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한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 [영화]

글 입력 2021.10.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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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이 존재하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 또한 발생한다. 수긍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은 차마 감추기 힘든 세월의 이치. 이 모든 과정들을 받아들이거나 무릅씀으로써, 우리는 한 남자와의 아쉬운 작별을 고해 야만 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크레이그, 다니엘 크레이그다.

 

 

 

스파이 장르의 틀을 제시하다! 007 그리고 제임스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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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차려입은 턱시도에 마티니 한 잔을 여유 있게 주문하며 눈앞의 이성을 지그시 쳐다보는 한 남자. 상대를 순식간에 무장해제 시키는 훤칠한 외모와 미소 그리고 매너까지 모든 게 완벽하지만, 그 누구한테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철저한 프로페셔널 스파이 혹은 국가에서 공인한 유리한 살인면허 소유자. 제임스 본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상술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이 원작인 007 시리즈는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전 세계적인 인기 시리즈물이다.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 집단들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 첩보 기관 MI-6 요원들의 치밀한 첩보 활동이 주된 서사로서, 2차 세계 대전의 나치, 그리고 냉전 시대의 소련을 거치며 시리즈 별로 새롭게 등장하는 주적들은 변화 중인 시대상이 반영돼있다. 점차 자신의 실체를 노출시키지 않는 적들의 은밀한 테러 행위에 맞선 MI-6 요원이자, 시리즈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는 첨단 기술과 고도의 테크닉을 발휘하며 악당으로부터 세상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영웅으로 그간 묘사되어왔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시리즈답게, 1962년 대배우 故 '숀 코네리'에서부터 시작한 제임스 본드는 굵직한 영향력을 후대 영화인들에게 끼쳤다. 특히, 에스피오나지 장르에 있어서는 영감을 받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클리쉐의 기원을 보여줬다. 잘 차려입은 턱시도에 각양각색의 무기와 딱 봐도 값이 상당한 슈퍼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어려운 임무들을 재기 넘치게 해결하는 제임스 본드의 행적은 해당 장르의 기본 틀을 제시했다. 더불어, 세월을 거스르는 명대사들과 함께 매력적인 외모로 여성들을 유혹하는 시리즈만의 유희는 제임스 본드라는 고유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시리즈의 또 다른 인기 요인이었다. 사실상 제임스 본드의 시리즈 행적은 그 자체로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역사와 궤를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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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줄 알았던 시리즈의 영예는 익숙한 것을 넘어 매너리즘에 가까울 만큼 특색 없는 연출들이 엿보였던 후속작들의 낮은 평가와 흥행 부진으로 위기를 맞는다. 점입가경으로, 007 시리즈의 안티 테제로 탄생한 작품이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인 액션과 스파이로서의 고뇌가 성찰된 '제이슨 본' 시리즈의 등장은 순식간에 007 시리즈가 구시대의 산물로 전락시키기에 이른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진부하기 짝이 없다는 박한 평가와 함께 시리즈의 몰락이라는 위기에 처한 제작진은 007의 부흥을 위해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의 선택을 받은 6번째 제임스 본드가 바로 '다니엘 크레이그'다

 

 

 

 비난을 찬사로 바꾼 첫 번째 시리즈! <007 카지노 로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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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크레이그는 본드가 아니다 닷컴' 


 

물론, 지금처럼 다니엘 크레이그가 완벽한 제임스 본드로서 처음부터 팬들에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시리즈 개선의 일환으로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6대 제임스 본드로 낙점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영화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5대 제임스 본드였던 피어스 브로스넌으로 상징되는 슬림한 기럭지와 젠틀한 인상이 팬들에게 지배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금발과 다부진 체격, 그리고 역대 제임스 본드 가운데 가장 작은 키(178cm)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 시리즈 팬들의 반응은 비판을 넘어 비난에 접어든 수준이었다. 대표적으로, 그의 이름을 딴 사이트(danielcraigisnotbond)는 당시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향한 반응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를 실감시켜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모든 반대와 우려로 점철된 반응은 그의 첫 번째 시리즈인 <카지노 로얄>의 개봉과 동시에 기우였음을 제대로 입증했다. 이제는 한물간 시리즈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작진들의 개선 의지는 제임스 본드의 내적 성장이라는 서사 전개의 신선함은 물론, 기존의 클리셰를 한 단계 비틀거나 패러디한 센스 있는 연출을 선보이며 침체되었던 007 시리즈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 넣는데 성공한다. 앞서 언급되었던 제임스 본드의 서투른 면은 오히려 우리가 아는 완벽한 스파이로서 제임스 본드의 내적 성장을 새로운 관객층이 즐길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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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임무 수행 과정 중 자신의 의지대로 안되는 상황 속에서 급격히 혼란스러워하는 본드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출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호연과 새로운 본드걸로 낙점된 에바 그린과의 앙상블 연기가 스크린 위로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화려한 볼거리와 액션은 물론, 카드 게임의 승자를 가리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 그리고 제임스 본드에게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영화의 가슴 아픈 클라이맥스로 마무리되는 <카지노 로얄>은 007 시리즈의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작품으로 기록된다.

