검은색 커튼이 달려있고, 좌측 벽에 문이 하나, 우측 벽에 문이 하나 있다. 이는 등장인물의 등퇴장로다.

 

연극은 무대 위에 홀로 있는 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아르케 극단의 창단공연 당시 김승철 연출가는 뷔히너의 <보이첵>을 재구성하며 ‘칼’이라는 인물을 중요하게 바라보았다. 이후 그는 다른 작품들에 칼을 등장시키는데, 이에 대해 그는 칼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작품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2018년 <전쟁터의 소풍>에서의 칼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 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의 정령, 고독의 화신이기도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징적 인물로 작품 속에 진입하였다고 김태희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 칼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분장(높이 솟은 반묶음 머리에 과한 볼 터치, 멜빵 반바지에 반스타킹)을 한 채 한마디 대사도 없이 무대 위를 돌아다니거나 무대 오른 편에 놓인 피아노를 치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가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 등장한 무대감독은 무대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소리의 출처를 바라보지만, 피아노를 치는 ‘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퇴장한다. 이는 ‘칼’이 관객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또한 객석을 바라보며 웃는 등의 장면들은 관객과 무대의 벽을 허물며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실재가 아닌 연극임을 상기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렇듯 ‘칼’이라는 존재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극을 시작하는 프롤로그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미래창조(연극 내 극단명) 극단의 정령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지난 아르케 극단의 연극을 관람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의미를 알 수 없는 등장인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연출은 ‘칼’의 상징성을 더욱 뚜렷이 하여 그의 존재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되게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극의 몰입을 방해할 여지가 불가피해 보인다.

 

 

 

등장인물 등장


 

프롤로그가 끝난 후 무대는 극단 배우들로 하나 둘 채워진다. 좌측 문에서 나오는 무대감독과 남 배우 3을 제외한 극단 배우들은 관객과 동일한 경로로 무대에 등장한다. 마스크를 쓰고 객석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배우들로 인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관객들은 극단 배우들을 관찰자로서 바라보게 된다. 또 연출가와 조연출은 관객석 중앙에 앉아 극을 진행해 나가는데, 이러한 연출은 관객들이 아르케 극단 ‘배우 actor’와 그들이 연기하고 있는 ‘인물 character’ 사이 이중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메타 연극 속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의 특징으로, 관객이 극 인물을 허구적 존재로만 인지하지 않고 등장인물 또한 연극의 일부임을 일깨워 환상에 대한 몰입을 막는다.

 

이뿐만 아니라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도 이러한 메타연극적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단원들이 새로운 연극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는 도중 무대가 아닌 관객석 통로에 갑작스레 등장한 6인의 모습은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인물처럼 보이게 된다.

  

연출가는 무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을 구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여섯 등장인물 중 어머니와 의붓딸 그리고 소년, 소녀는 검정 상복을 입고 있고, 아버지와 아들은 양복을 완벽히 갖춘 모습이다. 이러한 의상 표현은 편안한 옷을 입은 극단원들과 대비되는 모습이자, 여섯 등장인물들과 단원 배우들 간 혼동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또한 짤막하게 회화체로 대사를 뱉는 단원 배우들과는 반대로 여섯 등장인물들의 연극하는 말투와 장황한 대사는 두 그룹을 나누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극중극과 한 걸음


 

희곡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는 자신이 쓰고 있던 극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극작을 멈춘다. 그러나 그는 막혀버린 상상력을 대단히 창의적인 방법으로 풀어낸다. 바로 미완성된 6인의 등장인물이 자신들의 드라마를 완성시켜줄 연출가를 찾아오다는 설정이다. 극단 대표 레퍼토리를 개발 중이던 연출가는 고민 끝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6인의 등장인물은 극단 미래창조의 극장 무대 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재연한다.

 

그들이 재연하는 상황은 이러하다. 아버지와 의붓딸, 그들은 등장 후부터 서로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충돌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생계를 위해 몸을 팔게 된 의붓딸이 처음으로 받은 손님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붓딸이 1인용 소파에 앉아있고 아버지가 들어와 그녀에게 말을 걸며, 그와 그녀가 가까워지는 시점에 어머니가 해당 광경을 보게 되는 바로 이 장면을 무대 위에서 재연하게 된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아르케 극단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관람하기 위해 대학로의 한 극장을 찾았지만 곧 6인의 등장인물이라는 역할의 배우들(어머니, 아버니, 아들, 의붓딸, 소년, 소녀)이 무대 위에서 다시금 자신들의 드라마를 연기하고, 미래창조 극단원을 연기하던 배우들이 관객의 역할로 전환되는 상황을 마주한다.

 

무대 위에서 또 다른 극을 펼치는 이러한 극중극 형태는 관객들이 배우들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고 한 반짝 물러나 연극 자체를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또한 극단은 갖고 있는 소품들로 그들이 말하는 장면을 대강 비슷하게 만들고, 미래창조 극단 배우들이 아버지와 의붓딸,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을 맡아 그들의 방식으로 연출하는 등 재연은 결코 실제와 같아질 수 없음을 극중극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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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이처럼 연극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 가장 중요히 드러나는 특징은 극중극, 즉 연출 과정을 폭로하는 메타연극이다. 그 속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진실’의 영역이다. 후회의 상징인 아버지가 그의 진실을 얘기할 때 의붓딸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라며 분노하고, 극단 배우들이 그들의 드라마를 무대 위에서 재연할 때도 등장인물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해답은 이미 연극 속에 들어있다. 아버지가 말하는 진실, 의붓딸이 말하는 진실, 어머니가 말하는 진실, 이 모든 진실들이 바로 그 답이다. 6인의 등장인물들과 배우들은 해당 극 내에서 극중극을 행한다. 그러나 아무리 배우들이 사실대로 연기한다고 한들 실제와 재연의 간극은 결코 좁혀질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점이 진실과 유사하다.

  

실제로 아버지와 의붓딸 등 6인의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거짓을 말하는 이는 없다. 아버지는 실제로 몸을 파는 여자가 자신의 딸임을 몰랐기에 그 당시 일을 후회하고 있으나 의붓딸은 그가 자신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말을 거짓이라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각자 갖고 있는 진실이 다르기에 결코 하나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을 연극은 말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앞서 극중극을 통해 관객들이 연극을 허구로 인식하며 극 자체를 생각하게 됨을 언급했는데, 더 나아가 극중극은 인생과 연극의 동질성을 만들어낸다. 6인의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듯 관객들 역시 세계라는 극장 안에서 자신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쓰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해당 연극은 인생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 더 와닿을 지도 모른다. 이 연극은 사실상 극을 쓰던 작가가 막혀버린 이야기를 풀기 위해 애쓰는 창작 과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피란델로의 희극과 아르케 극단의 연극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인생 역시 한 편의 연극이자 그들 자체가 극을 써 내려가는 한 명의 배우임을 일깨우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낼 작은 실마리가 되어준다.

  

세상엔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극 인물, 배우, 관객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진실이 곧 사실이다. 따라 이 연극을 본 한 명의 등장인물 즉, 내가 써 나갈 이야기는 퍽 자유로워 보인다. 등장인물인 아버지의 말처럼 연극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자, 놀이를 시작하자. 이 세상을 진실처럼 만들어보자. 나라는 환상의 인물에 한번 생명을 불어넣어 보자고!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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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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