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절성 우울에 빠진 심슨 (ft.꾸꾸꾸) [사람]

글 입력 2021.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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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의자에 널려 있는 이 심슨을 본 적이 있는가. 눈은 반쯤 뜬 채로, 그래도 완전히 눕지는 않고 나름 앉아있는 채로 세상만사 귀찮아 보이는 심슨이 여기 있다. 약 2주 동안의 내 상태를 너무나 잘 대변해주는 그림이다. 차라리 누울 거면 제대로 침대에 누워서 쉬면 될 텐데, 누웠다고도 앉았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렇게 며칠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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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아무것도 하기가 싫은 상태’가 근 2주 동안 은근하게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온종일 울적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번 가라앉는다고 해야 할까. 기분이 좋았다가도 또다시 안 좋아지고. 짜증이 나는 건지, 화가 나는 건지, 울고 싶은 건지-나도 모르는 기분에 휩싸여 있다가, 금방 괜찮아졌다가, 다시 우울해졌다가. 그럴만한 이유도 없는데 요즘 희한한 상태였다.


글을 써야 하는데 도저히 머리를 굴려보아도 어떤 글을 쓸지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내가 감동했던 것들을 나누고 싶어서 쓸 거리가 꾸준히 새로 생겼는데, 이번에는 며칠을 머리를 굴려보아도 적고 싶은 글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에는 그 당시의 내가 느끼는 것을 생생히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최근의 나에게서는 끄집어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금의 나를 적어보기로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현재의 내 상태를 적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변화


 

1. 단 것을 무시무시하게 많이 먹는다. -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자 같은 단것을 정말 많이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혈당수치가 엄청나게 높아지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말이다.

 

편의점에서 2+1행사를 하던 초콜릿 바에 꽂혀서 하루에 3개씩, 그렇게 4, 5일을 먹었다. 초콜릿 바를 먹으면서도 과자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원래 주전부리를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단 걸 몸에 계속 집어넣었다. 우울해지면 식욕이 줄어든다던데 오히려 음식에 대한 식탐이 더 생긴 것 같았다. 틈만 나면 초콜릿을 먹었다.


2.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일을 하지 않는다. - 분명 며칠 전에 12월 계획을 세우고 방학에 할 일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앞으로의 비전을 그렸다. 하지만 며칠 만에 행동도 생각도 멈춰버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아무것도 더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해야 하는 일들도 자꾸만 미루고 나태해졌다. 의욕을 가지려고 마음을 다잡아도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3. 잠이 많아진다. - 채워야 하는 잠의 총량이 평소보다 늘어난 것 같다.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 충전이 돼서 기운이 나는데, 아무리 많이 자도 잠의 양이 에너지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 않았다.

 

 

 

계절성 우울증에 관해


 

원인을 파악해야 해결을 할 텐데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우울해질 만한 일을 겪지도 않았고,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요동치는 기분과 의욕 저하를 느끼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계절이 바뀌면서 겨울을 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검색해보니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용어를 찾을 수 있었다. 딱 나와 같은 증상이었다. 일반 우울증은 ‘무기력, 불면증, 식욕 저하, 우울’이 증상이라면 계절성 우울증은 ‘무기력, 과수면, 식욕 왕성, 우울’이 증상이었다. 겨울이 되어 햇빛이 줄어들면,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줄어들고 신체 리듬이 깨져 계절성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계절성 우울’이라는 명칭을 붙이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내가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계절의 흐름을 더 생생히 느끼는 섬세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니 훨씬 괜찮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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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한 방법 & 생각 : ‘꾸꾸꾸’로 다니기


 

계절성 우울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산책하기, 그림 그리기, 잘 챙겨 먹기, 자기, 노래 듣기 등등. 그중에 한 가지인 '꾸꾸꾸'로 다니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꾸안꾸’라는 줄임말을 아는가.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몄다는 의미인데, 그 반대말이 바로 ‘꾸꾸꾸’이다. 자신을 최대한 꾸미는 것을 말한다. 멜랑콜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요 며칠 ‘꾸꾸꾸’로 다녔다. 마스크를 끼지만 립스틱을 바르고, 잘 입지 않았던 짧은 치마를 입어보고, 머리를 풀어보고, 새로운 스타일로 코디해서 입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신감이 넘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이 있다. 계절성 우울을 겪던 나도 울적함과 동시에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항상 꾸미고 다니는 건 피곤한 일이니,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에만 나를 최대한의 멋쟁이로 꾸며보기로 했다. 나를 내가 멋쟁이로 생각하도록 속임수를 쓰는 셈이었다.


*

 

며칠 동안 새로운 스타일로 다녔다. 꾸안꾸가 아니라 꾸꾸꾸로. 그러면서 내 생각보다 더 내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평범과 무난함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유별나지 않은 ‘평범한 대학생’의 적절한 ‘꾸안꾸 룩’이 되도록. 내가 너무 예쁘거나 멋지거나 독특해지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본격적인 ‘꾸꾸꾸’로 며칠을 보내보니, 이제 가장 멋지게 꾸민 나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 있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내가 나를 멋지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뻔뻔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너무나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을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눈에 내가 예쁘고 멋지고 잘하고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멋진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멋지다고 스스로 믿고 있어야 했다. 멋쟁이로 꾸며보는 것이 내게는 이를 깨닫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겨울이 되어 계절성 우울에 빠진 많은 심슨들에게 한번 '꾸꾸꾸'로 자신을 꾸며보기를 추천한다. 입고 싶은 대로 멋지게 옷을 입고 자신을 꾸미면, 기분전환도 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나도 완벽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어서 이게 최선의 해결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 괜찮은 하나의 방법인 것 같기에 이렇게 추천한다.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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