 

<카지노 로얄>의 성공에 힘입어 2년 뒤 개봉한 <퀀텀 오브 솔라스>는 당시 액션의 트렌드를 주도했던 <본 얼티메이텀>의 영향을 상당수 받은 흔적들이 작품 곳곳에 산재한다. 007 시리즈의 전통을 계승이라도 하듯 격렬한 카 체이싱 장면으로 시작되는 강렬한 인트로와, 역대 최고의 시리즈 가운데 한 편으로 꼽히는 <골드핑거>의 한 장면을 오마주 했지만, 그럼에도 시리즈 본연의 매력이 줄어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전편과 이어지는 영화의 전개 구조는 시리즈 내 다니엘 크레이그의 입지가 본격적으로 굳건해졌음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향한 제작진의 신뢰가 더욱 굳건해진 시점에서 정확히 4년 뒤,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순간에 그의 3번째 영화가 등장한다. 그 작품은 바로 <스카이폴>이다.

 

 

 

007 탄생 50주년에 걸맞은 기념비적 작품! <007 스카이폴>


 

 

 

<카지노 로얄>과 더불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 가운데 최고작으로 1, 2위를 다투는 <스카이폴>은 제임스 본드를 둘러싼 다각도의 시선을 접목시킨 입체적인 플롯과 이를 시각적으로 표출해 내는 비주얼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그 가운데서도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와 수없이 싸워온 과정에서 누적된 상처와 피로, 그리고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의 풍파에 찌든 제임스 본드의 몰락을 드라마틱 하게 구현한 영화의 오프닝은 <스카이폴>의 백미다. 아델의 풍성한 사운드로 나락에 빠진 제임스 본드의 처지를 제시함으로써 영화는 제임스 본드를 위시한 세계 평화의 대대적인 위기를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암시한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 내에서 <스카이폴>은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부터 007 시리즈의 M으로 출연했던 '주디 덴치'의 마지막 영화라는 점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등장한 신규 캐릭터들(Q, 머니 페니, 그리고 멀로이)의 등장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만의 매력을 부가시킨 요소다. 더불어, 제임스 본드를 위협하는 악당으로서 '하비에르 바르뎀'의 신들린 연기가 돋보인 '라울 실바'는, 과거 제임스 본드처럼 M16 요원이었으나 M과의 불미스러운 전사前史에 따른 복수귀로 변모한 인물이다. 한때는 평화 수호의 이바지한 요원이었으나, 순식간에 악당으로 몰락한 서사는 제임스 본드가 처한 상황과 고스란히 병치되면서 보다 흥미로운 대결구도를 형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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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주디 덴치의 마지막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은 <스카이폴>은 이전까지 등장해온 본드걸의 자리에 그녀를 위치시킴으로써 독특한 협력 구조 속에서 치열한 과거 청산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출연해온 주디 덴치를 향한 예우가 느껴지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변화와 전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사로잡은 '샘 멘데스' 감독의 성공적인 입증시켜주는 대목이다. <스카이폴>의 성과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를 평단과 대중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키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제임스 본드로서 그를 우뚝 서게 만드는 대미를 장식한다.


