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슈미 - 총, 악, 패

패배자의 목소리
글 입력 2021.11.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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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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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식탁과 무대 공간


 

무대 바닥을 제외하고 무대를 둘러싼 모든 벽들은 검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무대 뒤쪽 벽에는 검은색 암막 커튼이 달려있고, 좌측 벽에 문이 하나, 우측 벽에 문이 하나 있다. 좌우에 있는 문은 등장인물들의 등퇴장로다. 무대 중앙,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기다란 정육면체 대리석 탁자가 있다. 그 아래에는 바퀴가 달려있어 때때로 극 상황에 맞춰 가로에서 사선 방향으로 바뀌어 놓이기도 한다. 탁자 왼편에는 경만의 책과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고, 오른 편엔 슈미와 경만의 결혼 축하 꽃들이 화병에 담겨 있다.


그 외에 샹들리에 모양의 조명들이 무대 천장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진 채 은은한 빛을 비추고 있다. 두 개의 조명 모두 무대 왼쪽에만 존재하고, 그마저도 길이가 맞지 않아 불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불필요하게 긴 탁자와 어두운 배경이 만들어내는 기묘함에 힘을 더한다. 바로 이러한 점과 넓은 무대에 기다란 탁자만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마치 거대한 성에 홀로 남겨진 야수의 아름다운 식탁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극은 이 탁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슈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녀가 탁자에 앉아 경만에게 “물”을 달라고 말하는 장면과 책과 꽃병들을 모두 치워 달라고 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은 슈미와 경만의 관계에서 누구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다.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은 경만의 대사(언제 거실로 나왔어?)를 통해 유추할 수 있으며, 그들의 신혼집에 대한 도규의 대사(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 비싸 보이는 탁자)와 슈미의 대사(정말 높지? / 내가 원하던 거야 / 나랑 어울려)를 통해 무대 공간 자체가 자본주의의 노골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친구에게 돈을 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려는 주인공 슈미의 사고는, 이미 그녀가 자본주의 안에 잠식되었으며 미시 권력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면모를 보여준다. 곧 그녀가 이 성의 주인이자 야수인 것이다.




방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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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문, 영국에서 돌아온 애경이 슈미와 경만에게 유완에 대한 소식을 전한다. 그가 책을 발간해 명성을 얻었으며, 자신이 그 일을 도왔고, 그가 현재 서울에 있음을 얘기해 준다. 또한 자신과 유완이 사랑하고 있으며, 자기로 인해 유완이 구원받았다 말한다. 물론 그녀에겐 자식과 남편이 있다. 남편에 대해 그녀가 하는 말은 “난 그 남자 돈을 사랑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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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 도규. 검사이자 슈미와 경만이 신혼집을 구매하는 데 돈을 빌려준 인물이다. 그가 경만에게 대출을 해준 이유는 그녀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지배하기 위함이다. 그는 슈미를 욕망하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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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방문, 유완. ‘자유를 억압하는 인간 정신-‘이라는 책을 쓴 유완은 새롭게 쓴 책-다시 대박을 터트릴-을 슈미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울로 찾아온다. 애경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그이지만, 슈미의 부추김에 결국 술에 손을 대게 된다. 그로 인해 원고를 잃어버린 그는 절망감에 빠지고, 슈미는 그에게 총을 건네며 자살을 권유한다. 유완은 자신이 불러주는 원고를 받아 적었던 애경의 공책을 찾기 위해 그녀가 머무르는 모텔에 찾아간다. 애경의 방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서 모텔 주인과 싸움이 나고 그 과정에서 오발된 총에 허벅지를 맞아 결국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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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인 성격을 가진 그녀, 슈미는 자유롭고 파괴적이며, 절대적인 자유를 지향한다. 자신을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이라 칭하며, ‘나는 날 사랑해. 나 자체가 유토피아야.’라는 말하는 부분에서 나르시시즘적 면모를 내재하고 있음 또한 알 수 있다. 유완이 애경의 도움 없이 스스로 디오니소스(포도주의 신)의 포도 잎사귀를 머리에 씀으로써 진정한 자유, 승리를 쟁취하길 바라며, 그에게 끊임없이 술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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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에게 한 마리 강아지로 취급받는 경만은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다. 슈미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고 행동하고 사고한다. 그가 사랑이라 말하는 감정은 슈미에겐 친절이라 치부되지만, 그는 슈미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친구와 어머니에게까지 손을 뻗는다. 이런 금전적인 갈등은 극 후반, 교수 임용 경쟁자인 유완을 경계하는 되는 동기가 된다.




