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주의 문학 이야기 - 시트론 호러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1.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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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구소현 작가의 「시트론 호러」이다.


구소현 작가에 대해 먼저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구소현 작가는 202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등단작 「요술 궁전」에서부터 시작하여 「5월에 공부하는 아이들」, 「험악한 세상」을 연이어 발표하며 문단에 스스로를 열심히 알리고 있는 신인 소설가이다. 구소현의 소설은 「요술 궁전」만을 읽어보았는데, 소설 전반에 나타나는 아기자기한 분위기, 일상에 대한 섬세하고 귀여운 시선 같은 것들이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특유의 방식, 인물들로 하여금 서로 관계를 맺게 하는 방식에서 구소현 작가의 재치가 드러난다.

 

「시트론 호러」는 《심미안》 2021년 여름호를 통해서 발표되었고, 올 가을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 가을 2021』에서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시트론 호러」라는 작품은 그 제목부터가 문제적이다. 호러는 무서운 것인데, 시트론은 새콤달콤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호러의 모습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마냥 씁쓸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속의 맑고 상쾌한 지점을 담겠다는 작가의 활기찬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시트론 호러」의 주인공 공선은 유령이다. 유령이지만 무해하고 섬세하고 마음이 따뜻하다. 현실의 호러를 마주하면서도 그 곳에서 상큼한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짤막한 분량의 소설 한 편을 통해 구소현 작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함께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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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은 올해로 유령이 된 지 10년이 되었다. 유령이긴 하지만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두려워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사람이나 사물과 접촉할 수 없는 상태로 유유히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할 뿐이다. 그런 공선은 독서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살아생전 독서에 관심이 없었지만, 타인과 교류할 수 없는 기나긴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책 읽는 사람들 곁에 머물며 남들의 책을 훔쳐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효주는 공선이 선택한 독서 메이트이다. 효주는 학교 도서관에서 끈기 있게 한 권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학생이고, 그런 효주의 독서 습관 덕분에 공선도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공선은 이런 효주를 따라다니게 되고 효주의 독서 모임에도 참여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효주는 사정이 생겨 더 이상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그녀가 떠나면서 메일로 보내준 마지막 합평작을 남은 학생들이 함께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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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론 호러」에 드러나는 인물들의 모습은 일견 그 의미와 감정이 단순해 보이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각 장면 하나하나가 모호하고 오묘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작가가 각 장면에서 등장시키는 하나하나의 소재들은 그 색채가 선명하고 기운을 북돋워준다. 소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레몬 아이싱’, ‘시트론 커스터드크림’은 읽기만 해도 혀가 즐거워지는 느낌이 들게 하고, ‘인공 호수’와 ‘잔디밭’,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은 코로나 시대 이전의 활기찬 캠퍼스를 상기시킨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지렁이 젤리’라든가 ‘파인애플 과즙’과 같은 표현들도 단순한 군것질의 나열이라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특유의 맛과 촉감을 최대한 연상시키려는 작가의 세세한 단어 선택들에 가깝다. 이러한 소재들의 나열은 귀엽고 키치한 소품들로 장식된 디저트 카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들이다. 소설에서 전개되는 굵직하고 무거운 사건들의 주변부에 이러한 소재들이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독특한 활기와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충격적인 지점은, 이런 아기자기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학계의 연구비 비리와 학과의 예산 운영 문제, 경제적 계층 차이 같은 이슈들은 소설 속에서 귀엽고 깜찍한 소재들과 평행하게 등장한다. 이로 인해 등장인물의 생활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이 탓에 독서 모임은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된다. 시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간극, 좌절과 무기력의 기운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시트론 호러」는 리얼리즘 소설의 성격을 다소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소설은 좌절의 세계로 가라앉지 않고, 희망을 향해 마지막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긍정성이나 낙천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데에는 공선이라는 인물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공선은 유령이고, 세상을 보고 들으며 관찰만 할 수 있을 뿐, 구체적인 대상을 만지거나 맛볼 수 없으며 타인에게 말을 건넬 수도 없다. 누군가를 안아주거나 위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역할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관찰자적이다.

 

그러나 그탓에 누구보다도 세상의 모든 감각들을 직접 느껴보기를 열망하며, 모든 시각적·청각적 정보에 가장 세심하게 반응한다. 공선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아이스크림의 부드럽고 기분 좋은 맛, 비눗방울을 터트릴 때의 촉감 같은 것들이 조명되고, 더 나아가 효주라는 소외된 인물의 감정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 유령이라는 공선의 특이한 지위를 통해서 소설이 더욱 감각적이고 희망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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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론 호러」가 담고 있는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은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소재들은 만화적이고 감각적이다. 우리 사회에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단면들이 있고, 소설은 소설만의 방식으로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구소현 작가는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은, 작고 소소한 감각들을 소설 속에 구현함으로써 그 안타까운 단면들에 섬세하게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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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현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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