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란

가르치는 일에 대한 솔직한 마음
글 입력 2021.11.12 14: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서 기고한 첫 글을 잊지 못한다.

[Opinion] 다시 태어나도, 독어독문 [사람]

 

다시 태어나도 독어독문을 택하겠다던, 이곳에서의 나의 선언은 올해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에도 변함은 없었다. 나는 꾸준히 독일을, 독일어를 사랑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꾸준히 독일어 원서를 읽었고, 어쩌다 독일과 관련된 이슈라도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고, 독일어가 쓰인 물건과 간판을 보면 왠지 모를 애착이 생겼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친한 후배의 '독일어 과외 선생님을 모집한다'라는 인스타 스토리 글을 보게 됐고,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그것도 독일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늘 동경했던 일이었기에.

 

“처음이라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볼게.”

 

일단 호기롭게 말은 던졌지만 내심 두려웠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었고, 나의 자격과 자질에 대해 계속 묻고 의심했다. 그러나 이 작은 의심은 금세 두려움이 되어 자존감을 좀먹고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오래 내버려 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날로 쓸데없는 걱정이나 의심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8월 22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을 경험했다. 그렇게 난 어쩌다 독일어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

 

‘선생님’이라고 불리기 시작한지 거의 세 달이 되어간다. 여전히 호칭은 어색하기만 하고, ‘잘’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이고 ‘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분간은 잘하고자 하는 욕심을 부풀리지도, 그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깊이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은 누군가의 선생님으로서 그에 응당하는 책임감을 가지고서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가진 기운과 능력으로 말이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엮어낸 이야기들이다.

 
 
  
1. 긍정의 추임새는 힘을 가진다.


센스 있는 입담, 유머, 재치, 기지… 글쎄, 나에게 그런 능력이란 없다. 다만 그만큼 대등한 힘을 가지는 능력은 있다. 바로 리액션. 그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평소에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리액션이 풍부한 편인데 그건 나의 자연스러운 기질이고 성격이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얼굴과 몸짓에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리액션이란 대화할 때 자동적으로 받아치는 느낌의 대답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스리슬쩍 던지는 추임새와 가깝다. 그것도 그냥 추임새가 아닌 긍정의 추임새. 요컨대, 수업 중에 학생에게 ‘맞아요.’ ‘좋습니다.’, ‘잘하셨어요.’, ‘근접했어요.’와 같은 말들을 자주 한다. 반면에 ‘안 돼요’, ‘틀렸어요’, ‘이건 아니죠’와 같은 부정의 의미가 섞인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positive.jpg

 

 

이러한 긍정의 추임새는 참으로 신기한 힘을 가지는데, 어떤 새로운 것이더라도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틀려도 자신감 있게 말하고, 몰라도 일단 툭 내뱉고 보는 깡을 가지게 한다. 특히 독일어는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언어이니, 낯선 대로 ‘이건 이래서 그런 거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긍정의 말이 주는 힘이자 선한 영향력인 셈이다.

 

가끔은 내가 그냥 툭 던진 말에 줌 너머로 학생의 ‘피식’하는 웃음이 들려오면 남몰래 뿌듯해한다. 난 그리 웃긴 사람이 아니기에 어쩌다 얻어 걸려 누군가를 웃기면 나도 저절로 행복해진다. 나에게는 나름 값지고 큰 사건이기에.

 

그냥 던지는 말이라고 했지만, 나름 솔직한 마음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공부하는 이유에 ‘전공이라서 배워야 하니까’와 같은 강제적인 요소가 작용하더라도 이왕 배우는 것 나와 함께 배우는 순간만큼은 즐거우면 좋겠다, 그런 마음뿐이었다. 그렇게라도 나의 긍정적인 기운이 학생에게 전해진다면 더욱 좋겠다.

 

 

 

2. 끊임없이 질문한다.



난 생각도 배움도 느린 편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방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전에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어내고 답을 얻어내기 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한 설명을 마치고 “여기까지, 질문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구간마다 꼭 던진다. 학생이 모르는 부분 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발적으로 질문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에, 앞서 설명한 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질문이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질문한다. 요컨대, “왜 이렇게 답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왜 그럴까요?”와 같은 질문들을 틈틈이 던진다. 이는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의 요점을 정확히 알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언하는 단계이다.

why-g8626aabbd_1280.jpg

수업은 끊임없는 질문의 향연과 생각 교류의 장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즉, 자유롭게 서로의 질문과 생각을 주고받는다. 선생님의 역할에 가르치는 일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난 선생님이고, 난 학생이야.' 이런 식의 고정된 역할로 선을 긋는 행위는 더 이상 배움의 방식에 있어서 통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늘 학생의 질문에 정해진 답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배우는 과정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 생각과 논리의 고리를 이어주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서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생각해 내고 답할 수 있게끔 말이다.

 

마치 방탈출의 공간 속에서 난 이곳저곳에 놓인 다양한 형태들의 ‘힌트들’이라면, 그것들을 가지고 ‘이걸까 저걸까’ 고민하다 직접 열쇠를 쥐고 문을 여는 것은 학생의 몫이다.

 

 

 

3. 적절한 밀당의 엔딩은 따뜻하다.



pull and push.jpg

 

 

가끔 수업에서 학생과의 적절한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 질문을 던지면 답을 기다린다. 일단 밀어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답을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주 잠깐 지금의 정적을 쫄깃하게 즐긴다. 답을 기다린다. 정적이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앞서 말한 긍정의 추임새를 덧붙인다.


 

"힌트를 드릴게요."

"조금만 더..."

"거의 다 왔어요."

 


난 끊임없이 방탈출 속에 놓인 힌트1, 힌트2, 힌트3을 조금씩 계속해서 학생에게 쥐여준다. 힌트를 보고 제대로 답을 유추해낼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 순간 주어진 정적의 순간만큼은 답을 얻어내기 위해 집약적으로, 몰입도 있게 고민하고 사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얻어낸 답은 값지고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기억 저편의 답을 꺼내어 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해낸 것이다.

 

반면, 이대로 내버려 두다가는 영원히 정적이 이어질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학생의 입 밖으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그럼 내가 먼저 백기를 들거나 학생이 먼저 “기억이 잘 안 나요.”라고 말하며 항복의 손길을 내민다. 드디어 정적이 끝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당길 타이밍이다. 함께 기억을 더듬어 배운 내용의 조각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는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그럼 그 순간 화면 너머로 “아!” 하고 깨달음의 외마디가 들린다. 듣고 보니 떠오른 것이다. 그럼 나도 대답한다. "그렇죠 기억이 났죠?!” 그리고선 기억이 떠오른 순간을 함께 기뻐하고 다음 문제에서 낯설지 않을 순간을 기원한다.

 

“다음에는 틀리지 맙시다”가 아닌 “다음에는 어색해하지 않고 반갑게 대할 수 있겠죠?”라고 마무리 짓는다. 나름 포근한 엔딩이다.

 

*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천천히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늘 ‘왜’라는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 질문 하나로 지금껏 나만의 속도로 걸어온 사람이라는 것. 돌아서면 다시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고 결국은 파고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것. 늘 배움에 열망이 있고 특히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바로 가르치는 일을 경험하며 ‘선생님’이라는 자아 속에서 새삼 발견해낸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오롯이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것으로 함께 연결되고 서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보람됨을 느낀다. 물론 그 단계까지 가기란 쉽지 않겠지만 누군가와 동행하여 배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나에게 가르치는 일이란 또 다른 배움의 방식이다. 요즘에는 함께해서 더 배가 되는 배움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적어도 이 순간은 즐겁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컬쳐리스트.jpg

 

 

[신송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1426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