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건강한 사랑과 긍정은 결코 흔하지 않다 - 연극 '슈미' [공연]

글 입력 2021.11.2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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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슈미'는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90년에 발간한 희곡 '헤다 가블러'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 속 인물들은 서울의 다섯 동창 '슈미', '경만', '애경', '도규', '유완'으로 등장한다. 연극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극이 시작되면 슈미와 경만의 신혼집 거실이 나온다. 이곳은 극이 끝날 때까지 모든 대화가 일어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긴 대리석 테이블과 꽃들,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걸린 조명들이 보인다.


슈미와 경만의 대화를 들었을 때, 둘의 관계에서 슈미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슈미는 직설적이고, 경만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에게 관심도 없다. 슈미에게 경만은, 자신에게 헌신적이고 말 잘 듣는 강아지 정도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왜 이 결혼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는데, 슈미는 비단 경만에게만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도 전혀 살갑지 않게 대한다. 상처가 될 만한 말들도 서슴지 않는다. 슈미는 오로지 그녀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상황에서만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각자의 욕망과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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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슈미.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단지 그녀만을 이기적인 악인으로 보기에는 이 연극 속의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과 광기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슈미의 의견에 따라 형편에 맞지 않게 대출을 받아 좋은 집을 사고 6개월간 신혼 여행을 다녀온 경만을 보자. 그는 그저 착하고 사랑에 너무나 헌신적인 사람처럼 보여서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역시 슈미의 속마음은 전혀 궁금해하지 않고, 모두가 주목하는 우월한 여자와 결혼해서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내보이려는 허영심으로 가득 차있다. 극 초반에서도 아이를 절대 갖고 싶지 않다는 슈미의 의견을 묵살하고 장난처럼 대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애경은 런던에서 돈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 유완을 일부러 입주가정교사로 들이고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유완이 사라지자 그를 찾기 위해 런던에서 서울까지 왔다. 남편에게는 친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유완은 애경의 도움으로 책을 함께 완성했으나 애경이 사랑을 갈구하자 매정하게 내친다. 그리고 영감의 시작점을 주었던 슈미를 찾아와 그녀의 사랑과 인정을 얻고자 한다. 또한, 경만이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도규는 자꾸만 그것을 언급하며 슈미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마지막에는 슈미에게 유완의 죽음과 관련된 협박을 하며 그녀를 손에 쥐려 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여긴 슈미는 자살하게 된다.


연극 속에서 과장되기는 했지만, 이들은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욕망들을 가지고 있다. 허영, 우월감, 인정 욕구, 풍족한 삶에 대한 욕구 등. 그리고 유완이 원고를 잃어버린 사건이 일어난 후 각자의 욕망이 뒤엉켜 모든 것을 분열시키고 파괴한다. 유완의 죽음은 언뜻 보면 슈미라는 비정상적 인물이 홀로 만들어낸 사건 같지만, 그 시작에는 원고를 주웠음에도 유완에게 바로 돌려주지 않고 슈미에게 넘긴 경만이 있었다. 유완과 정교수 자리를 다투어야 하는 경만은 위대한 그 원고를 유완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 인물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타인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긍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섯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서로를 압박하거나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기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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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는 자신이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말한다. "나 자체가 유토피아야."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슈미는 자기애와 나르시시즘에 깊이 빠진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슈미가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자신감의 토대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이었기 때문이다. 슈미는 절대적인 자유와 완전한 독립성을 외치면서도 결국은 남들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의지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장 제멋대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슈미 또한 어딘가에 얽매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과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간다는 개념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건강한 사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나, 마음처럼 수월하게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연극 '슈미'는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과 인물들을 현대적인 배경에서 재창작하여 현대인의 정신에 대해 탐구해볼 수 있는 의문점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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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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