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도 기다렸다.
2020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받았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가 1년 넘게 개봉이 연기되어 드디어 11월 18일, 일반 관객과 만났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세계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 소식에, 필자는 기대를 품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만나게 된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이 웨스 앤더슨 했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가 강박적으로 추구해온 수직, 수평의 카메라 워크부터,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인물들 그리고 동화 같은 분위기의 연출까지. 정말 그의 인장이 영화 곳곳에 찍혀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 속 '프렌치 디스패치' 직원들의 모습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모시스'와 '시몬'
그림을 보려는 관람객들을 교도소로 안내하는 '줄리안'
첫 에피소드에서 웨스 앤더슨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담대한 상상을 내보인다. 살인죄로 구속된 예술가 그리고 감방에서야 만난 그의 뮤즈.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은 설정이지만 죄수와 간수라는 그 기묘한 관계에서 오는 특이점을 웨스 앤더슨은 절묘하게 포착한다.
더불어 웨스 앤더슨은 예술상 줄리안의 탐욕을 보여주며, 예술 그 자체보다는 마케팅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가치가 오르는 현대미술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풍자를 설핏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경이로운 작품을 마주했을 때, 그러니까 감동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탐욕을 부리던 줄리안도 콘크리트 걸작을 보고 나선 황홀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줄리안은 작중 아래의 대사를 우리에게 던진다.
“녀석(모시스)의 실패욕이 우리가 그를 성공하게 해주려는 욕구보다 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제피렐리'와 '줄리엣'
두 번째 이야기는 ‘Politics and Poetry’ 섹션의 저널리스트 ‘루신다 크레멘츠(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온갖 권위에 저항하려는 학생 운동을 이끄는 제피렐리는 운동의 방향을 결정할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루신다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함께 운동을 이끄는 여성 리더 줄리엣(리나 쿠드리)은 루신다의 개입이 못마땅해 반기를 들어보지만, 루신다의 “너네는 가서 사랑이나 하라”는 말에 숨겨왔던 마음을 고백하며 제피렐리와 사랑을 나눈다.
이후 제피렐리는 완성된 선언문을 낭독하던 중 통신 장애를 고치기 위해 올라간 송신탑이 무너져 사망하고 만다. 그렇게 제피렐리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세상에 기억된다.
혁명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줄리엣', '루신다' 그리고 '제피렐리'
68혁명을 배경으로 삼아 극을 전개한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낭만이 가득하다. 성차별로 얼룩진 기존의 억압을 해체하고 권위를 무너뜨리자는 젊음과 혁명. 무언가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을 가진 젊은이들에게선 건강함과 생의 활력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성에 대한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아직 성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이들의 미숙함 역시, 젊음의 일부일 거다. 결국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제피렐리가 혁명의 아이콘에서, 티셔츠에 등장하는 소비자본주의의 아이콘(체 게바라가 떠오른다)으로 변질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모습이 치기 어리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어떠하리.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시대와 불화할 수 있을뿐더러 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들이 우리의 어렸을 적보다 훨씬 훌륭하다.”
고독한 저널리스트 루신다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음을 묵묵히 응원한다.
'Tastes and Smells' 섹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로벅'과 '편집장'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에 초대받은 '로벅'
![[꾸미기][크기변환][포맷변환]사진 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11/20211120221840_ctxhxwmf.jpg)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네스카피에 경위
네스카피에 경위: “I'm not brave I just didn't feel like being a disappointment to everyone today. I'm a foreigner, you see?”.
“난 용감하진 않지만, 오늘 모두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난 이방인이니까요”.
로벅 라이트: “Maybe with good luck we’ll find what eluded us in the places we once called home”.
“운이 좋다면 우리가 한때 집이라고 불렀던 곳에서 우리가 놓쳤던 것을 찾을 수 있겠죠”.
한국계 배우 스티브 박이 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작중 네스카피에 경위는 이방인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아시아인이 받았을 거리감을 생각해보자. 그는 위의 대사처럼 언제나 자신이 쓸모 있고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순전한 호의에 의해 살아가며 혹여나 타인에게 실망감을 줄까 염려하는 삶이란 얼마나 불안정한가. 해당 사건을 취재한 로벅 라이트 또한 해외에서 온 흑인 기자라는 신분답게 그를 이해하며 상기 대사를 조심스레 내뱉는다.
우리가 떠나온 집에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온 자연스러움과 온기가, 이곳엔 없다는 사실. 그 시절, 그곳에 두고 온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우리는 당연히 여겨왔던 ‘삶의 미묘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부터 천착해온 이민자/소수자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은근히 드러내며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