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와 이별한 후, 세상은 멸망했다. - 도서 '키스마요'

글 입력 2021.11.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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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전등 끄기 캠페인이 있던 날, 주인공 '나'에게 이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산책을 하다가 하나둘 불빛이 쏟아지더니 다시금 캄캄해진다. "나타나는 빛이 아니라 사라지는 빛이었을까." 빛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시간 종말이었다. '나'는 이대로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부재'라는 단어만이 그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마지막 요일을 기다리고 있을 때 외계인이 접촉해온다. 이제 외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구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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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이야기


 

시인이 쓴 소설.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이 책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건 외계인도, 연애 후의 이별도 아닌 이 소설의 작가가 시인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시를 딱히 즐겨 읽진 않는다. 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일수록 기묘한 환상도 함께 자라나는 법. 그래서 내게 시인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시인이 쓴 소설이라니. 신선했다. 궁금했다. 마침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은 지도 몇 달이 흐른 참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련의 특징들이 있다. 짧게 함축된 문장들, 운율의 반복, 리듬, 알쏭달쏭 한 의미들. 시인이 쓴 <키스마요>에서도 이러한 특징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각각의 문장은 한 줄을 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서술어들이 반복되었다. 이것들은 한데 모여 리듬을 만들었고, 가락을 만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소설을 읽는 속도가 유독 빨랐다. 이야기가 아닌 노랫말을 읽는 것 같았다. 허나 그렇다고 내용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서술어들은 종종 나를 문장의 바다에 던져 놓는다. 그곳에선 쉽게 길을 잃었다. 그렇기에 빨리 읽는 만큼, 도로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읽는 횟수도 빈번해졌다. ‘너’를 이야기하는 건지, ‘외계’를 이야기하는 건지. ‘멸망’을 이야기하는 건지, 아니면 ‘이별’을 이야기하는 건지(물론 결국엔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던 거였지만 말이다).

 

인상적인 문장도 더러 있다. 첫 단락만 읽으면 외계인이 등장하는 하고많은 SF 소설인 줄 알겠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이 말랑한 스토리는 시인의 감수성을 만나 아름다운 말들을 만들어 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게 다가오는 너를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앞에 앉은 너를 보면서도……. 너는 나를 기억했다. 내게 말을 해 와서 꼼짝없이 알은척을 해야 했다. 특별한 일이었다. 나를 만난 사람 중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을 가로막는 뭔가가 내게 있는 건지. 망각을 일으키는 뭔가가……. 너는 나를 알아보았다. 알아보겠다는 눈이었다. 알고 있다는 목소리였다. 너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의 눈을 보았다. 훔쳐보게 되는 줄 모르고. 너의 눈앞에서 너를 훔쳐보았다.” - P.114~115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쩌면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니었을까. 그저 지나칠 수 있었던, 그저 잊어도 무방했을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너’를 특별히 알아보는 것.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지닌 참된 위력 아니었을까.

 

한편 이런 문장들도 있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았다.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았다.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도 문자도. 떨어져서 들어야 했다. 물러나서 봐야 했다. 액정 안에서 못 나올 거 같았다. 너의 문자에 갇힐 것 같았다. 너의 목소리에……. 멈춰야 했다. 더 다가가면 안 될 거 같았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거 같았다. 너에게 거리를 둬야 했다. 멀어지지 않을 만큼. 서로를 위한 거리라고 생각했다.” - P.126

 

 

“‘여기 있을게. 너와 나 사이에. 지금은 닿지 않지만. 눈 감지 마. 안 보인다고. 귀 막지 마. 안 들린다고.’……. 너에게 문자가 왔다. 액정 밖으로 빛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비칠 거 같았다……. 나는 들어가기로 했다. 너와 나의 미로 속으로.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히며. 가까이. 더 가까이. 너에게 닿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다시 묻지 않기로 했다. 무슨 사이가 될지. 모든 사이를 열어 놓기로 마음속으로 고백했다. 갈수록 깊어지는 미로 같을. 더 알 수 있지만 다 알 수 없을.” - P.127~128

