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마츠코의 생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영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하여
글 입력 2021.10.2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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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기괴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실격’ 주인공 오바 요조의 웃는 얼굴에서 기묘하고 이상한 기분을 느낀 어떤 소설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만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상한 분위기’를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모순’이라 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의 인생을 ‘혐오’라는 단어를 통해 한껏 부정적으로 나타냈으면서, 포스터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부각된 마츠코의 얼굴은 마치 만개한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은 희망과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매개로 흔히들 쓰지 않던가. ‘혐오’라는 부정적이면서도 묵직한 이 단어를 앞에 내세운 제목과 대비되는 느낌을 준다.

 

포스터에 적힌 ‘마츠코야 울지마라. 사랑이 있다’라는 문구의 의도가 무엇인가 한참을 짚어보기도 했다. 혐오스런 생에 대한 위로일까, 혐오스런 생을 살지 말라는 충고일까. 이런 궁금증이 들 때쯤 필자는 이미 영화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마츠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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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는 교사였다. 직업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씁쓸한 현실을 고려하면 교사인 마츠코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한 이다. 마츠코에겐 몸이 약해 늘 침대 신세를 져야 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번듯한 직업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몫을 하는 마츠코는 여동생에게도 늘 부러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유념하기엔 마츠코는 사랑의 목마름이 큰 사람이었다. 아픈 여동생에게 더 신경을 기울이는 아버지 밑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사랑보다 일찍 채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픈 여동생이 마음에 남아 웃음기도 잃어버린 아버지를 웃게 만들기 위해, 마츠코는 일부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습관이 생긴다. 개구진 표정에 웃음 짓는 아버지를 보며 행복해했던 어린 시절의 마츠코는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도 익살스러운 그 표정을 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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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표정만으로는 이를 채우기에 역부족이었나 보다. 자신이 첫 데이트를 한다는 소식보다 이에 박탈감을 느낄 여동생의 상처에만 집중하는 아버지에 서운함이 폭발한다. 또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분노가 여동생을 향한 야속함으로 번진다.


결국 집을 나온 마츠코. 이때부터 마츠코의 생은 뭐랄까,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동거하는 남자로부터 폭력을 당하는데도 그를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니는가 하면, 동거남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충격받은 나머지 유부남과 교제하기까지 한다. 이후 외도 사실이 들켜 유부남에게 버림받고, 매춘부의 길로 방향을 틀면서 마츠코의 생은 본격적인 내리막을 걷는다.

 

그 과정은 처참하다. 기둥서방을 살해해 교도소에서 8년간 수감 생활을 한 이후 미용사로 회개하는 듯했으나 제자였던 야쿠자와 사랑에 빠져 간도 쓸개도 다 내어주는 삶을 이어간다. 종국에는 우울증에 빠져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사랑받지 못할 바엔 스스로를 외롭게 가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

 

사랑에 대한 갈구와 사랑을 이루지 못한 비참함으로 점철된 53년의 생은, 동네 학생들의 야구 배트에 맞아 죽는 것으로 황당하고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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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서 매춘부, 살인 전과범으로.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하며 탄식이 절로 나오는 마츠코의 일생이다. 제목 그대로 혐오감이 든다 해도 이상할 것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참 묘한 게, 혐오스러운 느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밝은 음악과 꽃이 마츠코의 암울한 이야기를 밝혀준다. 부자연스럽게 다가올 순 있겠으나, 이 또한 마츠코가 거쳐온 삶 속의 한 장면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음악이 울리고 꽃이 피는 순간은 마츠코에게도 있었다.

 

선택의 연속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후회는 있었을지언정, 결코 웃음과 설렘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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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미 마츠코는 어릴 적 자신이 봤던 것과 같은 큰 무대에서 멋진 노래와 춤을 마친다. 그리고 저 너머 아버지를 향해 미소를 짓곤 후련한 듯이 퇴장한다. 마츠코의 그 미소를 알 것 같다면, 그의 일생에서 나의 삶과 조금은 닮은 구석을 찾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실수투성이에 끝없는 자책과 괴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려고 버틴 나날들. 고통 속에서 사랑을 찾으려 했던 일련의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과연 누가 마츠코의 생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누구인지도 모른 어떤 학생의 야구 배트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마츠코의 마지막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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