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악에 대한 오롯한 시선을 마주할 골목길 - 리처드 3세를 찾아서

글 입력 2021.12.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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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외면 받았으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재가 되는 '리처드 3세'


 

당시에는 철저히 외면받았던 인물인 ‘리처드 3세’는 현실에서 다양한 소재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읽은 리처드 3세는 악인 그 자체의 모습이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거나,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과 대비되어 완벽한 악인으로만 그려지는 그는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어두운 모든 감정이 모아진 인물처럼 느껴졌다.

 

어디에도 내보이지 못했던 부정적인 요소들로만 그려진 인물은 내밀하게 사람들의 속을 살핀다. 누구에게나 스쳐 지나갔던 생각이더라도 누구든 어두운 마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밀하게 살펴지는 시선이 두려우면서도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나를 잘 알 수 있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기도 하였다.

 

 

 

“흉측하고, 더럽고, 추악해. 그렇지만 매력적이고, 신비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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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유골이 발견된다. 악인의 유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떠다니게 만든다.

 

“흉측하고, 더럽고, 추악해. 그렇지만 매력적이고, 신비로워”

 

그 생각들은 은밀하면서도 강렬하게 점점 퍼져나간다. 도대체 리처드 3세는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그리고 그 유해가 어떠한 사건을 만들지에 대해 궁금증과 함께 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두려움이 몰려온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리처드 3세는 다시 돌아온다. 바로 대한민국의 골목길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작은 교회 앞 빨간 십자가 아래에 서 자신의 죄 ‘살인’에 대해 고백을 한다.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골목길 속 차가운 바람을 타고 관객에게 전해진다. 한국의 골목길 속에서 가장 죄악이면서도 가장 솔직한 마음이 오가는 것이다. 그와 함께 다들 자신이 리처드 3세라고 이야기한다.

 

연극에서 말을 하는 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리처드 3세에 대한 고정적인 악인이라는 이미지 앞에 사람들이 사연이 덧칠해졌다. 리처드 3세는 악인이다. 현실 속에 스스로가 악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악인이다.

 

그럼 그들을 바라 보는 나는 리처드 3세와도 멀고, 현실 속 악인들과도 먼 그저 관찰자일 뿐인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극은 세가지 장치를 활용하여 답을 찾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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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리처드 3세를 찾아서’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리처드 3세가 된다.

 

가운을 입는 순간, 그들의 눈에는 반짝 빛이 돌고, 자신의 속에 숨겨진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하고도 어둡고도 오히려 그렇기에 빛나는 그들의 몸짓 속에서 리처드 3세가 된다.

 

다양한 젠더와 연령대 속에서 누구든 리처드 3세가 될 수 있고, 어떻게도 해석할 수 있다. 관객들은 스스로가 리처드 3세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그들은 강한 몸짓과 함께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뱉어낸다.

 

두 번째로는 그를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초연과 달리 새롭게 추가된 인물인 아이는 그 공간 속에서 모든 순간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끼어들지 못한다.

 

아이가 관객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위치와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나, 그 생각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모습이 내가 리처드 3세일지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 모습과도 같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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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러한 생각을 알고 싶다는 듯, 아니면 그 생각을 숨기라는 의미처럼 4개의 아날로그 모니터가 무대에 존재한다. 밤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을 담는다. 그 영상은 아날로그 모니터로 송출된다. 나의 생각과 맞닿아있는 배우들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건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또한 ‘시선의 확장’이란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극을 보면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배우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은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영상에 담긴 리처드 3세와 무대 속 리처드 3세,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시선을 두는 나. 세 가지의 시선과 방향이 맞닿아 극에 대한 해석은 더 풍부해진다.

 

 

 

골목길 끝에서 발견하는 나의 욕망과 사유


 

‘리처드 3세를 찾아서’는 악인에 대한 미화나 공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지점이 악에 대한 오롯한 내 시선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아니 알고 있음에도 숨기고 있던 마음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준다.

 

해당 극은 리처드 3세라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활용해 사람들을 골목길로 이끌었다. 처음 골목길의 시작에서는 리처드 3세의 유해에 대한 궁금증뿐이었다면, 골목길의 끝에 도착했을 땐 그와 내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나의 욕망과 사유를 발견하게 된다.

 

골목길 속에서 리처드 3세를 찾아가는 과정은 스스로에 대한 마음을 살필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심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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