 

 

한 줄씩 읽어내려 갈 때마다 책장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끌어안고 놔주고 싶지 않은 말들이 넘쳐났다. 읽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쓰라린 기분.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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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지구와 외계


 

이별과 멸망은 어느 날 문득, 느닷없이 찾아온다. 물론 운이 좋다면 미리 눈치를 챌 수도 있다(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4주년을 맞아 너를 위한 선물을 사고, 달콤한 말들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쓴 대가가 그동안 고마웠다는 이별의 통보일 수도 있었다. 사실 이것도 감지덕지다. 어떤 이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남길 기회도 없이.

 

그런 의미에서 이별과 멸망이 두려운 이유는 단순히 상실감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언제나 마음 한켠에 불안을 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할 수 없다는 것.

 

소설 <키스마요>에서 '나'와 '너'의 이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에 주인공은 알고 있냐고, 보고 있냐고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지만 '너'는 여전히 침묵한다. 아니, 어쩌면 침묵이야말로 '너'의 답장이었는지도 모르지. 연애할 적에도 '너'는 자주 그랬으니까. 다만 '나'가 가진 블랙홀의 깊이로는 그런 '너'의 침묵을 헤아리지 못할 뿐. 마침내 집에 돌아와서 '너'의 부재가 갑작스러운 실종이 아닌 오랫동안 준비한 이별임을 알았을 때 '나'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답을 구하고자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바닥 깊이 가라앉아 꼼지락거린다. 너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별을 납득하기 위해서.

 

한편 지구의 멸망도 갑작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미지의 존재가 느닷없이 접촉해오더니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행성도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멸망 앞에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에 외계인은 수수께끼의 메시지만 남기고 침묵한다. 이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멸망에 대처한다. 답장을 보내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종교에게서 믿음을 구하기도, 거짓 정보에 기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너'와 외계인은, 이별과 멸망은 사실상 동일하다. 갑작스레 다가온 이별과 멸망 앞에서, 끝내 침묵하는 ‘너’와 외계인을 이해하기 위해 남겨진 '나'와 사람들은 몸부림친다. 그것이 숙명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물론 경우에 따라 이해하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경우엔 실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도가 무의미하지 않다.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 이해의 과정은 필수다. 소설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불안과  죽음이 겹겹이 쌓인 뒤에야 외계인의 메시지가 다시 도착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화를 시작한다. 인간과 지구의 미래가 달려있다. 이제 만나겠다." 말하자면 이 모든 건 결국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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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소수자


 

 

“양아치라고 알려졌다…….. 그들은 몸을 흔들었다. 도금된 거 같은 팔을 흔들고 깁스를 휘둘렀다. 없는 신체 부위를, 못 쓰는 부위를. 그걸 그렇게 쓰고 있었다. 있는 신체까지 망가뜨리는 것 같았다. 몸과 영혼이 따로 노는 거같이.” - P.73~74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웃이 없었다. 이웃이 없어도 신경을 써야 했다. 서로를 피했다. 이곳에 산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거 같았다. 서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거 같았다.” - P.89

 

 

“죽기 위해 기다리는 동물들의 줄이 길었다. 안락사 대기 번호를 받은 동물들이었다. 날짜와 시간에 맞춰 기다려야 했다. 날짜와 시간이 비기를. 동물병원은 사체 처리장이 되어 갔다.” - P.94

 

 

“생매장이었다. 돼지들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 있었다. 돼지들이 발버둥 쳤다.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구덩이가 채워지고 있었다. 구덩이에 떨어진 돼지들이 흐느끼고 있었다. 흐느낌이 보였다. 목이 울리고 몸이 울렸다.” - P.104

 

 

‘나’와 ‘너’, 그리고 ‘외계’와 ‘지구’. 소설 <키스마요>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이따금씩 기묘한 이웃들의 이야기도 이따금씩 껴 있다. 이웃들의 종류도 다양하다. 알몸의 시위대(아마 장애인이 아닐까 싶다), 빈집에 숨어사는 이들, 고양이, 개, 가축 등등.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사회의 소수자들, 혹은 사회의 약자들이라는 것.

