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웨스 앤더슨이 웨스 앤더슨 했는데 안 볼 이유라도?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전격 리뷰
글 입력 2021.11.2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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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 기다렸다.

 

2020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받았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가 1년 넘게 개봉이 연기되어 드디어 11월 18일, 일반 관객과 만났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세계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 소식에, 필자는 기대를 품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만나게 된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이 웨스 앤더슨 했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가 강박적으로 추구해온 수직, 수평의 카메라 워크부터,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인물들 그리고 동화 같은 분위기의 연출까지. 정말 그의 인장이 영화 곳곳에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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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 속 '프렌치 디스패치' 직원들의 모습

 
 
어려서부터 ‘더 뉴요커’ 잡지를 즐겨 읽었다는 웨스 앤더슨이 ‘더 뉴요커’와 그 시절 기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이번 작품은 20세기 초반 가상의 프랑스 도시 ‘블라제’에 상주하는 미국 잡지사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처음 발간했던 편집장(빌 머리)의 죽음으로 인해 갑작스레 맞이한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 자체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크게 3개의 이야기(Arts and Artists, Politics and Poetry, Tastes and Smells)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 속, 반가운 얼굴의 배우들이 뽐내는 다채로운 연기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그럼 웨스 앤더슨이 안내하는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의 첫 장을 조심스럽게 넘겨보자.
 
 
*
내용 중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가장 발칙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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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모시스'와 '시몬'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는 ‘Arts and Artists’ 섹션의 ‘J. K. L. 베렌슨(틸다 스윈튼)’의 강연을 빌려 전개된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모시스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는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그림을 그린다. 여행하던 도중, 살인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된 모시스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삶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모시스는 교도관 ‘시몬(레아 세두)’을 운명처럼 만나고, 다시 예술의 혼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시몬 역시 모시스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그의 뮤즈가 되길 자청하며 모시스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편, ‘줄리안 카다지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함께 교도소에 수감된 미술상으로, 교도소 안에서 모시스의 작품을 사들여, 출소한 후 중개 활동을 하며 모시스를 현대미술계의 가장 핫한 작가로 만든다. 성공에 눈이 먼 줄리안은 탐욕을 부리며, 모시스에게 새로운 작품을 빨리 만들 것을 재촉한다.
 
이에 모시스는 반항의 의미로 교도소의 거대한 벽에 프레스코 기법(회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물에 물감 가루를 개어서 그 벽에 그리는데, 물감이 마르면서 회반죽과 함께 굳어 영원히 벽 일부가 된다)을 사용해 ‘콘크리트 걸작’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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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려는 관람객들을 교도소로 안내하는 '줄리안' 

 

첫 에피소드에서 웨스 앤더슨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담대한 상상을 내보인다. 살인죄로 구속된 예술가 그리고 감방에서야 만난 그의 뮤즈.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은 설정이지만 죄수와 간수라는 그 기묘한 관계에서 오는 특이점을 웨스 앤더슨은 절묘하게 포착한다.

 

더불어 웨스 앤더슨은 예술상 줄리안의 탐욕을 보여주며, 예술 그 자체보다는 마케팅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가치가 오르는 현대미술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풍자를 설핏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경이로운 작품을 마주했을 때, 그러니까 감동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탐욕을 부리던 줄리안도 콘크리트 걸작을 보고 나선 황홀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줄리안은 작중 아래의 대사를 우리에게 던진다.

 

 

“녀석(모시스)의 실패욕이 우리가 그를 성공하게 해주려는 욕구보다 커”.

 

 
성공이 보장된 뻔한 작품은 하지 않으려는 태도. 실패를 무릅쓰고라도 도전하는 반항심과 욕구가 새로운 시도로 이어져, 진정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로 남는다.
 
 
 
젊음, 혁명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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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제피렐리'와 '줄리엣'


 

두 번째 이야기는 ‘Politics and Poetry’ 섹션의 저널리스트 ‘루신다 크레멘츠(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온갖 권위에 저항하려는 학생 운동을 이끄는 제피렐리는 운동의 방향을 결정할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루신다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함께 운동을 이끄는 여성 리더 줄리엣(리나 쿠드리)은 루신다의 개입이 못마땅해 반기를 들어보지만, 루신다의 “너네는 가서 사랑이나 하라”는 말에 숨겨왔던 마음을 고백하며 제피렐리와 사랑을 나눈다.

