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을 걷다가 마주친 사람이 내 쌍둥이일지도 몰라요 [영화]

19년 만에 서로의 존재를 알다,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
글 입력 2021.10.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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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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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직후 각기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다가 19년 만에 재회한 세 쌍둥이 형제 바비, 에디, 데이비드의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 다큐멘터리는 실존 인물들의 입을 통해 어떻게 그들이 기적처럼 만나게 됐는지와 그후 이야기에 대해 듣고 이를 재연한 영상 및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당시 흥분, 기대, 기쁨으로 물든 세 쌍둥이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자료화면으로 진행된다.

 

가장 처음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건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던 에디와 바비였다. 신입생이었던 바비는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자신을 에디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에디와 똑같은 미소, 똑같은 머리카락, 똑같은 표정을 하는 자신을 보고 놀란 에디의 친구가 '너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함께 에디에게 전화를 걸고 곧바로 2시간을 운전해 에디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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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에 실린 바비와 에디의 사진

 

 

19년 만에 재회한 쌍둥이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화젯거리가 돼 신문에 실렸다. 데이비드의 친구들도 그 기사를 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갈 뻔했지만 쌍둥이의 외모와 짧고 두꺼운 손가락은 자신의 친구인 데이비드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와 친구들로부터 기사에 대한 소식을 들은 데이비드 또한 쌍둥이의 사진을 보고 놀랐고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로 연결된 에디 엄마와의 통화로 세 쌍둥이임을 알게 된다.

 

세 쌍둥이는 서로에 대해 몰랐던 지난 19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만나자마자 서로를 얼싸안고 이해하며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19년 만에 재회한 쌍둥이인 줄 알았더니 세 쌍둥이였던 이들의 사연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세 쌍둥이는 일약 스타가 되어 온갖 토크쇼는 물론 마돈나 주연의 영화에도 단역으로 출연, '세 쌍둥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까지 오픈하며 주가를 높인다.

 

그들의 부모는 행복해하는 자식들을 보고 함께 기뻐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들에게 형제, 그것도 쌍둥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 루이즈 와이즈 입양 기관에 분노하여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듣고자 직접 찾아간다.

 

루이즈 와이즈 기관 관계자들은 세 쌍둥이가 함께 입양될 확률이 적기 때문이라고만 답하며 면담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우산을 놔두고 온 바비의 아빠는 위기를 넘긴 듯 샴페인을 따서 자축하는 관계자들을 보게 된다.

 

세 쌍둥이의 부모는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이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싶어 했지만 매번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사건을 맡지 못하겠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러던 중 '뉴요커' 기자였던 로런스 라이트가 세 쌍둥이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자료를 조사하던 중 '아동 정신 분석 연구'라는 수상한 논문을 발견한다.

 

*

 

화면이 암전 된 후 시작된 2부는 1부에서 19년 만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일란성 세 쌍둥이 형제들의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데,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란성 쌍둥이를 출생부터 분리시켜 각각 부유층, 중산층, 노동자층에 입양시키고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연구했다는 논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이 연구의 책임자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오스트리아 난민 출신 정신과 의사였다. 자신도 연구,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수난을 겪었을텐데 이런 반인륜적인 연구를 주도했다니.

 

이 연구는 1960년부터 딱 세 쌍둥이가 대학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까지인 1980년까지 진행됐다. 세 쌍둥이가 계속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로 지내왔다면 아마 연구는 평생 진행됐을 것이다.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하는 지금까지 진행됐다면 내부고발자가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연구는 밝혀질수록 끔찍했다. 부모들에게는 쌍둥이의 존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연구 관계자들만 그 사실을 안다. 또 입양아의 발달 상황을 연구하는 일반 연구의 일환으로 추적 관찰을 하겠다며 주기적으로 그들의 집을 방문하여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실험체'가 된 것은 세 쌍둥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쌍둥이 그룹이 있었다. 모두 루이즈 와이즈 기관에서 입양됐고, 다른 입양 남매들이 있으며 그들의 생모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중 몇몇은 아직도 자신들이 쌍둥이이며 실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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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실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 쌍둥이는 연구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 알고자 하지만 연구 책임자는 이미 사망했고 기록들은 모두 예일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됐다. 도서관이면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실험에 대한 내용 및 결과는 2066년에 공개되며 이전에 열람하려는 자는 유대인 위원회 가족 아동 복지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연구 시작은 1960년, 실험 대상이었던 세 쌍둥이는 1961년생이다. 2066년이면 이미 실험 대상이었던 쌍둥이들이 세상에 없을 때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엮여있길래, 얼마나 논란거리길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실험에 대한 보상이 얼마나 두렵길래 공개하지 않고 어떻게든 숨기기에 급급한 걸까.

 

제작진은 연구 당시 조수였던 두 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 명은 자신은 그저 위에서 시킨 대로만 할 뿐이었고 제작진에게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기 바쁘다. 그리고 연구 결과는 본인도 모르지만 일란성 쌍둥이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유전이냐 양육이냐 하는 딜레마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한 연구 책임자의 의도는 안다고 웃으며 말한다. 연구가 진행된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당시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심리학에 대한 연구와 기회의 시대였다면서 말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실험 대상이었던 쌍둥이들의 집에 찾아가 그들의 행동, 심리를 직접 기록했던 조수였다. 죄책감, 미안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넌 쌍둥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며 웃기 바빴다. 자신이 그 실험 대상이었더라도 저렇게 웃을 수 있었을까.

 

이 연구가 악랄하다고 느낀 건 생모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자녀들에게도 이런 유전적 특성이 나타날 걸 알면서도 엄격한 가정에 입양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세 쌍둥이 중 가장 발랄하고 사랑스러웠던 에디는 엄격한 가정에 입양되었고, 이런 환경에서 에디는 가족 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자라 세 쌍둥이에 대한 애착이 가장 깊었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세 쌍둥이는 19년간의 공백으로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고 그런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줬던 데이비드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위태위태하던 사이는 결국 사업으로 인해 금이 갔다. 바비가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세 쌍둥이에게 애착이 깊었던 에디는 조울증을 앓았고 권총으로 자살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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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와 데이비드

 

 

고작 160km 반경에서 살았던 세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라왔다면 이런 극단적인 일은 없지 않았을까. 단순히 재밌다, 슬프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 35년이 지난 후 나이를 먹은 바비와 데이비드 사이 에디의 부재가 씁쓸하고 소중한 형제를 잃은 바비와 데이비드의 차분한 눈빛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바비와 데이비드를 비롯한 실험 대상이었던 쌍둥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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