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페의 리우 앞바다, 보사노바

플레이리스트를 위한 라이너노트
글 입력 2021.09.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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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ão Gilberto, Antonio Carlos Jobim / berkeley b-side

 

 

 

카페의 보사노바


 

카페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면 보통 실패하는 법이 없다. 재즈를 선곡한 카페라면 취향이 분명한 공간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커피나 디저트는 물론이고 인테리어와 편의성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흔적을 확인하면 '역시 재즈가 나오는 카페야!'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재즈와 커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한 공간에 있는 모습은 꽤 자연스럽다.

 

모든 재즈가 카페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비밥은 너무 빠르고 빅밴드의 스윙은 너무 시끄러울 수 있다. 카페는 휴식과 사교의 공간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시끄럽거나 빠른 음악을 지양한다. 카페의 음악은 방해 받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흘러가는 발라드나 재즈팝이 어울린다. 음악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공간을 감싸는 분위기는 쉽게 변하기 때문에 같은 재즈라도 섬세한 선곡이 필요하다.

 

보사노바(Bossa Nova)는 카페에서 틀어 두기 좋은 재즈다.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보사노바는 1950년대 브라질 리우를 중심으로 발생한 장르를 말한다. 보사노바는 쿨재즈와 삼바가 결합되어 감미로운 화성, 느긋한 속도와 변칙적인 리듬을 보여준다. 차분한 분위기 덕분에 보사노바는 카페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단골처럼 등장하고 스타벅스의 여름 시즌에는 삼바와 보사노바를 중심으로 플레이리스트가 구성된다.

 

음악에도 향수가 있다면 보사노바는 리우 앞바다를 담았을 것이다. 보사노바가 들려주는 음악은 마치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 소리 처럼 들린다. 카페에서 들려온 남미의 정취를 따라 보사노바를 들어보자. 보사노바를 창시한 음악가와 미국 진출의 주역까지, 이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장르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Antonio Carlos Job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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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Carlos Jobim / latercera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작곡가 단 한 명을 꼽자면, 바로 안토니오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이다. 조빙은 보사노바를 창시하고 전 세계에 널리 퍼트린 인물이자 ‘보사노바의 아버지’로 불린다. 브라질에서 그의 위상은 단순한 음악가 그 이상이다. 공항이나 올림픽 마스코트에 조빙의 이름이 들어갈 정도로 그는 국가적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우리가 평소 접하는 보사노바는 대부분 조빙의 손에서 탄생했다. 조빙의 곡으로 보사노바가 유명해졌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는 보사노바에 쓰이는 작법과 악기 구성, 그리고 이후의 음악적 변화까지 장르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를 확립했다. 그는 ‘Wave’, ‘Corcovado’, ‘Garota de Ipanema’ 등 보사노바의 대표곡들을 작곡했다. 그의 작곡은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아 재즈의 기본이 되는 레퍼토리인 '재즈 스탠더드(Jazz Standard)'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빔의 노래가 들린다면 작품 속 보사노바의 원형을 감상해보자. 보사노바의 시작은 최초의 레코딩 앨범 < Canção do Amor Demais >와 수록곡 ‘Chega de Saudade’로 알려졌다. 곡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유려한 멜로디, 서정성 짙은 화성과 오케스트라 앙상블, 그리고 브라질의 민속 리듬에서 영감을 얻은 기타와 타악기의 리듬이다. 조빔의 보사노바는 1960년대까지 브라질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장르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조빔은 자신이 만든 보사노바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일렉트릭 피아노를 사용한 < Stone Flower >, 스트링과 브라스의 앙상블을 강조한 < Wave > 등을 통해 섬세한 작곡을 이어갔다. 조빔의 앙상블은 그의 후기 작품인 < Inédito >로 완성되었다. 보사노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곡들을 가져와 기존의 리듬과 화성의 관습을 벗어난 과감한 편곡을 시도했다. 특히 ‘Chega de Saudade’, ‘Garota de Ipanema’와 같은 초기 작곡은 시간이 흘러 < Inédito>에서 코러스와 스트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블루스 파트를 넣은 모습으로 변했다.

