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첫 펜팔, 앞집 언니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1.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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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앞집에 살던 고등학생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나를 보면 항상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언니의 미소와 친절함이 참 좋았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먼저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지 못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언니를 보기만 해도 괜히 부끄러워서 몸을 움츠리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못했을 뿐이지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였던 나를 친동생처럼 예뻐해 주는 언니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어떻게 해야 언니와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문득, 내성적인 나에게는 말보다 글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편지를 써서 보내기로 했다.


편지의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당시 즐겨보던 어린이 방송 '마법전사 미르가온'과 나의 취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언니는 고등학생이었지만 나는 철저히 초등학생의 시선에서 나만의 관심사에 대한 두서없는 편지를 써 내려 갔다. 그리고 나름의 정성을 담아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를 고이 접어 작은 선물(아마 사탕과 캐릭터가 그려진 학 종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과 함께 앞집 우편함에 넣고 누가 볼까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왔다.

 

설렘과 긴장 사이에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저 언니가 내가 쓴 편지를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벅차기까지 했다. 평소에 얼굴을 마주 보고서는 절대로 하지 못했을 말들을 온전히 담아냈기에, 그것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언니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은근히 답장을 기대하기는 했다.

 

*

 

"예은아, 이거 봐. 우편함에 너한테 온 편지가 있더라."

 

편지를 보내고 나서 이틀 정도 뒤에 언니가 답장을 보냈다. 엄마가 우편함에서 들고 온 편지를 보자마자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 마냥 기뻐서 방방 뛰었다. 답장이라니!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겨우 가라앉히고 떨리는 마음으로 언니의 답장을 천천히 읽었다.

 

'나는 요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 고등학생이 되니 공부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

 

처음으로 언니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고 싶었던 말들을 꾹꾹 담아낸 편지를 통해 평소와 같았다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말주변이 없고 표현이 서툰 나에게 편지는 상대와의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언니와 여러 번 편지를 주고받았다. 언니는 매번 깨알 같은 글씨로 답장을 보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단짝 친구와 실컷 수다를 떠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언니가 이사를 간 이후로는 언니를 다시 볼 수 없었지만 앞집에 사는 이웃과 펜팔을 맺었던 것은 나에게 굉장히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


“어우, 너는 무슨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냐.”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종종 편지를 쓴다. 편지를 읽는 친구들의 반응은 하나같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편지를 쓸 때마다 평소에 내비치지 않았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며 나의 진심을 전하려고 애쓴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고 해서 억지로 삼키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마음의 온기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초코파이밖에 없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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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마음의 크기를 마주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무언의 시대에서 날 것의 대화는 분명한 가치를 지닌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글로 표현하는 것을 먼저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린아이처럼 포장되지 않은 촌스러운 단어들로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보자. 어쩌면 평생 평범한 이웃으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앞집 언니와 펜팔을 맺게 되었던 것처럼, 당신의 찰나의 용기가 상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싹 틔울지도 모른다.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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