 

이후 제피렐리는 완성된 선언문을 낭독하던 중 통신 장애를 고치기 위해 올라간 송신탑이 무너져 사망하고 만다. 그렇게 제피렐리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세상에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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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줄리엣', '루신다' 그리고 '제피렐리'


 

68혁명을 배경으로 삼아 극을 전개한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낭만이 가득하다. 성차별로 얼룩진 기존의 억압을 해체하고 권위를 무너뜨리자는 젊음과 혁명. 무언가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을 가진 젊은이들에게선 건강함과 생의 활력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성에 대한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아직 성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이들의 미숙함 역시, 젊음의 일부일 거다. 결국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제피렐리가 혁명의 아이콘에서, 티셔츠에 등장하는 소비자본주의의 아이콘(체 게바라가 떠오른다)으로 변질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모습이 치기 어리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어떠하리.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시대와 불화할 수 있을뿐더러 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들이 우리의 어렸을 적보다 훨씬 훌륭하다.”

 

 

고독한 저널리스트 루신다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음을 묵묵히 응원한다.

 
 
 
한 편의 소동 그리고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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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s and Smells' 섹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로벅'과 '편집장'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는 ‘Tastes and Smells’의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가 토크쇼에 나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글로 쓴 것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는 음식 저널리스트 로벅은 어느 날, 경찰서장(마티외 아말리크)의 전용 식당에 초대받게 된다. 식당의 유명한 쉐프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의 레시피를 취재하려던 로벅은 서장 아들이 납치된 사건에 휘말려 수사에 동참하게 된다. 철저한 조사로 납치범의 은신처를 파악하자, 서장은 네스카피에 경위의 음식 솜씨를 이용해 아들을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짠다.
 
서장은 아들에게 요리를 먹게 해주고 싶다는 구실로, 네스카피에 경위가 범인들의 아지트에 들어가도 되겠냐며 휴전을 제안한다. 납치범들도 감히 네스카피에 경위의 명성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가 만든 요리를 맛보게 된다. 서장 아들이 무를 먹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맹독 소금으로 요리한 그의 기지로 범인은 모두 쓰러지고 아들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무를 먹지 않는 운전사(에드워드 노튼)와의 마지막 일전이 있었지만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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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에 초대받은 '로벅'


 
마지막 에피소드는 하드보일드한 누아르, 음식과 가족애의 온기를 함께 맛볼 수 있다. 네스카피에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범인들의 은신처를 찾는 수사 작업을, 한 화면에 병치해 보여주며 웨스 앤더슨은 전혀 다른 것들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충돌의 미학을 보여준다.
 
정키/쇼걸1(시얼샤 로넌)이 등장하는 자장가 씬도 마찬가지다. 정키/쇼걸1(시얼샤 로넌)이 작은 구멍 사이로 눈을 내밀 때, 흑백의 화면 중 눈동자만 파랗게 컬러로 연출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운전사(에드워드 노튼)와 경찰의 추격 장면은 일반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운신의 폭을 넓히며,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나 <개들의 섬>에서 보여준 웨스 앤더슨의 만화/삽화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이렇듯 그의 영화를 보는 일은 우리에게 언제나 새로운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며, 한 편의 미디어아트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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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네스카피에 경위


 
네스카피에 경위: “I'm not brave I just didn't feel like being a disappointment to everyone today. I'm a foreigner, you see?”.

“난 용감하진 않지만, 오늘 모두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난 이방인이니까요”.

로벅 라이트: “Maybe with good luck we’ll find what eluded us in the places we once called home”.

“운이 좋다면 우리가 한때 집이라고 불렀던 곳에서 우리가 놓쳤던 것을 찾을 수 있겠죠”.
 

 

한국계 배우 스티브 박이 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작중 네스카피에 경위는 이방인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아시아인이 받았을 거리감을 생각해보자. 그는 위의 대사처럼 언제나 자신이 쓸모 있고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순전한 호의에 의해 살아가며 혹여나 타인에게 실망감을 줄까 염려하는 삶이란 얼마나 불안정한가. 해당 사건을 취재한 로벅 라이트 또한 해외에서 온 흑인 기자라는 신분답게 그를 이해하며 상기 대사를 조심스레 내뱉는다.

 

우리가 떠나온 집에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온 자연스러움과 온기가, 이곳엔 없다는 사실. 그 시절, 그곳에 두고 온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우리는 당연히 여겨왔던 ‘삶의 미묘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부터 천착해온 이민자/소수자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은근히 드러내며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메인 예고편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LOCAL COLOR’ 담당 허브세인트 새저랙(오웬 윌슨)의 말처럼 <프렌치 디스패치>는 비밀스러운 매력을 지닌 영화다. 잡지 형식의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 화면 비율의 능수능란한 조율,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마다 편집장과 기자 간 오가는 유쾌한 대화는 영화의 풍미를 한층 돋운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 한 걸음 멀리 나아간 웨스 앤더슨.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일단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등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이 등장한다는 <아스트로이드 시티>가 그의 차기작으로 예정되어 있다. 웨스 앤더슨이 차기작에서 펼쳐 보일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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