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엿듣는 사람 [사람]

에니터 활동을 끝내며
글 입력 2021.11.1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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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아침부터 비가 한참을 내리고 뚝 그친 오후에는 심심치 않게 마른하늘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지하철역이나 도보 터널을 지나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나도 자주 그래서 그런지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저 사람이 언제쯤 알아차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대개 다른 세계에 가 있는 상태다. 비가 오는게 너무 짜증이 나고 어서 이 폭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하는 중이라면 비를 계속 주시하고 있으므로 그럴 일이 없다. 우산 속에 갇혀 이런저런 생각 속에 갇힌 사람들은 우산을 접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순간을 놓치고, 내려야 할 정류장도 놓친다.

2020년 2월 이후로 처음이니까 거의 2년 만에 부산에 왔다. 군복무 시작하기 전 마지막 여행이다. 그런 성격의 여행지로는 어쨌든 내륙보다는 바다가 좋을 것 같아서 부산으로 왔다. 자전거 타러 자주 가는 인천도 많이 좋아해서 인천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다음 단계를 앞둔 바다로는 부산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잘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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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행의 둘째 날, 그러니까 오늘 아침부터 하늘에서 물이 쏟아졌다. 내가 군대 간다고 그렇게까지 울어줄 필요는 없는데 쓸데없는 동정이다. 폭우를 뚫고 밖을 어떻게 나갈지 짜증이나 “인마 슬퍼하지 마 나 공익이야.” 하고 하늘에다 외쳐보았지만 접수가 잘 안된 것 같다. 녀석은 더 크게 통곡했다.

원래는 영도를 가려 했으나 이 비에는 무리라서 간단하게 아점을 해결하고 빗속 버스 투어나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너고 싶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102번 버스가 대교를 건넌다고 나와 있어 옷을 대충 건져 입고 숙소를 나왔다. ‘이런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우산은 역시 실제적인 도움보다는 심리적 위안밖에 안 되는 군’ 하면서도 꿋꿋하게 우산을 잡고 센텀시티 쪽으로 향했다. 중간부터는 자꾸 뒤집히려는 우산을 부여잡고 가느라 내가 우산의 보호를 받는 건지 우산이 나의 보호를 받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버스가 온 탓에 급히 우산을 접어 차에 올라탔다.

*

7월부터 10월까지 에디터로 인터넷에 글을 썼다. 본격적으로 더워질 때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추워질 때 끝낸 셈이다. 휴학 생활을 기록할 수 있는 용도로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내 글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도 좋은 활동이었다. 매주 뭘 써야 할지가 지난 4개월간의 일상적인 고민이었는데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자전거를 타거나 지금처럼 대중교통을 타고 바깥을 보며 돌아다녔다. 오늘도 뭔가 잡힐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숙소 안에만 갇혀 있다가 나온 것이기에 비 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다.

위와 같은 생각들을 가만히 앉아 생각하던 중에 뒷자리에 앉은 커플의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좋은 바다가 뭐라고 생각해?”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우리는 바다가 양옆으로 보이는 대교 위를 지나고 있었다.

“흠..”

여자가 고민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평소에 이런 식의 질문이 뜬금없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맥락의 대화를 하고 있었나 보다. 질문을 듣고 스스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바다가 뭘까? 그러나 내게는 그럴듯한 답을 생각해낼 의무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 자신만의 공상보다는 둘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 그냥 엿듣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너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여자가 되물었다.

하하. 당연히 본인만의 답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한 달에 얼마 버냐고 물어보려면 본인의 소득도 오픈할 각오를 하란 말이야.

“글쎄. 바다는 다 좋아서 지금까지 결격 사유가 있는 바다는 없었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바다가 좋은 바다였는지 떠올려보는 건 시간이 좀 걸리겠는 걸.”

남자는 답을 피해 갔다. 그럴듯한 질문은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던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피곤한 타입일뿐더러 제일 큰 문제는 질문 자체가 훌륭하지 못하다. 아닌가?

역공에 당황한 남자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바다가 좋은 바다 아닐까? 해변이 코앞에 보이는 곳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바다 근처로 숙소를 잡으면 밤에 들어와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도 바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잖아. 잠자리에 누워서도 어둠 아래 엄청난 양의 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감으로서의 바다. 바다에 대한 바다.”

여자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나한테는 모든 바다가 바다에 대한 바다야. 너가 지금 하는 말은 특정한 바다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바다라는 개념 일반에 대한 설명처럼 느껴지는데. 그럴 거면 굳이 부산까지 올 필요도 없는 것 같아. 바다가 좋은 이유 말고 좋은 바다가 어떤 건지에 대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해줘.”

이쯤 되면 남자는 과거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울 것이다. 이봐, 그만 땀 흘리고 그냥 ‘너랑 함께하는 바다’ 같은 고전적인 대답으로 빠져나가란 말이야. 여기까지 본 결과 넌 어차피 헤밍웨이는 못 되는 것 같으니 말을 더할수록 상황은 나빠진다고.

“그럼 그냥 바다가 좋은 이유가 많은 바다가 좋은 바다인 걸로 하면 안 될까? 다시는 이딴 바보 같은 질문 안 할게. 미안.”

그 순간 나는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쳤음을 깨달았고, 급하게 버스에서 내려 뛰어가는 바람에 여자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 나중에 알아차렸지만 날씨가 맑게 갠 탓에 우산을 두고 내리고 말았다.

*

밤에 돌아와 이 글을 쓰면서 지난 4개월간 내가 쓴 글이 낮에 엿들은 선문답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 활동의 끝을 어떻게 내야 할지 고민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바다에 와서 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좀 위험하다.
 
그것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인과 함께 <러브 액츄얼리>를 보는 짓 따위와 비슷한데, 자칫하면 너무 상투적인 감상으로 빠져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바다나 실컷 보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좋은 바다는 좋은 바다가 뭐냐는 똥 같은 질문은 넣어두게 되는 바다 아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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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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