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닥터 프로스트'의 완결을 기념하며 - 혐오의 시대 #0

글 입력 2021.09.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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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네이버 웹툰 중 하나인 <닥터 프로스트>가 완결했다. 처음 연재를 했던 2011년부터 꾸준히 봐왔던 작품이다.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난 것이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 웹툰은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작품인 셈이다.

 

그런 만화가 드디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니 감회가 새롭다. 물론 아쉽고 서운한 마음도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이 쉬는 중간중간 작품을 기다리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해 준 작가님께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웹툰 등을 보았지만 결말에 이르러 고마운 마음이 드는 작품은 아마 <닥터 프로스트>가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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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로스트>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천재 심리학자가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처음 이 웹툰을 보았을 때 느꼈던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와 심리학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가 내 구미를 당겼다. 오죽하면 한때 심리학과를 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으니 이 웹툰의 입김이 내게 꽤 강력했던 셈이다(실제로 댓글을 보다 보면 이 웹툰을 보고 심리학과에 가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웹툰은 크게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시즌 1~2는 용강대학교를 무대로 프로스트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속 문제를 해결하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의 이야기다. 하지만 시즌 3에 접어들면 주인공 프로스트는 모종의 이유로 정신 병동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마지막 시즌 4에 이르면 사회 전반에 걸친 어떤 문제를 두고 사회 전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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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다른 이의 감정이나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다른 작품들에서 익히 봐온 설정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상담을 하는 심리학자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무릇 진정한 상담이란 상대방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으니까 말이다.

 

작중 프로스트의 스승이기도 한 ‘천상원 교수’는 주인공에게 계속 스스로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닥터 프로스트>는 단순한 상담 만화가 아닌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는, 스스로의 그림자를 직시하기 위한 남자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이 가진 구조는 대단히 흥미롭다. 다시 말해 시즌 1~2에서 이어졌던 수많은 상담 케이스들은 일종의 연습이었던 셈이다. 타인의 사례를 통해 조금씩 노하우를 쌓은 우리의 무뚝뚝한 주인공은 자신이 배우고 사용했던 방법들을 비로소 자신에게 적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를 직시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은 이번엔 세상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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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웹툰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그건 시즌 4의 이야기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바로 ‘혐오’다. 혐오? 갑자기 웬 혐오? 아무리 이슈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상담 만화에서 갑자게 웬 혐오? 아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천상원 교수의 말을 생각하면 그리 부자연스러운 전개는 아니다. 이건 결국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직사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행동의 주체엔 주인공뿐만 아니라 웹툰을 보는 우리 역시 포함된다.

 

그렇다면 혐오는 어떻게 시작하는 걸까? 이런저런 이유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혐오의 시작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닥터 프로스트>에서는 그 시작점을 ‘편견’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편견을 꼭 나쁘다고 볼 필요는 없다. 좋든, 싫든 간에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본성과도 같은 현상이니 말이다.

 

다만 이러한 편견이 한데 모여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특히 그 이미지가 부정적일수록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진다. 사람들에게 편견은 당연한 것이라는 명분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사람들에게 독선의 본능을 일깨운다. 즉, 그들은 틀렸고 우리가 옳다는 것. 혐오는 바로 이때 비로소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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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도 나름의 계보가 있다. 고대엔 생존을 방해하는 맹수나 자연재해가 그 역할을 담당했고, 신앙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중세엔 ‘악마’라는 관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범죄자들이, 최근엔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형태가 악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엔 무엇이 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 정답은 바로 ‘독선’이다. 이 새로운 악은 과거처럼 대놓고 악의나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주 나긋한 얼굴을 하고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압박하고 통제한다. 그리하여 세상에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시키려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지난 20세기를 요약하자면 한 마디로 자유를 향한 투쟁이었다. 수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다. 시민의 눈과 귀를 막는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언론은 자신들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까지도 심심치 않게 바쳤다. 그렇기에 오늘날 국가 주도의 검열이나 언론 통제 같은 일은 웬만한 독재 국가가 아닌 이상 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검열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검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다만 그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다. 20세기 검열의 주체가 국가였다면 21세기 검열의 주체는 개인이다. 갈수록 사회는 다원화 되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데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겸열관이 되어 서로를 지적한다. 단순한 의견 대립 정도가 아니다. 한쪽을 정신병에 걸린 사람마냥 규정해 버리고 가차없는 비난과 비판을 가한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혐오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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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성별 간의 혐오, 계층 간의 혐오, 세대 간의 혐오, 인종과 국가 간의 혐오 등등. 그 사유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의 물길이 갈수록 그 크기와 범위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을 중심으로 혐오가 발생했다면 최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의 차이마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여겨졌던 아이들마저 이젠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혐오에는 성역초차 없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두 달 동안 나는 서너 차례에 걸쳐 우리 사회 전반에 뿌려진 혐오의 씨앗들과 그 씨앗이 피워낸 숲들을 살펴볼 생각이다.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기획이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건 1년 전이었다. 그때는 아주 단편적인 아이디어였으나 이런저런 생각과 스스로의 욕심이 겹쳐 제법 사이즈가 커졌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목적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우리는 왜 혐오하는 걸까. 그 이유를 바깥에서만 찾는다면 앞서 말했듯 핑계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우리가 모르는 혐오의 뿌리를 찾아보려 한다. <닥터 프로스트>에서 지겹게 들어온 말마따나. 스스로의 그림자를 직시하기 위해서. 이번엔 우리가 그 걸음을 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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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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