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예술가] 불확실함 속 자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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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불분명한 그림 속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Backstroke, 2020, acrylic, oil, oil pastel, on canvas, 130 x 170 cm
그의 그림 속 몽환적인 세계는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다. 짙고 푸른 바다 혹은 하늘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고, 나무처럼 보이는 기둥과 선 사이로 사람 혹은 동물처럼 보이는 덩어리들이 어리숙하게 서있다.
형태는 불분명하나 분명히 형태가 존재한다. 대상은 주로 사람, 동물, 자연이며,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채로 뭉근히 감싸진 것도 있으나 목탄으로 거칠게 그은 선만으로 텅 빈 것들도 있다. 색채에 부드러운 층위가 있는 것은 한지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에 한지를 올려 그 위에 유화나 아크릴, 오일파스텔, 목탄으로 색을 칠한다. 여러 재료가 섞여 나타나는 질감과 공간감이 풍경에 오묘함을 더한다.
Trip, 2021, oil, oil pastel, graphite, pencil on korean paper Hanji / mounted on canvas, 30 x 40 cm
화면 속에서 넘실대는 유기적인 형태와, 한편으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적인 여백은 그림을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이의 낙서처럼 장난스레 그려진 선에 비해 색과 형태와 여백의 구성은 작가의 노련함을 드러낸다. 서사를 파악할 수 없는 꿈 속의 한 장면처럼 적당히 생략되고 적당히 생생한 그의 그림 속에는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깃들어있다.
Bodyguard, 2019, oil, oil pastel on canvas, 250 x 195 cm
“1980년생 작가는 삶의 반을 한국에서, 반을 독일에서 보냈다.”
작가는 강릉에서 태어나 과일 가게를 하는 집에서 자라, 어린 시절 과일 덩어리를 그리며 미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내 삶이 언제나 예술과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돌연 자퇴 후 독일로 떠났다.
뮌헨 예술대학에서 독일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귄터 푀르크(Günther Förg, 1952-2013)를 만나 그의 밑에서 수학하였고(2004-2011년), 베를린 예술대학에 교류학생으로 있으면서 레이코 이케무라(Leiko Ikemura)의 지도를 받았다(2008년).
이후 뮌헨에 정착하여 20년간 그곳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Zwischenraum, 2019, colour pen, coal, oil on korean paper Hanji, 200 x 140 cm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디에 살기로 선택했으며,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 등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그의 배경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이유진의 풍부하면서도 냉철하게 절제된 색채의 활용에서 귄터 푀르크의 짙은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인이면서 유럽에서 활동했던 레이코 이케무라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이유진의 신비로운 풍경에는 동양의 명상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물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한국화를 전공했던 것도 그의 선과 여백에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Leaning on, 2021, oil pastel, oil, charcoal, pencil on korean paper Hanji / mounted on canvas, 60 x 40 cm
“작가가 구축한 몽환적인 세계는 새로운 재료와 함께 확장하고 있다.”
Alpaka, 2019, Mixed Media, acrylic pen, brush pen on Polymer-Clay, 20 × 17 cm
그러나 재료로 한지를 사용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한국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듯, 작가가 가진 여러 배경의 단순한 혼합체로 그를 설명하는 것은 비약이다.
이유진은 이미 회화 내에서 고유한 어법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작업하는데, 이는 여러 구성 요소들이 엄격한 위계나 원근감 없이 화면을 이루는 데에 영향을 준다.
일러스트처럼 납작하나 재료의 변주로 인해 질감과 깊이가 생겨난 동식물과 인간은 작품 속 아득한 세계를 완성하며, 작가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루어낸다.
Kröte, 2021, gold leaf, lacquer, acrylic, apoxie, iron, polymer-clay, 32 x 12 x 15 cm
작가가 팬데믹 기간 동안 시도한 3D 프린팅 조각은 아직 실험 단계에 있으나 입체 조형으로 확대될 작가의 세계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3D 프린터로 음각을 찍고, 이에 기반하여 폴리머-클레이(Polymer-Clay)로 조각을 빚고 공업용 라커로 색을 입힌다.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재료인 폴리머-클레이는 그의 ‘폴리머 패널(Polymer Panel)’ 작품에도 사용된다. 미끄덩한 피부와 같은 폴리머 패널 위에 아크릴과 금, 은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질적 재료들의 충돌이 폴리머 시리즈에서도 구현된다.
다만 회화에서 전통적인 재료를 주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폴리머 조각과 패널 작품에선 인공 재료를 적극적으로 실험한다. 그의 그림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혹은 그보다 더 괴이한 형태를 가진 조각은 회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Quelle, 2020, acrylic, oil, oil pastel, graphite on korean paper Hanji, 140 x 200 cm
이미지 출처 및 참고: 이유진 작가 웹사이트
브리타 레트벡 갤러리, 바쥬 갤러리, 우손 갤러리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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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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