<스카이폴>의 성공에 힘입어 3년 뒤 개봉한 <스펙터>는 아쉽게도 <퀀텀 오브 솔라스>의 행보를 답습하며 전편 보다 못한 속편의 또 다른 사례가 되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촬영한 영화의 강렬한 인트로와 대조적으로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는 인물들의 숨겨진 과거 밝히기라는 고리타분한 요소만 가득 안은 채 별다른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작의 성공을 이끈 감독과 배우들은 물론, 새롭게 출연한 '레아 세이두'와 '크리스토프 발츠'의 존재감이 무색해 보일 만큼, 영화는 캐릭터들의 개성을 하나로 묶는데 실패했다는 안타까움 또한 있었다. 특히, 역대 제임스 본드들을 한 번씩 궁지로 몰고 갔던 조직으로서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첫 등장한 작품이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배가될 뿐이었다.

 

전작의 엄청난 성과와 대조적인 아쉬운 평가만 가득했던 4번째 시리즈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하마터면 자신의 스파이 대장정을 마무리할 '뻔' 했다.

 

 

 

NO TIME TO RETIRE! <007 노 타임 투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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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를 기점으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시리즈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제작사에 통보한다. 숱한 반대와 부정적인 반응이 가득했던 2006년도와 대조적으로, 이제는 다니엘 크레이그 이외에 다른 제임스 본드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시리즈 내 발휘했다. 그로 인해 그의 뒤를 이을 차기 제임스 본드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스타 배우들의 이름들이 거론되었지만, 10년 넘게 쌓아온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향력을 대체할 배우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었다. 이러한 답보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는 와중에 다시금 복귀를 천명하면서 실질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공식 은퇴작이 <노 타임 투 다이>로 확정되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 타임 투 다이>는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예기치 못한 팬데믹 사태로 개봉이 연기되었던 만큼,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영화를 향한 기대는 1차 예고편 공개와 동시에 더욱 커졌다. 특히, 다시 한번 향수를 자극하는 오마주의 일환으로서, 007 시리즈를 상징하는 슈퍼카 애스턴 마틴DB5에 탑승한채 사격을 벌이는 제임스 본드의 액션은 2021년 최고의 기대작에 부합하는 격한 환호를 영화팬들에게 이끌었다. 이와 더불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서 등장하는 것은 물론, <카지노 로얄>부터 이어져온 제임스 본드의 과거가 사건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출연한 모든 시리즈를 본 관객들이라면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기존의 007 시리즈와 달리,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리즈 서사는 전작과 밀접하게 연관된 구조를 지향한다. 시리즈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양상을 띄며 이전 작품들을 관람했던 관객에 한해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와 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카지노 로얄>의 악역 중 1인이었던 '미스터 화이트'(제스퍼 크리스텐센)의 존재가 <스펙터>를 통해서 중요한 서사의 한 축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제임스 본드의 첫사랑을 상징하는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는 청산해야 하는 그의 과거이자 죄책감으로서 끊임없이 제임스 본드를 고뇌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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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그녀와의 기억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를 청산하는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다시 한번 서사의 키포인트로 등장한다. 더불어, 잠깐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MI6의 '태너'(로리 키니어)와 CIA의 '펠릭스'(제프리 라이트) 등, 조연임에도 꾸준히 같은 얼굴의 배우를 지속적으로 출연시키는 대목 또한 다니엘 크레이그만의 007 사가Saga를 형성시키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처럼,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여타 블록버스터물이나, 이전의 007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그 시리즈만의 유대를 관객과 형성한다는 뜻깊은 의의가 있다. 우리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인사가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를 기반할 것이다.

 

 

 

15년간의 노고가 빛을 발휘한 역대 최장수 제임스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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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그건 바로 하이브리드다. 변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성격을 토대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신구 영화팬을 아우르는 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비록 시리즈에 따라 작품성의 편차가 있을지 언정, 때로는 냉정한 요원이면서도 어떤 때는 감정에 다소 흔들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그의 훌륭한 캐릭터 연기는 다시금 007 시리즈의 저력을 입증해 준 대목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비난과 역경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몫을 다했고, 제임스 본드를 가장 오랜 기간 연기한 배우라는 성과를 거뒀다. 007 시리즈 내에서 15년간 밟아온 그의 굴곡진 행적은, 대기만성으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시리즈를 향한 그의 절대적 노고는 사실상 무자비한 세월의 흐름 속으로 사라질 뻔한 007 시리즈의 존재 의의를 15년간 존속시켰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대 제임스 본드를 평가하는 자리에 반드시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름이 바로 그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스크린에서 볼 수 없을지언정,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최고의 007로 기억되고 또 기억될 것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크레이그, 다니엘 크레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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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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