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키스마요 [도서]

글 입력 2021.12.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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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마요 평면표지.jpg

 

 

 

Prologue.


 

가만히 방에 있다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바닥과 벽이 뚫리고 나만 다른 세계로 이어져 지금 내가 있던 곳과 영영 이별할 것 같은 느낌. 내가 느끼던 몸의 감각은 옅어지고 중력에서 나를 지탱해주던 힘이 사라지는 느낌.

 

잠에 드는 과정이었는지, 어떤 생각에 심각히 집중해 몰입하던 중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의 이상한 기분은 나에게 남았는지 가끔씩 떠오른다. 주로 내가 우울감에 허덕일 때, 부정적인 감정에 빠질 것 같을 때에 그렇다.


처음에는 그 기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모른 척 지나갈까, 천천히 마주하며 같이 유영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의 감정은 통제선을 이미 넘어선 상태라 나를 휩쓸 시간을 주고 나면 알아서 소강하게 두는 편이 나았다. 지나간 자리에 남은 마음이 쓸려 아프기도 했고 시원하기도 했다.

 

내 안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타인이 준 상처에서 비롯한 혼란도 많았기에 나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중력의 힘이라 생각해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것에 끌려버린 내 마음이 중력에 약해져 잠시 더 낮은 곳에 닿았다 오는 것이라고.

 

*


"무한은 그렇게 시작된다. 수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별로부터"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김성대 시인의 첫 소설

 

200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고 제29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성대의 첫 번째 소설 《키스마요》가 출간되었다.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사막 식당》 등 그간 그가 선보인 시집에서는  낯선 시어로 김성대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설 《키스마요》는 그가 시를 통해 보여줬던 세계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동성의 사랑, 이별 후에 겪는 감정, 지구 멸망, 외계인의 출현……. 이 소재들이 짤막한 문장으로 소설에서 보게 될 때의 생경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생경함 속에서 툭툭 건드리는 감정들은 이내 우리를 알 수 없는 세계로 이끌어간다. 도저히 상상 불가능한 정점으로.

 

김성대 작가는 마치 아주 긴 시를 써내려가듯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리며 기존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미확인 장르라고 하면 될까. 쉼표 하나 없는 짤막한 문장, "눈으로 밤하늘을 뒤적였다", "어둠에 부딪힌 빛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등의 감각적인 시(詩)적 표현들은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소설을 처음 본 독자는 낯설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낯섦은 단지 시적인 표현 그 이상의 메타포가 되어 소설 전체를 이끌고, 독자의 감정의 촉수를 건드려 적잖은 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실종과 상실, 고립, 외계와의 접촉, 종말이라는 전개로 급박하게 진행되는 하나의 세계 《키스마요》는 낯설지만 끌리는 실험적인 소설이다.


 

 

장면으로 읽히는 사건


 

나에게는 굉장히 실험적인 소설이었다. 연인과의 이별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풀어내는 작품이어도 충분한 이해가 어려울 텐데, 그것을 세상의 종말과 사회의 혼란, 소행성의 충돌이라는 총체적인 혼돈의 사건들이 한번에 들어오는 느낌이 낯설었다.

 

나는 지구이고 혼돈 이전의 사회이자 인간이었다면, 너는 우주이며 질서 없는 사회였고 미확인 물체인지 외계인인지 알 수 없는 저멀리 떨어진 존재 같기도 했다. 분명 나와 너는 이별한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기억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가 두 개로 갈라지기도 하느라 무엇이 현재인지 파악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너와의 일들을 떠올렸다. 너와 다닌 곳들을. 잊기 위해 한 일들 같았다. 여기가 블랙홀 같았다. 여기 이 방이. 모두 블랙홀이 되겠지. 어떻게 잊어버렸는지 모르는. 우리가 아니었다. 잊고 있는 건. 우리를 벗어난 일이었다. 너와 나 사이를. 부를 손을 놓치고. 목소리조차 가질 수 없이. 블랙홀도 별의 잔해니까. 시간의 잔해니까. 돌이킬 수 없는 침묵이 되어 있는.


_본문 중에서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감정의 흐름에 집중해보니, 작가가 시인이기 때문인지 하나의 장면 장면이 영화처럼 읽혀 새로운 느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별의 징후


 

연인과의 잠자리, 대화가 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때는 외부의 모든 것이 소음처럼 미세했다가 점차 그의 생각과 감정이 나로부터 분리됨을 느낄 때 세상의 잡음도 동시에 들리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목소리와 영혼을 앗아가고 외계인이 지구의 언어를 흐려놓는다고 뉴스에서 매일 떠들어댔다. 너도 꼭 그 바이러스에 걸린 것처럼, 때론 외계인처럼 나에게서 둥둥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너의 눈에서 감정과 생각을 읽어내기 어려워지고 자꾸만 나와 달라지려는 것 같았던 연인을 바라보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다 그가 사라졌던 기억이 군데군데 남아 슬픔을 더 증폭시켰다. 밖에서는 세계가 종말할지도 모른다는데 나는 너를 계속 찾고 있는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너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나'는 너를 찾으며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감각의 부재


 

이별은 일상을 흔들었고 결국 나의 모든 감각을 가져가서 나에게 남은 감각은 거의 사라졌다.

 

이별은 무한히 계속 되었다. 땅도 없고 하늘도 없는 듯한 나날이 계속되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어렵지만, 소설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내가 느낄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정말로 세상이 종말에 가까워졌다면 더욱 현실적인 감각을 찾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어둠이 너의 부재를 덮어 갔다. 나는 너의 부재에 매몰됐다. 내가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떠도 내가 없었다. 없다는 말을 돌이킬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건 내게 없는 것뿐이었다. 눈이 떨렸다. 나의 부재가 눈을 떴다. 내게 사라진 건 나였다. 네가 아니라.

 

_본문 중에서

 

 

무한으로부터 다시 열리는 시작이 있다면, 그와의 재회로 모든 것을 리셋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에서 '나'는 '너'를 다시 만나지만 닿을 수 없다. 이미 서로의 우주가 달라져서 감각에 한계가 생겨버렸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다른 시작을 맞아야 한다.

 

*

 

책을 덮고 서도 작품 특유의 부유하는 느낌은 한동안 남아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존재가 사라진다면 이런 느낌일 수 있겠구나, 마음의 공허함은 우주를 상실하게 할 수도 있겠다란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바이러스처럼, 무질서처럼 나와 세상의 연결도 흐려버릴 수 있겠다, 그러면 정말 무한으로, 심연으로 빠져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이제 관계에 조금씩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깊은 곳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이 책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한은 심오해보이지만 끝이 없기에 다른 시작도 얼마든 가능할 수 있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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