슈미와 검은 옷들


 

극 중 슈미는 흰색 니트와 흰 바지를 입고 극을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 애경, 도규, 유완, 경만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데리다의 개념 ‘차연’에서, ‘차연’은 차이와 지연의 의미이다. 흑이 없으면 백을 알 수 없듯, 모든 것은 차이에 의해서 알 수 없다. 생각, 개념, 주체 그 어느 것도, 그것이 의도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며, 우리는 모호한 세상, 불확실성의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 자체는 사라지고 생각의 흔적만이 남는다. 고로 그것의 현존이나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의미, 진실, 정체성, 현존은 늘 지연되고 결코 도달되지 않는다.


도규의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진실에도 빈틈이 있다는 거.” 슈미의 흰 의상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검은 의상이 있어야만 존재 가능하고, 그녀의 완벽함 또한 다른 이들의 미비함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해체와 메타버스


 

연극은 ‘슈미’라는 인물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 속 인간의 욕망과 허영을 조명한다. 슈미는 유완이 술을 마시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다. 파티가 끝난 밤, 유완이 정신을 놓았다는 경만의 말에 “알만 해”라고 대답하며, 유완이 마지막을 망친 일까지도 짐작한다.


유완은 그날 밤, 술에 취해 길에 원고를 떨어뜨렸고, 경만은 그것을 주워 온다. 경만은 유완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말하지만, 유완은 교수 임용 경쟁자라는 슈미의 말에 결국 원고를 슈미의 손에 넘긴다. 슈미는 이를 한 장, 한 장 파쇄기에 넣고 갈아버린다.


그녀는 유완을 시험했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다는 그가 진정으로 승리했기를 바라며, 그에게 술을 건넸다. 하지만 유완은 술의 힘에 넘어가버렸고 그날 밤, 자유와 쾌락, 악을 맛봤다. 그는 디오니소스의 포도 잎사귀를 머리에 쓰지 못했고, 슈미는 그런 그를 패배자로 칭한다.


연극은 파티가 벌어진 밤에 유완에게 일어난 일을 조명한다. 도규가 슈미에게 찾아와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는 장면에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도규의 대사와 함께 무대 뒤편 검은 암막 커튼이 젖혀지고, 걷힌 커튼 뒤로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벽 안쪽으로 꺼진 작은방 형태의 공간 안에 유완이 서 있다. 그는 메타버스 속 아바타와 연결되어 진정한 쾌락을 맛본다.


관객들은 도규의 설명과 일치하는 유완의 행위에 집중한다. 커튼이 걷히면 VVIP 실 속 메타버스의 모습이 보이고, 유완은 손목을 긋는 행위, 목을 긋고 베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공포 속에서 무릎 꿇는다. 과거 모더니즘 연극에서 희곡 텍스트를 재현했다면, 해당 연극에서는 퍼포먼스가 주를 이룬다. 배우의 대사 중심에서 무대 위의 물질, 오브제의 물질성, 배우가 주는 물질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해당 연극에서는 메타버스라는 상품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파괴하며, 아바타와 실제 유완이라는 두 존재가 현실에 공존하면서 주체에 분열이 일어나고, 이는 곧 현실을 해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 악, 패


 

총은 슈미에게 중요한 물질이다.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간 해체의 상징이기도 하며, 패배자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신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악마 같은 존재 슈미에게 진정한 쾌락이란 악마이고, 그러한 악마를 맛본 유완은 패배자이다.

 

연극은 바로 이런 패배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현실이란 것 자체를 하나의 코드화된 상징계라고 볼 때, 연극 ‘슈미’는 이를 뒤집고 있는 것이다. 과거 역사서는 승자들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패전국에게는 그들만의 문자가 존재할 수 없었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역사는 구술로만 끄집어낼 수 있었다. 연극은 유완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고, 유완의 죽음과 관련됨이 드러나게 되면 도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 패배자 슈미의 마지막 목소리로 끝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 총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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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제4의 벽 너머 존재하는 현실의 동시대성을 느끼고, 연극은 들려주기 식의 전달 방식이 아닌 춤과 노래, 메타버스를 통한 제시를 통해 연극이 지루해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끝내 피아노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 핸드폰으로 문을 열어주는 등 현실 세계를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원작의 재현이 아닌 시대성을 반영한 연출에서 오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슈미’라는 인물에 대해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인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파괴적인 자유로움이 극인물을 연기한 ‘최희진’ 배우를 통해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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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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