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동, 그리고 남은 사람들 - 사브리나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2.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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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성이자 테디의 하나뿐인 애인이었던 사브리나는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다.

 

사브리나의 동생 산드라와 남자친구 테디를 포함한 주변인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는다. 테디는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사브리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친구 캘빈의 집에서 지내며 그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브리나를 살해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누군가에 의해 언론사에 전달된다. 캘빈으로부터 사브리나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테디는 깊은 절망과 분노에 휩싸이고, 사브리나 살인사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론화된다.

 

그러나 사브리나 살인사건이 실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꾸며진 사기극이라는 음모론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해당 사건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또다른 비극의 시작이 된다.

 

음모론자들은 사브리나의 주변인들은 연기를 하고 있거나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며, 사브리나 역시 살해당하지 않았고 살아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유출된 사브리나의 비디오테이프 속 장면을 직접 분석해 모든 것이 가짜라는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는가 하면, 사브리나의 주변인들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가하기까지 한다.

 

이후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대량 학살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사브리나 살인사건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잊히게 된다. 남은 것은 주변인들의 지울 수 없는 정신적 트라우마뿐이다.

 

 

 

절제된 표현 속 날카롭게 드러나는 현대사회의 병폐



『사브리나』는 오늘날 미디어의 폐해와 역기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담백한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거짓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미디어는 쉴 새 없이 먹잇감을 던진다. 입맛에 맞는 거짓은 진실보다 우위에 있는 그들만의 진리가 된다.


 

테디: 모두에게 너무나 화가 나.

캘빈: 누구?

테디: 모두. 나 자신에게.

캘빈: 음, 이 일을 저지른 인간은 죽었으니까, 적어도….

테디: 세상에 그런 인간들은 차고 넘쳤어.

캘빈: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 되잖아.

테디: 난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어, 제기랄. 사브리나는 이런 엿 같은 일을 당할 만한 짓은 안 했다고.

 

- 『사브리나』, P. 103

 

 

테디의 분노는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살인범뿐 아니라 거짓을 선동하고 타인의 불행을 하나의 유희거리로 즐기는 '모두'에게 향한다.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부터 근거 없는 음모론의 확산, 그리고 사브리나의 비디오테이프 유출까지. 사브리나 살인사건은 미디어를 통해 그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기 위한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된다. 끝나지 않는 비극 속에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그들의 내면을 비춘다.

 

현대사회 속 미디어는 폭력의 온상이 되었다. 때로는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가짜 뉴스와 루머가 진실보다 더욱 진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경우 누구나 혹할 만한 이야기에 쉽게 동조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개인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거짓과 선동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어버리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특정 다수에 의한 무차별적 폭력에 가담하고 이를 '가볍게' 즐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주변 지인들로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나 루머를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보의 출처나 명확한 근거가 있냐는 나의 물음에 일부는 오히려 '왜?'라고 되물었다. 정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실일 가능성도 다분하기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기존의 관념을 깨트리거나 혼란을 야기하는 정보에 본능적으로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특정 인물의 일상이나 연예활동에 대한 기사보다 논란이나 루머 등에 대한 기사의 조회 수가 최소 몇 배 이상은 더 높다는 점을 이용해 더욱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달거나 악의적인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다.

 

무엇이든 선을 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대중에게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미디어와 그러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은 이미 선을 넘은지 오래다. 심지어 몇몇 유명인들은 미디어와 대중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끊임없이 더욱 큰 자극과 충격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사브리나』는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광기 속에 망가져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미디어를 소비하는 오늘날의 모든 이들에게 발언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브리나를 위해, 그리고 남아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부디 예민해지라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살이 베이는 듯한 고통을 온전히 느껴보라고. 그리고 그 고통에 모두가 괴로워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끝끝내 침묵해달라고.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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