 

 

 

João Gilb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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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ão Gilberto / The Sankei News

 

 

조빙이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작곡가였다면 보사노바의 목소리와 기타연주는 주앙 질베르토(João Gilberto)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조빔과 함께 보사노바를 시작한 인물 중 하나로, 첫 보사노바 레코딩인 ‘Chega de Saudade’의 기타연주를 담당했다. 그의 독특한 창법과 기타연주는 보사노바의 교과서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나른하게 들려오는 질베르토의 목소리는 보사노바의 서정성을 표현하기에 적격이었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신문을 읽어도 소리가 좋을 것이다”라고 마일스 데이비스가 평가할 정도였다. 편안한 저음으로 노래하는 질베르토 특유의 창법은 이후 등장한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대표적인 MPB 음악가인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를 비롯해 1960년대 브라질 대중음악가들은 질베르토에게 영향을 받은 창법을 선보였다.

 

질베르토의 기타연주는 장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질베르토가 태어난 바이아(Bahia) 지방 특유의 리듬은 그의 기타 연주에 녹아들었다. 삼바의 베이스 역할을 담당하는 규칙적인 엄지손가락, 자유롭고 불규칙한 싱코페이션 위에서 다른 손가락을 움직이는 주법은 보사노바 연주의 기초가 되었다.

 

주앙 질베르토의 목소리는 < Getz/Gliberto > 앨범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와 함께한 앨범 < Getz/Gliberto >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래미상을 받고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앨범은 첫 시작부터 질베르토의 허밍으로 시작하며 힘을 들이지 않은 편안한 저음을 보여준다. 앨범 내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보사노바의 얼굴과 같은 상징이 되었다.

 

질베르토의 작품은 주로 동료 음악가들과 작업되어 단독 녹음이 드문 편이다. 만약 그의 목소리와 기타연주만을 듣고 싶다면 공연 실황 녹음인 < Live in Tokyo >를 들어보자. 앨범은 질베르토의 목소리, 기타, 그리고 박수 소리만이 등장한다. 다른 앙상블 없이 커다란 공연장에서 퍼지는 음악은 그의 창법과 연주를 더욱 선명하게 들려준다. 또한 'Garota de Ipanema'와 같은 오래된 곡을 재즈처럼 자유롭게 해석한 점도 흥미롭다.

 

 


Stan G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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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Getz / JAZZIZ Magazine

 

 

보사노바가 리우 중심의 음악이 아닌 세계적인 음악으로 자리잡은 계기는 미국진출이었다. 브라질에서의 유행을 유심히 지켜보던 미국의 음악가들은 본토에서 보사노바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보사노바의 본격적인 유행이 시작되었고, 1958년에서 1963년까지 약 5년간 브라질에서 유행하던 전-보사노바(Pre-Bossa Nova)와 미국 진출 이후의 후-보사노바(Post-Bossa Nova)로 구분되기도 한다.

 

보사노바의 미국진출을 함께한 연주자는 미국의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였다. 미국에서 재즈가 쇠퇴하던 1960년, 게츠는 조빙을 미국으로 초청하면서 재즈와 보사노바의 접목을 시도했다. 기타리스트 찰리버드(Charile Byrd)와 함께 녹음한 < Jazz Samba >, 주앙 질베르토와 녹음한 < Getz/Gliberto >는 모두 보사노바의 가장 중요한 앨범 두 장으로 남겨졌다.

 

보사노바의 초기 작품과 달리 게츠의 < Jazz Samba >는 기악 중심의 구성으로 미국의 재즈와 좀 더 가까운 형태였다. 이색적인 브라질의 색채를 익숙한 재즈로 표현했기 때문일까, 앨범의 수록곡 'Desafinado'는 1962년 빌보드 싱글 Adult Contemporary 차트 4위, The Billboard Hot 100에 15위를 기록했다. < Jazz Samba >는 1963년 빌보드 앨범 The Billboard 200에 1위를 달성하며 재즈의 본고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게츠의 작품은 마치 '재즈로 바라본 보사노바'처럼 들린다. 게츠는 쿨 재즈 연주하던 배경으로 보사노바를 해석했고, 그의 연주는 보사노바 즉흥 연주의 교과서가 되었다. 이어지는 후속작인 < Gets / Gilberto #2 >는 비브라폰 연주자인 게리 버튼(Gary Burton)이 참여해 재즈의 비중을 늘렸고, 브라질 기타리스트 루이스 봉파(Luiz Bonfa)가 참여한 < Jazz Samba Encore! >는 삼바의 재즈적 해석이 돋보인다.

