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신을 키운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 아웃 오브 이집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의 회고록
글 입력 2021.10.28 00:5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회고록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회고록은 주로 회고록을 내는 이들이 직접 글을 쓰는 경우보다 대필작가(ghostwriter)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대신 작성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인물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입에서 귀로 이야기가 옮겨가는 경우에도 왜곡이 생긴다. 대필작가의 손을 거쳐 특정 표현과 묘사 속에 새로운 인물이 탄생한다. 하지만 <아웃 오브 이집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직접 쓴 새로운 형태의 회고록이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는 총 6장으로 구성된 회고록이다. 장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신기하지 않는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회고록이 있다니. 자신의 가족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진행한다.

 

'나(안드레 애치먼)'는 할아버지, 할머니 등을 소개할 땐 시차로 인해 후반부에만 잠깐 등장하며 주변부로 물러나 있다. 인물과 상황이 생생히 보이는 듯한 작가의 묘사도 좋았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연결되는 방식도 좋았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으뜸 패를 몇 장씩 받는단다. 하지만 그뿐이야. 난 스무 살 무렵에 카드를 전부 낭비해 버렸어. 그런데 삶이 여러 번이나 다시 줬지.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아." - 52p

 

 

1장에서는 빌리 할아버지의 굴곡진 삶을 보여준다. "그러냐, 안 그러냐"라는 말버릇이 있는 빌리 할아버지는 이집트에 정착한 유대인 뿌리의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혼란한 정체성을 갖고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을 설득해 연고가 없는 일본으로 떠났으나 그가 주도한 가족 사업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돈을 빌릴 때마저 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영국군 스파이로 활동하는 능력도 있어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전략) 공주는 이웃 여인을 남편의 악의적인 유머에서 지켜 내려고 애썼다. 그들이 태어난 도시와 세상, 사용하는 언어에서 나온 익숙함이었다. 세 사람에게 라디노어는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향수를 뜻했다. 느슨한 넥타이와 단추를 푼 셔츠, 낡은 슬리퍼 같은 언어였고 매일 마주하는 이불과 옷장, 음식 냄새처럼 친밀하고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언어였다. - 78p
 

 

2장에서는 작가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이야기를 다룬다. 공주와 성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두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넌 외할머니인 나를 사랑하지. 하지만 다른 할머니를 더 사랑해야 한다."며 외할머니는 손자가 자신의 집에 자주 들르는 사실도 친할머니 공주에게 숨긴다. 1장에서 잠깐 보여준 공주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도 한 겹 벗겨내 다룬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이들의 이야기 타래는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얽힌다.

 

 

아버지는 기나긴 세월 혼을 쏙 빼놓는 원초적인 울부짖음 같은 비명을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힘찬 폐를 뚫고 나와 아침을 깨우며 멤피스거리와 이브라히미에의 일상 소음을 누르고 퍼져 나갔다. -128p

 

 

3장에서는 드디어 아버지 앙리와 어머니 지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확실히 '나'의 비중도 높아진다. 지지가 '울부짖음 같은 비명'을 질렀던 이유는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스쿨버스에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기도 했지만, 수영할 때 물속에서 듣는 엄마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덮여 사납고 거친 느낌이 덜해'져 '갈매기 소리처럼 상냥'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빴지만, 그의 빈 자리를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 부족하지 않게 채웠다.

 

4장은 숙모 플라라, 5장은 가정교사인 록사네, 6장은 가정부 라티파와 하인 히샴이 중점적으로 '나'와 연결된다. 이집트의 비릿하지만 상쾌한 바다 내음과 모래가 덮여 텁텁한 공기가 생생하고 선명하게 전해진다.

 

작가는 이 회고록을 쓰기 위해 인물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했을 것이며,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 인물이 '되기'의 방식으로 서술했다. 그들의 기억을 더듬고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을 만든 것은 곧 그들이니까.

 

<아웃 오브 이집트>는 자신을 키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이들 덕에 자신의 우주를 형성했고, 다른 누군가의 우주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아웃 오브 이집트_앞표지.jpg

 

 

[임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