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공주의 취미

나는 공주고 이건 취미다
글 입력 2021.10.2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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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엔가 일의 고단함을 토로하니 아는 사람이 '나 사실 공주고 이건 취미다'라는 짤과 함께 내 취미생활을 응원한다고 했다.

 

인터넷 밈으로 소비할 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아는 사람이 격려의 마음을 담아 얘기하니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일하기 싫을 때마다 나는 공주고 이건 취미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런 직장인의 쓴맛을 알아야 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추석 전부터 지금까지 정시퇴근을 한 건 딱 한 번. 야근이 너무 싫어서 일을 다 던져두고 퇴근했던 어느 날이 7시 반이었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이 너무 싫어서 시간이 걸릴만한 일들을 이틀 동안 아득바득 끝내서 겨우 한 번 6시 반 퇴근을 만들었다. 아주 조금 늦게 퇴근한 그날, 가족들도 친구들도 어쩐 일로 일찍 끝나냐며 신기해했다. 전 직장 평균 퇴근시간이 그쯤이었는데 말이다.

 

일이 너무 버거웠던 어느 날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엉엉 울었다. 얼굴이 엉망이 되어 돌아온 나를 본 부모님은 그 이후로 내 퇴근 시간을 확인하며 울지 않고 돌아오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걱정된 친구는 집앞에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견딜 수 없게 슬플 정도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먹으려고 보니 밥솥에 딱 내가 먹을 만큼의 밥이 남아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돌아와서 따뜻한 밥을 먹었으면 하면 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내가 퇴근했는지 궁금해하는 친구들의 카톡, 위로와 격려 모든 것들이 힘이 되기도 전에 눈물부터 끌어냈다. 툭 치면 펑하고 터질 정도로 위태로웠다. 화장실에 가서 울고 나오는 게 익숙해졌다.

 

정신적으로 몰려있을 땐 정말 실연한 사람처럼 세상 모든 이야기가 내 것처럼 들렸다.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에 힘들어서 울고, 슬퍼서 울고, 견딜 수 없어서 울었다. 아침부터 울고 점심에도 울고 집으로 돌아오는 컴컴한 택시 안에서도 울었다. 세상에서 우는 게 제일 쉬운 일이 되었다.

 

일에 지친 상태로 택시를 타고 돌아온다. 밥 먹을 시간을 아껴서 일해야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저녁 식사는 늦은 시간에 시작된다. 평일에 잡아둔 운동도 취소하고, 퇴근시간을 장담할 수 없으니 평일 약속도 잡지 않는다.

 

사람이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에서 경력을 쌓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직장운이 없을까, 설마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 걸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남들은 저마다 욕하면서도 그럭저럭 다닐만한 직장을 다니던데 왜 나는 그게 되지 않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도 거지같을까봐 두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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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hongly8919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힘들다고 자존감 깎아먹으며 버틸 수는 없다. 나는 나를 믿는다. I deserve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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