 

 

 

Vinicius de Mora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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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icius de Moraes / Revista Bula

 

 

보사노바가 미국에서 흥행한 이후 브라질 내부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196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예술적, 개인적 의사표현을 금지시킨 AI-5법을 발효한다. 이로 인해 브라질의 보사노바 음악가들은 해외로 망명해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국내에 남은 음악가들은 사회참여적 음악인 '트로피칼리아(Tropicalia)'와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로 정권에 저항했다.

 

시인이자 외교관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es)는 20세기 브라질 대중음악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조빙과 함께 이파네마 해변의 소녀를 보고 'Garota de Ipanema'의 가사를 써 보사노바를 만들었다. 비니시우스는 널리 알려진 대부분의 보사노바 곡을 작사했다. 그가 쓴 'Chega de Saudade'의 "나는 저 바다에 헤엄치는 물고기의 수보다 많은 키스를 그대의 입술에 선물할 텐데"라는 가사는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는 후렴구의 반전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비니시우스를 좌파 인사라는 이유로 외교관에서 해임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에 전념했다. 1970년 이후 그의 작품은 삼바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어 브라질 대중음악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당시의 작품은 친구이자 기타리스트인 토퀴노(Toquinho)와 함께해 열정적이고 강렬한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민속적 색채를 강화했다.

 

비니시우스는 보사노바가 새로운 물결로 퍼지고 탄압과 검열로 저물기까지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토퀴노와 함께 부른 'Carta ao Tom 74'는 '1974년 톰(Tom Jobim)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뜻으로, 보사노바의 전성기를 향한 그리움이 담긴 노래다. 보사노바의 첫 시작과 이파네마의 해변을 추억하며 억압과 탄압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보사노바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축한 'Carta ao Tom 74'는 비니시우스의 음악 여정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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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노바의 전성기는 1970년대가 지나고 점차 저물었다. 조빙과 질베르토를 비롯한 거장들은 말년인 1990년대에도 작품과 공연을 통해 끊임없이 보사노바를 노래했다. 하지만 브라질의 대중음악은 흑인 음악의 색채가 강해진 MPB로 발전했고, 북미 대중음악 시장은 팝과 록의 시대가 도래해 재즈의 종말을 알렸다. 보사노바는 주류 음악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연스럽게 다른 음악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보사노바의 유행과 장르의 생명력은 달랐다. 보사노바는 다른 장르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팝과 크로스오버로 재해석되는 것은 물론이고 디스코와 신스팝에도 차용되었다. 또한 국경을 넘어서도 보사노바 음악가들이 등장했는데, 일본의 오노 리사(Lisa Ono)와 한국의 나희경은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로 보사노바를 노래했다.

 

보사노바는 아직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최근 유행한 장르인 로파이(Lo-fi)에도 보사노바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심지어 대중음악의 최전선이라고 볼 수 있는 케이팝에서도 보사노바를 발견할 수 있는데, 2021년 발매된 트와이스의 싱글 'Alchole-Free'는 보사노바를 차용해 여름의 정취를 강조했다. 마냥 보사노바를 '옛날 음악'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장르에도 수명이 있다면 보사노바의 시간은 꽤 짧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사노바는 컬트적인 음악에서 영속성을 가진 장르가 되었다. 첫 시작으로부터 약 70년이 흐르고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음악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감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유연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 어떤 장르를 들어도 자연스럽게 섞인 보사노바의 향기는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조빙을 비롯한 음악가들이 보여준 따뜻한 리우 앞바다를,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보사노바를 통해 마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참고문헌

 

김주상, "보사노바 음악이 세계 음악 시장에 수용되는 과정의 연구", 2015.

정길화, "영감을 주는 도시, 리우와 보사노바이야기", 인물과사상, 2014.

'How Joao Gilberto transformed global pop music', The Sydney Morning Herald, 2019.07.09, Randall Roberts

'보사노바의 추억, Carta ao Tom', 2020.02.20, 브라질소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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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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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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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형
    • 글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듯 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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