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별, 무한의 경험 - 도서 '키스마요'

글 입력 2021.12.0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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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마요 평면표지.jpg

 

 

 

이별


 

살면서 이별을 몇 번이나 해보게 될까. 연인과의 결별만이 아니라 화해하지 못 하고 끝나버린 친구 사이, 일방적인 손절 등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다. 개중에는 무덤덤하게 끝낸 이별도 있었을거고, 너무나 가슴 아파했던 이별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감각이 무뎌지긴 하겠지만, 이별이란건 어쩐지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런 기분이 드는 이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텐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이별을 겪고 아파한다. 물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빈도를 줄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별을 통해 겪는 상실감을 여실히,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키스마요>라는 책이 있다.


내가 아는 마요라고는 '세계 3대마요 - 참치마요, 치킨마요,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와 같은 드립 밖에 없었다. '키스마요 뜻' 이라고 검색해보니 가장 먼저 <키스마요> 도서 판매처와 많은 리뷰들이 뜨고, 그 다음에서야 소말리아의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키스마요, 대체 무슨 뜻일까.


 
복원할 수 없었다. 네가 없어서. 혼자서는 불완전했다. 그래도 계속 뒷걸음쳐야 했다. 걸음을 멈추면 기억이 멈출 거 같았다. 기억을 놓칠 거 같았다. 그 기억을 다 걸어볼 수 없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남았다. 부서져나온 기억의 부스러기같이. 부서지고 흩어지다 마지막에 떠오를. 마지막까지 아플. - p.113
 


 

결핍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창궐, 외계인의 출현, 통제불능이 되어버린 사회. 바깥의 생활은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소행성의 접근은, 직접 체험해본 적이 없어 모를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접근해온다. 천체 충돌을 배경으로 한 많은 미디어에서도 길면 며칠, 짧으면 몇 시간만에 지구에 다다른다. 바이러스는 말 할 것도 없다. 현 사회의 코로나만 보아도 그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하다하다 외계인까지 지구에 등장.


그야말로 인류 멸망, 지구 멸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구촌 전등끄기 캠페인이 행했던 날, 나의 연인이었던 '너'는 곁에서 사라졌다. 이유라도 알 수 있었으면 속이 편하련만, '너'는 일언반구도 없이 나의 곁을 떠났다.


차라리 한바탕 싸우고 "헤어지자"하고 관계가 끝난거라면 이렇게까지 답답함이 목을 죄이지 않을 것이다. 종말의 순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데, 너가 없는 하루하루는 나에게만 24시간이 아닌 48시간이라도 주어진 것 마냥 너무나 느리게 흐른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나의 시간은 오로지 너라는 존재에 한정된다. 알몸 퍼레이드며 종교 행사며 세상은 미쳐돌아가고 있는데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듯이 그저 제 3자의 입장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너가 없는 나날을 보내며 나는 꾸준히 문자를 보낸다. "어디있어", "보면 연락해줘", "보고싶어", "아프지는 않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없다.


나와 너의 사이는 분명 연인이었지만, 어딘가 어긋나보이는 관계로 그려진다. 나는 꾸준히 애정을 갈구하고 표현을 받고 싶어했지만 너로부터 오는 대답은 항상 없거나, 부족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게 너의 표현 방식이었는데 나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그러했다.


결국 내가 너에게 보낸 문자들은 모두 너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그렇게 끝도 없이 너를 생각하게 된다.


 

너는 그림자와 한 몸이 되어 가고 있다. 모래 위를 움직이는. 모래바람에 그림자가 옅어지고 있다. 닳아 없어지는 거같이. - p.81

 



키스마요


 

로맨스 소설같지만 사실은 SF 판타지 소설인 <키스마요>는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성대'의 첫 번째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책은 긴 문장으로 이어지기보단 마치 시 처럼 짤막한 문장들로 전개된다. 문장 하나하나도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쉽게' 읽기는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소설 배경이 배경인지라 혼잡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글이 부드럽지는 않다. 너와의 과거를 회상하다가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또 거기와 연관된 너와의 있던 일을 생각하는, 현실과 회상의 반복이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를 기억해내는 하나의 장치 그 이상 이하도 되지 않는다.


MBTI의 F 성향을 장난스레 얘기할 때 상상의 나래를 끝도 없이 거창하게 펼친다고 하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보다 보면 의식의 흐름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내가 F라서 그런걸까, 평소 생각하는 것처럼 책을 읽어내릴 수 있었다. 거기에는 마치 시적 표현처럼 짧게 적혀 내려간 문장들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별, 무한의 경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디서든 통용되듯 쓰여지는 말이다. 모두 쿨하게 넘어가게끔 하지만, 이별이란 것이 과연 시원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일까.


"무한은 그렇게 시작된다. 수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별로부터"


아픔이란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때문일까.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사람은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이별을 경험한다. 끝도 없이. 우리는 이별이라는 과정을 계속해서, 무한으로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슬플 때 왠지 마음을 울리는 노래나 영화 등을 찾아 보듯이, 이별을 알아줄 상대가 필요하다면 <키스마요>를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어둠이 너의 부재를 덮어 갔다. 나는 너의 부재에 매몰됐다. 내가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떠도 내가 없었다. 없다는 말을 돌이킬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건 내게 없는 것뿐이었다. 눈이 떨렸다. 나의 부재가 눈을 떴다. 내게 사라진 건 나였다. 네가 아니라. - p.97
 


[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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