 

세상이 무너지면 약자들이 가장 먼저 상처 입는다. 전쟁, 기근, 역병 등등. 반 만년 넘게 이어져 오는 역사 속에서 그 사실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그냥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많이 죽었거나, 조금 죽었거나. 더 고통스럽거나, 덜 고통스럽거나.

 

이는 <키스마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이 퍼지고, 소행성이 다가오는 가운데 혼란에 휩싸인 세계는 약자들을 학대하고 유기한다. 누군가에 의해 조직된 알몸의 시위대는 결국 사회의 안정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혼란의 책임을 진다. 개와 고양이는 안락사를 기다리고, 가축들은 생매장을 당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화로운 세상이었을 때는 그들의 삶이 편안했을까? 글쎄, 나는 모르겠다. 다만 그 질문의 대답을 알 수 있는 구절을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된 알몸의 시위대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양아치인지 이제 알겠다.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쁘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우리는 일이 필요했다.”

 

소설 속 ‘나’가 사랑하는 ‘너’의 삶 역시 편안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탄생을 환영받지 못한 아이, 그래서 뱃속에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던 아이, 사랑받지 못한 아이, 대신 공포와 부담, 비난과 폭력을 받은 아이, 버려진 아이. 기어코 끝내 다시 돌아왔으나 이번에도 환영받지 못한 아이. 그리고 이 모든 건 ‘나’가 너를 만나기 전에, 외계인이 지구와 접촉하기 전에, 전염병이 퍼지기 전에, 소행성이 다가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 세상이 평화로웠을 때에도 시위대는 망가진 신체로 인해 자주 곤란했을 것이다. 빈민들은 마치 도둑처럼 가난한 동네를 전전하며 쥐 죽은 듯 살아왔다. 개와 고양이는 자신들의 생존을 주인에게 위탁해야 했고, 때로는 유기와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돼지들 역시 전염병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인간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다면 연인의 이야기에, 혹은 외계와 지구 사이의 이야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왜 끼어있던 걸까? 그 답 역시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소행성 충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후 절망에 빠진 세계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등장했다. 죽는 방법도 다양했다. 혼자 죽거나, 같이 죽거나. 믿음에 취해 죽거나, 공포에 질려 죽거나. 나중엔 서로가 서로를 대신 죽여주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죽음은 결국 오직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함께 죽을 순 있어도 나의 죽음을 다른 이와 나눌 수는 없다. 그게 바로 죽음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가온 죽음 앞에서, 멸망 앞에서 혼자가 된다. 소수자가 된다. 비참해지고, 초라해지며 외로워진다(실제로 외계인들은 메시지를 통해 지구를 두고 아직 접촉이 허락되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었다. 말하자면 지구는 우주에게 있어 소외된 영역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지구에 멸망이라는 죽음이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혹은 소수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각자가 지닌 불안과 상실, 고립과 위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블랙홀의 크기로 누군가를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의 가냘픔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희망과 기적의 의지는 그렇게 피어난다.

 

 

“그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 때문에 못 죽게 되어 미안하다고. 우리도 미안했다. 같이 못 죽어서. 죽음만을 반겼던 건 아닌지. 서로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아직 못 죽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숨을 고르고 다시 실행하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빠짐없이 다 함께. 서로를 놓치지 않도록. 누구 하나 소외감 속에 두지 않도록.”

 

 

“우리는 믿음이 있었다. 실패했지만 다시 끝낼 수 있다는.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살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함께 죽을 때까지 살아 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걸 다해. 우리를 위한 일이 남았다면. 시간이 남았다면.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닌”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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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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